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6월26일 오후 인천공항을 통해 도착한 김선일씨의 유해가 유가족의 오열속에 운구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 ||
하지만 그는 무슨 까닭인지 잦은 말의 번복으로 그 스스로 신빙성을 떨어트리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 6월28일 <서울신문>과 인터뷰를 가진 바그다드 현지 기업인 A씨의 새로운 증언은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김 사장의 오락가락한 진술로 인해 불거지고 있는 의혹들은 A씨의 확신에 찬 주장으로 더욱 크게 증폭되고 있다.
지금까지 드러난 정황 등을 종합하면 5월31일 단순 저항세력에 의해 피랍된 김씨는 6월10일께 무슨 까닭에선지 과격 무장단체에게 넘겨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약 열흘 사이에 이 무장단체와 베일 속의 협상자 사이에 물밑접촉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결국 협상은 결렬됐고, 18일 한국군 추가파병 방침이 공식 발표되면서 상황은 최악으로 치달은 듯하다.
김씨가 최초 피랍된 5월31일부터 피살직전인 6월21일까지 3주동안, 소위 한국측 ‘협상자’라고 하는 이의 행적은 현재 완전히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과연 운명의 3주 동안 김씨 주변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의혹1 현지 미군은 알았어도 미 정부는 몰랐다?
군 관련 전문가들은 ‘전시’인 상황에서 미군 기지를 드나드는 군납업체의 직원이 3주간이나 행방불명이 됐는데도 현지 미군이 몰랐다는 점에 대해서는 한마디로 ‘상식밖’이라고 일축하는 분위기다.
실제 이번 사건의 핵심적 열쇠를 쥐고 있는 김천호 사장의 지난 6월21일 ‘연합뉴스’ 인터뷰 내용만 살펴봐도 최소한 미군의 사전 인지 가능성은 확연하게 드러난다. 당초 김 사장은 “17일경 미군으로부터 ‘김선일씨가 미군 군납업체 KBR 직원들과 함께 바그다드로 이동중 사고를 당한 것 같다’고 들었다. 그리고 저항단체가 김씨와 이라크인 현지 직원 한 명, 그리고 KBR 직원을 억류중이라고 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해 시사평론가 김종배씨는 MBC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김 사장의 이런 진술이 사실이라면 이라크 주둔 미군이나 미 정보당국이 자국민인 KBR 직원의 행방을 수소문했을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이 과정에서 당연히 김씨의 피랍사실도 인지했을 것”이라며 의혹을 제기했다.
현지 기업인 A씨 역시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미군의 모든 정보는 미군 임시행정처(CPA)가 주관한다”며 “6월10일쯤 미군측이 김 사장에게 김씨가 과격 무장단체로 넘겨졌다는 사실을 알려줬다. 그러나 김 사장이 직원들에게 함구령을 내린 채 독자적 구출 노력에 매달리다가 일을 그르치고 말았다”고 주장했다.
만약 현지 미군이 김씨의 억류 사실을 알고 있었다면 미국 정부도 이 같은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 하는 점이 또 다른 쟁점으로 부각될 수밖에 없다. 일부 시민단체를 통해 제기된 “한국의 추가 파병 철회 여론을 의식해 일부러 숨겨온 것이 아니냐”는 의심이 날로 증폭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의혹2 한국정부와 현지 대사관은 과연 전혀 몰랐나?
국내 한 일간지는 지난 6월28일자 사설에서 ‘허위 은폐 의혹은 (국내뿐 아니라) 바그다드 현지에서도 잇따른다. 한국 대사관 및 국정원 파견관과 김 사장이 입을 맞추어 진실을 가리려 한다는 의문이 제기된다’며 강하게 의혹을 제기하고 나섰다. 이번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고 있는 전윤철 감사원장도 “주 이라크 대사관의 인지 여부가 이번 감사의 ‘씨앗’”이라고 밝히고 있다.
현지에 나가 있는 프리랜서 PD 김영미씨 또한 MBC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주 이라크 대사관 직원은 이미 피랍시점을 31일로 추정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당시 국내에서는 피랍 시점이 17일이라고 알려져 있었지만 김씨는 인터뷰를 통해 현지 대사관이 사전에 피랍 사실을 알고 있었을 가능성을 강력하게 내비친 것이다.
지난 4월 가나무역 직원과 함께 현지 무장세력에 한때 억류되기도 했던 한재광 지구촌나눔운동본부 사업부장은 “주 이라크 대사관은 가나무역 직원들의 이메일 주소 등을 파악해 놓고 꾸준히 이메일 등을 통해 연락을 주고받으며 ‘안녕’을 체크했다”며 “3주간이나 메일 교환이 안됐다면 당연히 실종 사실을 인지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관계자들의 ‘증언’과 정황은 주 이라크 대사관이 김씨의 피랍 사실을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을 가능성을 점치게 하고 있다. 만약 사실이라면 현지 대사관이 외교부에 아무 보고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과연 한국의 외교부는 21일 새벽 알 자지라 방송을 통해 처음 김씨의 피랍을 알았을까.
