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3일 연쇄살인 용의자 유영철이 추가로 밝혀진 서울 이문동 살인 사건에 대한 현장검증을 하고 있다. 임준선기자 kjlim@liyo.co.kr | ||
미국 FBI 출신의 대표적인 연쇄살인범 심리 분석 전문가인 존 더글러스와 로버트 K 레슬러는 공통적으로 연쇄살인마의 특징을 △결손 가정 △여성에 대한 집착 △예술가적 기질의 영웅심리 △체계적 살인 △경찰 흉내내기 등 다섯가지로 꼽는다. 너무 공교롭게도 유영철에게서 이 5대 요소를 모두 완벽하게 충족시키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유씨를 우리나라의 실질적인 ‘최초 연쇄살인범’으로 규정지을 수 있다는 이야기까지 나오는 것이다.
대표적인 프로필링(사건 현장의 단서만으로 범인의 성격 외모 심리 등을 추정하는 것) 분석가인 수사관 존 더글러스는 지난 25년간 사형 대기수 흉악범들만 찾아다니며 면담했다. 그는 이 인터뷰 내용을 엮어 한 권의 책으로 냈고, 국내에서도 <마음의 사냥꾼>(김영사)으로 번역 출판됐다. 더글러스는 이 책에서 “해당 살인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살인범의 입장이 되어 그 마음속에 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범죄 심리 분석에서 더글러스와 쌍벽을 이루는 FBI 수사요원 로버트 K 레슬러는 ‘연쇄살인’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인물이다. 20년 가까이 FBI에 봉직하는 동안 ‘이상 살인자’들의 범죄 심리를 과학적으로 수사한 그도 이런 경험을 토대로
이들이 꼽는 연쇄살인마의 공통적인 모습은 첫째, 불우한 어린 시절의 추억을 품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 연쇄살인범의 어린 시절은 거의 100% 결손 가정이었다. 레슬러는 “8세에서 12세에 이르면서 남자아이들에게는 아버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의 연구 대상자들은 이 시기에 불행하게도 아버지가 이런 저런 방법으로 사라졌다. 사망했거나, 수감당했거나, 이혼 또는 가출로 집을 나갔다. 혹시 육체적으로는 존재하더라도 정서적으로는 사실상 아버지가 없는 상태나 다름아닌 경우도 있었다”고 밝혔다.
실제 10여 명의 여자들을 강간 살해한 미국의 몬티 랠프 리셀은 부모가 7세 때 이혼해서 엄마와 함께 살았는데, 그는 체포된 후에 “내가 만일 아버지와 함께 살았다면 지금 종신형으로 교도소에 있는 게 아니라, 법과대학에 다니고 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레슬러의 20년 전 분석 내용을 살펴보면 마치 지금 유영철을 직접 보고 있는 듯하다. 유영철은 3남1녀의 막내였고 아버지는 노동일을 했다. 어린 시절 부모는 결국 가정 불화로 이혼을 했고, 유씨의 6학년 생활기록부를 보면 아버지는 행방불명으로 나와 있다. 실제 중1 때 아버지는 교통사고로 한 달여 동안 식물인간으로 지내다가 숨을 거뒀다. 주변 친척들에 따르면 유씨는 아버지의 사망 이후 급격히 삐뚤어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가족에 대한 유영철의 집착은 도저히 살인범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그의 오피스텔에서 발견된 비디오 녹화 테이프에는 가족과 친척들이 함께 식사하는 장면까지 일일이 녹화돼 있다. 그러나 거기서 한 가족이 “식사하는 걸 왜 찍느냐”며 유씨를 면박주는 장면도 있었다. 친인척들은 “유씨는 제사 때 한번씩 찾아왔으나, 거의 얼굴 보기 힘들었다”는 반응이었다. 유씨 주변에 따르면, 가족에 대한 지나친 집착에도 불구하고 그는 가족과 친척들로부터 그다지 인정받지 못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1978년 미국 새크라멘토의 연쇄살인범 리처드 트렌튼 체이스가 한 정신과 의사에게 “크리스마스 때 어머니가 나를 집에 들이지 않아 밖에서 사람을 죽였다”고 고백한 것이나, 70년대 후반 미국 뉴욕의 연쇄살인범 데이비드 버코비츠가 양모의 죽음과 생모로부터의 냉대 이후 범행을 저지른 것 등 가족에 대한 사랑 결핍이 연쇄살인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작용하는 예는 일일이 다 거론하기 힘들 정도다.
