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남이가!’ 로비 암시 또는 조롱
구원파는 금수원 입구에 김기춘 실장을 겨냥해 ‘우리가 남이가’라는 현수막을 내걸어 양측 사이에 악연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졌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지난달 15일부터 안성 금수원에는 ‘김기춘 실장, 갈 데까지 가보자!’ ‘우리가 남이가’라는 현수막이 걸렸다.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신병 확보를 위해 유 전 회장의 은신처로 알려진 금수원 진입을 계획하던 검찰에 맞서 구원파 측이 금수원 정문 앞에 내건 대형 현수막이었다. ‘우리가 남이가’라는 문구는 그날 이후 여러 가지 말들을 낳았다. ‘우리가 남이가’는 지난 1992년 12월 11일 대선을 코앞에 두고 당시 법무부 장관이던 김 실장 등 여권 인사들이 김영삼 당시 대선후보를 돕기 위해 부산의 ‘초원복집’에 모여 “우리가 남이가, 이번에 안 되면 영도다리에 빠져 죽자”, “민간에서 지역감정을 자극해 영남권 득표율을 올리자”라며 결속을 다진 뒤 널리 퍼진 말이었다. 도청된 녹취 파일이 세상에 공개되며 큰 후폭풍을 일으켰다. 김 실장으로서는 숨기고 싶은 과거일 수밖에 없다. 구원파는 이 문구를 통해 그를 조롱하는 한편 김 실장과 자신들이 모종의 관계가 있는 듯한 뉘앙스를 풍김으로써 김 실장, 나아가 현 정부에 대한 불만을 우회적으로 표출한 셈이었다.
이에 대해 조계웅 기독교복음침례회 전 대변인은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일단 그 현수막 자체는 우리가 기획을 하거나 의도해서 처음부터 붙여졌던 건 아니었다. 신도들 중에 조금 더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걸었을 뿐이었다. 오대양 사건 때부터 해서 지금도 수사 진행되는 과정이 너무나도 똑같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 당시 법무부 장관 김기춘 씨랑 지금 이것들이 과연 정말로 상관이 없는가. 오대양 때도 ‘기획 수사’, ‘별건 수사’, ‘표적 수사’였던 것이 너무나도 명확한데, 지금 진행되는 것 자체도 너무나 빠른 수사와 미리 준비돼 있는 것 같은 자료들도 그렇고, 교회부터 시작해서 압수수색 과정이 원인이 밝혀진 상태에서 들어가는 게 아니고 이것부터 끝내고 원인 살펴보자는 식의 느낌이다. 유병언 회장을 일단 무조건 잡아넣어야 하고, 그게 결정돼 있는 상황에서 다른 것들이 진행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과거 오대양 때 느꼈던 그런 느낌과 동일하다”라고 밝혔다. 그는 특히 “바로 이 부분에 공통분모로 계시는 분이 바로 김기춘 실장이다. 우리 안에서는 만약에 정말 표적수사라면 지휘하고 수사하고 그런 과정들을 (김 실장이) ‘과연 모르고 있었나’라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고 김 실장이 정확히 알고 있을 거라는 얘기들이 많다. 굉장히 정확히 알고 있을 것이다. 다만 ‘우리가 남이가’라는 표현을 어떤 의미로 붙였는지에 대해서는 답변해 줄 수 있는 내용이 없다. 특별한 관계라는 거냐 하면 특별한 관계긴 한데, 그게 뭘 말 하는 거냐 하면 말할 수 있는 게 없다. 억울한 관계를 말할 수도 있겠다. ‘표적 수사’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그렇게 만든 사람이 김 실장이니까. 이것이다 저것이다 얘기는 못 하겠다”고 강조했다.
1991년 10월 24일 유병언 전 회장이 오대양 사건과 관련된 재판을 받기 위해 교도관의 보호을 받으며 대전지방법원에 출두하는 모습. 연합뉴스
이에 대해 과거 구원파로 활동하며 유 전 회장을 최측근에서 수행했던 한 인사는 “1991년 오대양 사건 재수사 당시에 김기춘 씨가 유병언 씨를 봐 주기로 했었나 보더라. 구원파로서는 봐 주기로 했는데 왜 구속시켰냐는 불만이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논란은 현수막의 철거 원인을 두고서 더욱 커졌다. 구원파 평신도복음선교회 이태종 대변인이 지난달 26일 검찰 측으로부터 현수막을 내리라는 요청을 받았다며 통화 녹취록을 공개했기 때문이었다.
