신공항 불씨 점화… “망발” “자폭” 내부총질
새누리당 중앙당 선거대책위원회가 5월 28일 동남권 신공항 후보지인 부산 강서구 가덕도 새바지항에서 천막회의를 열어 TK 민심을 자극했다. 김무성 의원은 중앙당 공동선대위원장으로 천막회의 좌장을 맡았고, 국회의장으로 선출된 정의화 의원, 나경원 부위원장, 윤상현 당 사무총장, 부산 국회의원들이 참석했다. 연합뉴스
사건은 지난 5월 28일 터졌다. 새누리당 중앙당 선거대책위원회가 부산 가덕도 새바지항에서 천막회의를 열고 가덕도 신공항에 힘을 실은 것이다. 이 자리에서 서병수 새누리당 부산시장 후보는 “오늘이 가덕도 신공항에 첫 삽을 뜨는 것과 같다”고 발언했고 부산 외 지역에서는 곧바로 “망발”이라는 비난이 봇물을 이뤘다.
문제는 천막회의 참석자들의 면모였다. 서청원 의원과 차기 당권주자 2강구도를 그리고 있는 김무성 의원은 중앙당 공동선대위원장으로 천막회의 좌장을 맡았고, 국회의장으로 선출된 정의화 의원, 나경원 부위원장, 윤상현 당 사무총장, 부산 국회의원들이 총출동했다. 이에 대해 대구지역 정치권 핵심인사는 “이것은 부산발 도발”이라며 이런 말을 했다.
“김무성 의원이 마이크를 잡았고 서병수 후보가 허리를 90도로 숙였다. 부산시장 선거가 어려워지니 신공항 카드로 만회하려 한 것 아니냐. 지난 대선 때에도 새누리당이 현장 최고위원회의를 부산에서 가장 먼저 열어 나머지 지역으로부터 빈축을 샀는데 또 이런다. 부산 민심 달래는 컨벤션 효과는 부산은 살릴지 몰라도 영남 나머지 지역에는 물바가지를 뒤집어씌운 것과 같다. 당장 대구 민심이 요동치고 있다. 막대기만 꽂아도 당선된다는 대구에서 새누리당 막대기가 부러질 수도 있다.”
새누리당 내부에서도 TK 위상이 쪼그라들었다. 주호영 정책위의장(가운데), 김재원 원내수석부대표(오른쪽)가 그나마 체면치레를 하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지난해 부산·울산·경남·대구·경북은 ‘6월 합의’를 통해 영남권 항공 수요조사 합의서를 만들었다. 항공수요 조사 결과는 8월에 나온다. 수요가 많으면 입지타당성조사에 착수한다. 그런데 부산 정치권이 힘을 앞세워 가덕도 판정에 외압을 행사한 꼴이 됐다. 울산·경남·대구·경북 지역 언론사는 가덕도로 기자들을 급파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새누리당 내부가 소지역주의 양상을 보일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것은 대구민심이 심상찮기 때문이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이명박, 박근혜 정부를 탄생시킨 ‘보수의 요람’인 대구에서 정치적 자존감에 큰 상처가 생겼기 때문이다. 새정치민주연합에선 김부겸 전 최고위원을 시장 후보로 냈다. 현역 국회의원 두 명(서상기, 조원진)을 시장후보 경선에서 탈락시키며 ‘새누리당 심판’에 복선을 깔았던 시민들 사이에서 “새누리당이 우리를 졸로 본다”는 말이 터져 나오고 있다. TK 정치권에선 “새누리당을 PK 공화국이 접수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내보내기 시작했고, “우리도 차기 주자를 키우자”고 요구한 것으로도 전해진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대한민국 의전서열 10위까지 중 1위(박근혜 대통령)를 뺀 나머지가 모두 PK 출신으로 채워지고 있다. 대구의 한 국회의원은 슬쩍 지역 분위기를 전해줬다.
TK 의원들은 신공항 이슈에서만큼은 지역정서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그만큼 신공항은 뜨거운 감자다. 김부겸 새정치연합 대구시장 후보도 신공항 망발 정국을 한껏 이용했다. 그는 “새누리당 대구지역 국회의원들과 권영진 새누리당 후보가, 새누리당이 신공항을 가덕도로 기정사실화하려는 움직임을 막지 못한 책임을 져야 한다”면서 “이명박 정부 때도 발만 담그는 시늉을 했던 그들이 이번에도 소극적으로 움직여 결국 신공항을 가덕도로 넘겨주려 한다”고 공세를 퍼부었다.
‘6일 천하’로 마감했지만 안대희 전 대법관이 총리로 지명됐을 때에도 TK에선 큰 한숨이 나왔다고 한다. “또 PK냐, 또 법조인이냐”는 것이다. 여권 사정에 밝은 정치권 인사가 전한 말을 들어보자.
“박 대통령이 국가개조를 말한 마당에 또 법조인 출신을 내정했었다. 법조인은 틀 안에서의 준수는 말하지만 틀 밖의 상상력은 떨어진다. 사법도 중요하지만 차기 총리는 행정력도, 정치력도 겸비한 뜻밖의 인물이어야 했다. 이명박 정부에서도 인사 역차별을 받은 TK가 박근혜 정부에서도 달라진 게 없다며 노여워하고 있다.”
이한구 최경환 전 원내대표가 물러나고 TK 정치권 위상은 더 쪼그라들었다. 그나마 체면치레한 주호영 정책위의장, 김재원 원내수석부대표는 ‘국가대표급’ 자리가 아니다. 큰 당직, 국회직 속에서 TK가 사라진 셈이다. 그래서 나오는 것이 ‘김문수 역할론’이다. 정치권 사정을 모으는 정보기관 관계자가 전한 말이다.
“BH(청와대)에서 총리 후보자로 안대희 전 대법관과 김문수 경기지사를 놓고 고민한 것으로 전해진다.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이야기다. 다만 지난 경선전에서 김문수 지사가 박 대통령에게 심한 말들을 했는데 과연 박 대통령이 김문수를 포용할 것인지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결국 안대희로 낙점됐지만 사퇴했고, 다시 김 지사 이야기가 거론될지 모르겠다.”
현재 PK 공화국에 맞설 TK 주자로는 세 사람이 주목받고 있다. 경북 영천이 고향인 김문수 지사는 개혁적 성향이어서 ‘관피아 척결’에 적임자란 말이 돈다. 국회의원, 경기지사를 역임해 능력을 검증받은 상태다. 이번 정부에서 쓰임이 있을지에 지역적 관심이 크다.
국회 국방위원장인 유승민 의원은 친박계지만 박 대통령에게 할 말은 하는 거의 유일한 정치인으로 회자한다. 이번 가덕도 천막회의 논란에서도 가장 먼저 성명서를 발표, 지역 민심을 대변해 중앙당에 경고했다고 전해진다. 그는 “참으로 어리석은 언행들이다. 부산 정치권은 부디 이성을 되찾고, 천막회의를 한 무능한 당 지도부는 깊이 반성하라”라고 주장했다. 유 의원은 차기 국방부 장관 세평에 오르내리고 있다.
박 대통령과 가장 가깝다는 최경환 의원은 기획재정부 장관 겸 경제부총리로 거론되고 있다. 국무총리 후보로도 거론되지만 친박색이 너무 강하다는 지적이다. 대신 이명박 정부에서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지내 ‘청문회 트라우마’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고 평가받고 있다.
선우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