의혹3 AP는 다른 곳 통해선 ‘확인취재’ 안했다?
이번 김씨 피랍을 가장 먼저 인지했을 만한 곳으로는 미국의 통신사 AP의 텔레비전뉴스인 APTN이 거론된다. AP측은 이미 6월3일 김씨 피랍 관련 비디오 테이프를 입수하고 우리 외교부에 김씨의 납치 유무에 대해 문의했다. AP의 주장대로 외교부 직원이 공식 확인을 해주지 않아 테이프의 신빙성 여부 자체를 의심했다 하더라도 이후의 취재 행적에 대해서는 의문이 뒤따른다.
우선 AP는 당시 외교부 직원에게 테이프의 존재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지난 21일 새벽 “살려달라”는 김씨의 호소 테이프가 알 자지라 방송에 의해 보도되면서 김씨의 피랍 사실이 전 세계에 타전됐던 그때까지도 침묵으로 일관했다.
세계적인 특종거리가 될 수도 있는 ‘재료’(비디오테이프)를 한국 외교부 직원과의 간단한 통화로 그냥 처박아뒀다는 점에 대해서도 AP답지 않은 취재 행태로 보는 견해가 우세하다. 사실 확인이 될 때까지 현지 한국대사관이나 현지 미군측에도 확인 취재를 하는 게 일반적인 취재 관행이라는 것.
게다가 문제의 테이프 속에 등장하는 김씨는 자신이 미군 캠프에 물품을 대고 있으며 사흘 전에도 팔루자 근처에 있는 미군 캠프에 갔었다면서 조지 부시와 미국을 싫어한다고 밝히고 있다. 설사 AP측이 피랍 사실을 전혀 인지할 수 없었다 하더라도 ‘전시’인 상황에서 미국에 적의를 지닌 이방인이 미군 캠프를 드나든다는 점만으로도 ‘진상 파악’이 필요했던 대목이 아닐 수 없다.
AP측이 부인하고 있기는 하지만 만약 AP측이 김씨에 대해 현지 미군부대나 미군 용역회사에 확인취재를 했다면 미군과 미 정부가 김씨의 피랍사실을 일찌감치 파악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미 정부나 현지 미군이 우리 정부나 현지 대사관 등에 김씨의 피랍을 통보했는지 여부에 따라 더 심각한 ‘은폐’ 의혹이 제기될 수도 있다.
언론개혁시민연대측은 “AP가 외교부에 확인 전화를 했다고 하는 기자를 떳떳이 밝혀야 함에도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며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미국 언론들이 민감한 시점에는 자국의 이익에 반하는 행동을 애써 자제해왔던 전례가 있다면서 AP 또한 말 못할 속사정이 있었던 것 아니냐고 의심의 눈초리를 던지고 있다.
의혹4 왜 협상기한이 단 24시간인가?
이번 김씨 피살 참사에서 또 하나 이해하기 힘든 대목은 무장단체가 한국군 파병 철수 시한으로 못박은 시한이 단 24시간에 불과했다는 점이다. 이는 지금껏 납치되었던 미국인이나 일본인 터키인 등의 경우 통상적으로 72시간의 시한을 준 점에 비춰볼 때 상당히 촉박한 시간인 셈이다.
이를 놓고 일각에서는 무장단체가 애초 협상의지가 없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예상을 하고 있다. 특히 협상시한을 정확히 인지하지 않고 ‘일요일 일몰 후 24시간’으로 다소 모호하게 밝힌 점도 이 같은 의심을 더하게 한다.
하지만 반대의 시각도 나오고 있다. 20일 밤 알 자지라 방송은 이 무장단체의 통첩을 말 그대로 ‘최후통첩’일 가능성이 높다고 해석했다. 당시 김씨가 납치된 지 3주 가까이 지난 상태였다. 이미 그동안 물밑 협상을 벌이다가 전혀 타협의 여지가 안 보이자 무장단체가 과격한 행동으로 나갔을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김씨가 피살되기 전 보도된 20일 방송 테이프에서 “당신의 목숨은 소중하다. 나의 목숨도 소중하다”고 말한 부분에 대해 의미를 두는 시각이 그것. 이 대목을 두고 이미 김씨가 억류 기간 동안 납치범과 한국측과의 협상 과정을 수시로 전해 들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납치범이 “더 이상의 거짓말에 속지 않는다”고 말한 부분 역시 누군가와 꾸준히 협상을 벌여 왔음을 암시해주는 대목이라는 주장도 있다.
과연 김씨의 억울한 죽음에 얽힌 ‘진실’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