검찰이 그런 요청을 한 적이 없다고 발표하면서 거짓말쟁이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통화내용을 공개하게 됐다는 게 구원파의 입장이었다. 구원파는 추가로 지난달 27일엔 인천지검에서 유 전 회장 일가의 검거팀장을 맡고 있는 주 아무개 외사부장이 이 같은 요청을 했다고 폭로했다. 인천지검은 이에 대해 ‘개인적 의견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인천지검 특별수사팀장을 맡고 있는 김회종 2차장 검사 측에 확인을 위해 전화를 걸었으나 “정해진 언론 브리핑 외에 개인적 취재에는 응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특히 구원파 측이 공개한 4건의 통화 녹취 중 두 번째 통화 녹취록에는 “윗분들이 안 좋아하시나요?”(구원파 측) “아이 그럼요…”(검찰 측) 등의 내용이 포함돼 있어 청와대 측과 검찰의 교감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제기됐다.
앞서의 조 전 대변인은 “현수막 자체가 ‘그걸 왜 붙여’라는 의구심 가진 사람도 많고 합의가 된 내용이 아니니까 자체적으로 떼려는 얘기들이 나왔다. 그러나 계속 붙였던 이유는 정말로 그렇게 느끼는 부분을 표현할 수 있겠다 싶어서였다. 그런데 검사가 내리라는 이야기를 한 것이었다. 청와대 측과 검찰이 교감이 있었는지에 대한 증거는 없다”고 말했다.
김 실장의 반대편에 선 쪽은 구원파뿐만이 아니었다. 오대양 사건 재수사 당시 수사를 맡았던 심재륜 전 부산고검장은 지난달 25일(일요일) 한 종편 방송과의 인터뷰를 통해 “전쟁 중일 때는 장수를 바꾸지 않는 법인데 1991년에는 (오대양 사건) 수사 지휘 사령탑으로 대전지검 차장검사였던 저는 물론 부장검사, 담당검사까지도 새로 교체됐다”며 당시 법무장관이었던 김 비서실장을 겨냥했다. 이에 청와대 민경욱 대변인은 다음날인 지난달 26일 브리핑을 통해 “사실과 다르다. 당시 인사는 미리 예고된 정기인사였다”고 해명한 바 있다.
여기에 안대희 총리 후보자가 대법관 퇴임 후 5개월 동안 변호사 생활을 하며 16억 원을 벌어들인 사실이 밝혀지며 전관예우 논란이 일었고 이로 인해 지명 엿새 만에 자진 사퇴하면서 김 실장은 치명적인 직격탄까지 맞게 됐다. 조국 서울대 교수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안대희 사퇴. 깔끔한 처신. 초고액 수임이 문제될지를 모르고 추천했던 김기춘 등 청와대 참모진의 무감각과 무능이 더 문제다. 김기춘이 물러가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며 김 실장을 공격한 데 이어 김 실장에게 공개편지까지 보내면서 그의 사퇴를 더욱 압박했다.
이에 대해 새정치민주연합뿐 아니라 새누리당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도 공개적으로 김 실장 책임론을 들고 나오는 등 여론이 계속 악화되자 김 실장이 최근 박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명했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세월호 사태 이전에도 이미 두 차례에 걸쳐 사의를 표명한 적이 있으나 박 대통령이 이를 반려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번에는 어려울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여야가 진통 끝에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에 김기춘 실장을 증인으로 포함시키는 데 합의를 본 것도 결국은 여당으로서도 ‘김 실장 지키기가 이제는 어려워졌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와 관련해 정계 일각에서는 새누리당 내 김 실장 책임론이, 김무성 의원과 김 실장 간 권력투쟁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김 실장이 김 의원을 견제하기 위해 같은 부산·경남(PK) 출신인 안 전 대법관을 총리 후보자로 지명하는 데 영향력을 미쳤다는 얘기가 파다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새 총리 후보로 김무성 의원이 하마평에 오르내리고 있는 것과 맞물려 김 실장이 오래 버티기는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더 힘을 얻고 있다.
