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논회의원 | ||
암 선고를 받던 날, 봄이 채 오지 않은 2월 말인데 날씨는 더없이 포근했다. 늦겨울 햇살은 봄을 서둘러 맞이하려는 듯이 따사롭게 내리쬐고 있었다. 나는 자동차를 길가의 조그마한 공원에 세워 두고 물끄러미 차창 밖을 내다보며 앉아 있었다. 머리 속으론 이 생각 저 생각이 엉킨 실타래처럼 얽혀들었다. 머잖아 해일에 휩쓸려 사라질지도 모를 현실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그야말로 한순간에 내 인생이 완전히 바뀌고 말았다.
나 자신이 죽음 앞에 직면해 있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크지 않았다. 아무것도 모른 채 잠들어 있는 아이들과 아내를 보고 눈물을 삼키며 입술을 깨물었다. 부모가 없다는 것이 어린아이들에게는 무슨 의미인지를 충분히 경험한 나였기에 그것만이 두려울 뿐이었다. 나는 모든 것을 부정하고 싶었고 뒤죽박죽인 머리 속을 말끔히 비워 버리고 싶었다.
운전석을 뒤로 젖힌 채 감당하기 힘든 현실을 잊고 닥쳐올 혈투를 준비라도 하듯이 한 시간쯤 잠을 잤다.
위암3기말이라는 진단을 받고 가장 두려운 것은 종양이 진행된 정도가 심해서 수술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였다. 잘라낼 수 있는 부위 밖으로 암세포가 전이 되었다면 수술을 중도에 그만둘 수도 있었다. 그런 상태라면 이미 암의 최후 단계인 말기 상태일 것이다. 그렇다면 흔히 소설이나 영화에서 보는 ‘시한부 인생’이다. 당시의 내 심정은 어두운 지하 갱도의 막바지까지 도달해 있었다. 절박한 심정이야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제발 수술을 할 수 있기를…’ 더 나아가서는 혹 수술을 못하는 말기 상태라도 내게 1년만 시간이 주어졌으면 싶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못 다한 일들, 가족들에게 쏟지 못한 안타까운 시간들을 정리할 시간만큼만 내게 남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그 간절한 소망을 가지고 나는 수술대 위에 올랐다. 머잖아 삶과 죽음의 갈림길이 결정될 참이었다. 내 머리 속은 생사의 양극단 사이를 시계추처럼 수백 수천 번도 더 왔다 갔다 했다. 나는 살고 싶었다. 나는 아직 젊었고 부양할 가족이 있었고 반드시 이루고 싶은 꿈이 있었다. 죽는다는 게 헌 옷 벗고 새 옷 입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는 이가 있다면 웃으며 수술대에 오를 수 있었겠지만 나는 그렇지 못했다. 나는 많은 보통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사색이 되어 수술대에 올랐다. 그리고 모든 것이 안개 속이었다.
5~6시간에 걸친 수술이 끝났고 몽롱한 상태에서 조금씩 정신이 들었다. 전신 마취가 풀리자 몹시 아프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항암치료의 길고 고통스러운 날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암 치유의 특별한 비법을 기대하는 분들이 많다. 내 경우에도 나중에 암을 이기고 난 후 주변에서 어떻게 소문을 들었는지 찾아와 묻는 경우가 있었다. 하지만 평생 암에 대한 연구만 하는 분들도 다 밝혀내지 못한 비방이 내게 있을 리 없다. 또 내게 혹시 비방이 있다고 해도, 그게 나에게는 맞았지만 다른 사람에게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나는 그런 비방을 물어오는 사람들에게 내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세 가지 정도를 조언하곤 한다.
첫 번째로 내가 조언하는 것은 멀쩡하고 건강할 때보다 더 열심히 일하라는 것이다. 내 경우엔 그랬다. 비록 한 달짜리 인생 계획일지언정 뭔가를 자꾸 추구하려고 노력했다. 허망하게 느껴지는 경우도 많았지만 그런 생각과 계획이 뭔가 내게 에너지를 주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어떤 경우든지 실패의 최대 원인은 너무나 간단하게 단념해 버리는 데 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하지 않은가. 적당한 변명이나 자기 합리화, 또는 나약한 자기 연민은 투병 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정신적인 식이요법, 즉 기필코 병을 이겨내겠다는 강렬한 의지를 갖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두 번째로 주변 사람들, 간호하는 사람들의 정성이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나는 아내를 비롯해 처가댁 식구들, 내 동생들에게 말로 표현하지 못할 고마움을 느낀다. 위암 수술이란 결국 위를 잘라내는 것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하루에 보통 아홉 끼를 먹었다. 식사량을 줄이는 대신 횟수를 늘린 것이다. 아홉 끼나, 그것도 먹지 않으려 하는 환자에게 음식을 먹인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주변 사람들의 세심한 관심과 배려 없이는 불가능하다. 혼자서는 챙겨 먹을 수도 없고 요령 있게 계획하는 것도 어렵다. 따라서 주변의 누군가가 사랑을 기초로 한 희생이 필요하다.
세 번째로 나는 식습관을 바꿨다. 의사들은 골고루 먹으라고 말한다. 특별히 가려야 하는 음식은 많지 않으나 대체로 채식을 권장한다. 나 역시 술, 담배 등은 물론이고 고기를 거의 줄이고 채식으로 습관을 바꿨다. 사회적 붐이 일고 있는 웰빙이 아니더라도 우리 몸은 자연의 일부요 그 속에서 생명을 유지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고 자연친화적인 생활과 식습관이 병의 치료뿐 아니라 건강유지의 비결이 된다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한다.
삶이란 불안정한 항해와도 같다. 결코 평탄치 않은 길을 끊임없이 헤쳐 나가며 자신이 할 일을 찾고 신념과 꿈을 실현해 나가는 하루하루가 우리의 인생이다. 그 먼 곳을 향하는 배가 풍파 한 번 만나지 않고 안온하게 목적지에 다다를 수는 없다. 고난은 우리에게 고통을 안겨주기도 하지만 사람을 더욱 강하게 만들고 자신의 존재 가치와 삶의 의미를 깨닫게 만들기도 한다. 암 투병의 어두운 터널을 헤쳐 나오면서 나는 그 어떤 역경과 실패 속에서도 새로운 희망의 싹은 움트고 있고 그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을 때 어둠은 반드시 걷힌다는 것을 절감하였다.
‘나 자신이야말로 내 운명의 지배자이며 영혼의 선장이다.’
어느 서양 시인의 말이다. 인간 마음의 주인이랄 수 있는 의지를 강조한 이 말은 내게 늘 힘과 용기를 북돋아 준다. 인생의 성공과 실패, 희망과 절망, 그리고 온갖 희비의 갈림길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갖는 것은 다름 아닌 우리의 의지일 것이다. 목표한 바를 향해 흔들림 없이 발걸음을 옮겨갈 때 성취의 길은 그리 멀지 않다고 나는 확신한다.
정리=한상진 기자 sjine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