해외의 대표적인 연쇄살인범들은 대개 어린 시절의 애정 결핍을 성장 후 자신의 파트너 여성으로부터 채우고자 했다. 그러나 이런 욕구는 반대로 결혼 실패 및 실연 등의 상처를 불러일으켜 그런 심리적 상실감이 범죄의 원인으로 작용했다. 연쇄살인마들은 성적욕구 충족을 위해 비교적 접근이 용이하고 신원이 불확실한 매춘 여성을 범행대상으로 택하는 공통점을 보이기도 했다.
‘절교 후 여성 살인’이라는 유씨의 유형은 해외의 연쇄살인범들의 행태와도 겹치는 부분이다. 평범한 고교시절을 보내던 리셀은 한순간의 잘못으로 소년원을 갔다온 뒤 여자친구로부터 절교를 선언당하고 살인마로 돌변했다. 그는 새벽 2시경 혼자 차를 몰고 나타난 매춘부 여성을 보고는 ‘여자친구로부터 얻을 수 없는 것을 얻어야겠다’는 생각으로 그녀를 납치, 강간한 다음 살해했다. 나중에 그는 4명의 여성들을 더 살해했다.
1980년대 초 미국 볼티모어의 어느 병원 앰뷸런스 운전기사로 있으면서 5명의 여성을 연쇄살인한 찰리 데이비스 역시 동거녀가 있었다. 동거녀와 크게 다툰 날 그는 어김없이 살인을 저질렀다.
1966년 간호사 8명을 집단 살해한 리처드 스펙은 21세 때 결혼해서 딸 하나를 두었다. 결혼은 실패했고, 스펙은 아내에 대해 몹시 적개심을 갖고 있었다. 그는 친구들에게 반드시 아내를 죽이겠다고 말하곤 했다. 8명의 간호사 중 유일하게 강간을 당한 한 간호사는 스펙의 아내와 매우 닮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연쇄살인을 저지른 흉악범들은 대부분 스스로에 대한 열등감을 끔찍한 범죄를 통해 보상받으려 했다. 심지어 그들은 연쇄살인 행각을 통해 자신이라는 존재가 사회의 주목을 받는 것 자체를 즐기기도 했다.
FBI 수사요원 레슬러는 “사람들이 연속극에 빠져드는 것은 매일 끝날 때마다 후반부에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장면이 나오기 때문이다. 연극 용어로는 이것을 긴장이 늦춰지지 않고 증가한다는 점에서 ‘불만족스러운 종결’이라고 한다. 그런데 연쇄살인범의 마음에도 똑같은 불만족이 생겨난다. 살인 행위 그 자체가 환상처럼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아쉬움이 남는 것이다. 그래서 연쇄살인범은 살인을 범한 뒤에 어떻게 했으면 그 범죄가 더 멋질 수 있었는지를 생각한다”고 분석했다.
미국의 한 연쇄살인범은 “살인은 일종의 발전이다. 어떤 수준의 환상에 싫증이 나면 다음에는 점점 더 기괴한 걸로 옮겨가게 된다. 그 환상의 끝은 너무 깊어서 나는 아직도 내가 품은 가장 지독한 환상에 접해보지 못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1940년대 미국의 연쇄살인범 빌 하이렌스는 바깥으로 나가 다시 범죄를 저지르고 싶은 욕구가 끓어오르면 스스로 욕실에 갇혔노라고 고백했다. 그러나 결국 그는 욕실 창문을 뛰어넘어면서까지 끔찍한 일을 저질렀다. 그는 여성 한 명을 살해한 뒤 거실 벽에 피해자의 립스틱으로 ‘제발 더 죽이기 전에 나를 잡아 줘. 나는 이러는 나를 어쩔 수 없어’라고 써 놓기도 했다.
레슬러는 “대개의 경우 연쇄살인범은 첫 범행 후 체포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며칠을 기다리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범인은 더 자기 중심적이 되어 처벌을 받지 않고 다시 범행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경우가 더 흔하다”고 분석했다.
미국의 ‘살인마’ 버코비츠는 애초 칼을 사용했으나 막상 매스컴에서 거의 주목을 받지 못하자 실망하고 범행 수법을 바꿔 총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저지른 살인 행각이 언론에 부각되면 될수록 그는 자기가 점차 유명해진다는 것에 만족스러워 했고, 자기가 신문 판매 부수에 엄청난 영향력을 미친다는 사실에 자못 우쭐하기도 했다.