세월호 국정조사특별위원회(국조특위) 야당 측 간사를 맡고 있는 김현미(고양 일산서구) 의원은 “특위에서 보니까 새누리당에서도 사퇴했으면 좋겠다는 얘기가 나왔다. 박 대통령은 세월호 사태로 인한 여론 악화 국면을 김장수 전 안보실장, 남재준 전 국정원장 사퇴 카드를 씀으로써 돌파하려 했지만 안대희 총리 후보자 낙마로 역부족이 되고 있다. 6·4 지방선거 직전까지도 여론이 나아지지 않으면 마지막 반전 카드로 ‘김기춘 사퇴 카드’를 쓰지 않을까 예상된다”고 말했다.
또 5선 국회의원을 지낸 한 원로 정치인은 “김 실장이 이미 사의를 표명했을 것으로 보인다. 아마 못 버틸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이연호 기자 dew9012@ilyo.co.kr
김기춘, 검사 후배 심재륜 고소 내막 그때 ‘칼잡이’ 교체 과정 무슨 일이…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이 후배 검사 출신의 심재륜 변호사(전 부산고검장)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심재륜 변호사 심 변호사는 지난 25일 한 종편채널 시사 프로그램을 통해 지난 1991년 오대양 사건 재수사 당시 법무장관이던 김 실장이 인사를 통해 수사팀을 교체한 사실을 언급하면서 “김 실장은 당시 영향력을 행사한 게 아니고 무관심이라든가 방관 또는 어떤 면에서는 (수사팀에) 도움이 되지 않게 방해를 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심 변호사는 이어 “국가적 사건이었기 때문에 그럴 때는 조금 유예를 하든지, 다른 보완책으로 수사 검사들을 바꾸지 않는 선에서 했어야 정상적인데, (김 실장이) 무관심 또는 사태의 본질을 방기한 면이 있다고 본다”고도 언급했다. 당시 최고의 ‘칼잡이’로 통하며 유 전 회장을 참고인 자격으로 소환했다가 체포했던 경력이 있던 심 변호사이기에 수사에서 손을 뗄 수밖에 없었던 것에 대한 불만을 토로한 것이었다. 심 변호사는 유 전 회장이 구속되기 전날인 1991년 7월 31일 밤 늦게 짐을 싸서 대전지검에서 서울남부지청(현 서울남부지검)으로 옮겨야 했다. 다음날인 8월 1일 자로 발령이 예정됐기 때문이었다. 사건 재수사 12일 만의 일이었다. 또한 심 변호사는 “1991년 당시 유 전 회장 측에서 ‘상선(윗선)’에 로비나 정치적 압력 등 할 수 있는 건 다 했을 텐데 (유 전 회장을) 갑자기 구속했으니 얼마나 야속했겠나. ‘우리가 남이가’라고 하는 말은 ‘상부에 그렇게까지 (로비를) 했는데 (유 전 회장을) 잡아넣은 것은 배신’이라는 의미일 수도 있다”고도 주장했다. 그는 당시 로비가 있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며, 로비 대상으로 김 실장을 직접 거명하진 않았다. 하지만 김 실장은 심 변호사의 주장에 대해 사실이 왜곡됐다는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청와대 민경욱 대변인은 심 변호사 인터뷰 다음날인 26일 “당시 인사는 오대양 사건의 수사와는 전혀 관련 없이 미리 예고돼 있던 정기인사였다”며 “고검 검사급 129명과 일반 검사 135명의 자리 이동이 있었고, (심재륜) 대전지검 차장검사 외에도 그 동기 3명 모두가 인사이동 대상에 포함돼 있었다”고 말했다. 심 전 고검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인터뷰는 못한다. 이해해 달라. 청와대로부터 연락 받은 것은 없다”며 말을 아꼈다. 심 전 고검장은 같이 일했던 후배 검사를 고소한 김 실장에 대해 섭섭한 감정을 토로한 것으로 알려졌다. [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