유영철 역시 검거된 후에 이런 징후를 자주 드러냈다. 암매장 현장에서 태연하게 “윤락여성과 부유층은 이번 기회에 각성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가 하면, “구기동 살해 현장에서 경찰이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더라면 내가 남긴 단서를 찾아냈을 것”이라고 비아냥거려 경찰을 자극하기도 했다. 그는 “신창원보다 내가 더 낫다. 그와 달리기와 팔씨름을 해도 내가 이겼다”는 황당한 거짓말까지 하며 ‘대중적 인물’로 떠올랐던 신씨와 자신을 애써 비교하기도 했다.
레슬러는 자신의 저서에서 살인 행각을 크게 ‘체계적 살인’과 ‘비체계적 살인’으로 구분했다. “비체계적 살인은 흔히 그 자신도 잘 알 수 없는 정신병적인 살인으로 볼 수 있는 반면 체계적 살인은 그야말로 살인마”라고 밝혔다.
레슬러는 체계적 살인범의 여러 특징을 제시했는데, 놀랍게도 오늘날 유영철의 범행과 거의 모든 것이 일치할 만큼 그는 체계적 살인의 한 전형을 보여준다. 유씨는 범행을 계획했고, 그에게 걸려든 희생자들은 대개가 낯선 사람들이었다. 그는 희생자를 자신의 오피스텔로 손쉽게 끌어들였고, 곧 그들을 ‘지배’했다.
체계적인 살인범은 희생자를 인격적으로 대해주고, 범행 중에 자신의 행동을 긴급한 상황에 잘 적응시키는 특징을 나타내는데 유씨 역시 그랬다. 20여년 전 희대의 살인마 켐퍼가 대학 캠퍼스에서 두 젊은 여자를 총으로 살해한 뒤 죽어가는 두 여자를 차에 싣고 태연하게 경비원의 눈을 피해 출구를 빠져 나오는 장면과 오늘날 유씨가 토막낸 시체를 담은 검은 비닐을 들고 태연히 택시를 타고 기사와 농담까지 나누는 모습은 완벽하게 오버랩된다.
유씨는 한 범죄에서 다음 범죄로 넘어갈 때 그 수법이 더 교묘해졌고, 상대방을 손쉽게 제압할 수 있는 구속용구(수갑)를 사용했다. 유씨는 일종의 우월감으로 경찰을 조롱하는 듯한 발언도 서슴지 않는다. 모두 레슬러의 체계적 살인범의 주요 특징들이다.
이밖에도 레슬러는 체계적 살인범에 대해 “희생자를 살려둔 채 변태적이고 파괴적인 행위 과정에서 성적인 흥미를 증대시키려고 하고, 강간을 할 동안 상대방에게 복종적이고 겁에 질린 태도를 보이라고 요구하기도 하며, 이 경우 상대방이 대항하면 공격적 행동이 더 심해져 때로는 살해까지 의도가 없었다가도 살해에 이르는 경우가 많다”고 분석했다. 현재 유씨는 입을 닫고 있으나, 바로 몇달 전 자신의 203호 오피스텔 내의 모습이 아닐까.
존 더글러스는 자신이 만나고 다닌 연쇄살인범들 가운데 유독 경찰(또는 그와 유사한 신분)이 되고자 했던 이들이 많다는 점은 흥미롭다”고 밝혔다. 그리고 그들이 대개 경찰 흉내를 내면서 살인 범죄를 저지르는 일이 많았다는 분석도 내놓았다.
그는 “제압·조종·통제 등 세 가지는 연쇄 살인범들이 공통적으로 내보이는 특징이다. 그들은 자기들이 인생에서 부당한 대우를 당했고 정신적 육체적 학대를 당했다고 느꼈다. 그러니 힘센 사람이 되어 자기를 (구렁텅이에) 빠뜨린 자들을 모조리 감옥에 처넣고 싶다는 엉뚱한 심리가 발동했다. 바로 이런 심리 때문에 경찰관이 되고 싶어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사건으로 그동안 유영철이 여러 차례 경찰 사칭으로 검거된 전력이 밝혀졌지만, 사실 이런 그의 행동은 연쇄살인마의 전조적 징후였던 셈이다. 유씨는 이미 살인행각을 벌이기 전부터 위조된 신분증과 가짜 수갑으로 경찰 행세를 하고 다녔다. 위조 신분증을 이용해 진짜 경찰을 등치기까지 했다.
경찰을 사칭하며 여성들을 살해한 테드 번디, 경찰 반장이었던 아버지의 전력을 한껏 이용했던 찰리 데이비스, 어린 시절부터 경찰이 꿈이었고, 실제 경찰들과 자주 어울리며 그 자신이 실제 경찰인 양 착각 속에 빠졌던 에드워드 켐퍼 등 역대 연쇄살인마들의 행각은 모두 유씨 범행에 결정적 힌트를 제공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