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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00년 6월13일 김대중 당시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하자 북한 의장대가 사열 장소로 이동하고 있다. | ||
주씨는 6년여의 복무기간 동안 인민군 특수부대인 민사행정경찰과 헌병대, 사단장 연락병, 보위부 정보요원, 대남방송국 등 여러 보직에서 근무한 경험을 토대로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알짜배기’ 북한 정보를 책에 실었다. 특히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의 친척인 군 장교의 비극적인 최후, 비무장지대 주둔 부대의 실상, 인민군 내부의 사건·사고, 인민군의 병영 생활과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매매춘 실태 등을 생생하게 기록했다. 주씨가 실제 목격한 주요 사건 사례와 인민군의 병영 실상을 들여다봤다.
지난 97년 16세의 나이로 북한군 민사행정경찰(민경)에 입대한 주씨는 민경 훈련소 생활을 소개한 뒤 그해 4월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가 망명한 지 한 달여 뒤에 벌어진 비극적 사건을 먼저 언급했다. 황 전 비서의 친척인 황덕빈 민경 사관장(중대 사병들의 우두머리)이 북한 보위부 감시를 피해 귀순을 시도하다 실패, 자결한 사건이 그것.
황장엽씨 망명 직후, 곧바로 황씨의 부인이 자결하고 딸도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가는 트럭에서 뛰어내려 목숨을 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황씨와 전혀 안면도 없는 황씨 일가의 먼 친척들까지 대부분 정치범 수용소로 보내졌거나 황덕빈씨의 경우처럼 탈출을 시도하다 목숨을 잃은 사실이 밝혀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주씨는 “김정일은 황장엽씨가 망명한 뒤 북한 전역에 ‘황장엽의 5대까지 멸망시키고 당장 8촌까지 체포하라’며 황씨와 연관된 혈육 수백 명을 정치범 수용소로 보내도록 지시했다”고 덧붙였다.
수기에 따르면 당시 민경에 근무하던 황 사관장은 5군단 지역 군인이었던 동생과 함께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가던 도중, 호위 요원들의 무기와 차를 빼앗고 휴전선으로 내달렸다고 한다. 최후의 선택으로 귀순을 노렸던 것. 이들은 북한 보위부와 안전부, 그리고 군 부대를 피해 개성에 잠입했으나 인근 마을에 음식을 얻으러 갔던 황씨의 동생이 그만 주민의 신고로 잡혔다고 한다.
그 뒤 황씨는 홀로 비무장 지대에까지 오는 데 성공했고, 새벽을 틈타 고압선과 가시철조망, 그리고 마지막 위수 구역을 넘어 국군 초소를 몇 백m 앞에 둔 지점까지 도달했다고 한다. 그러나 황씨는 반보병지뢰를 밟고 한 다리가 잘려나가 결국 북한 민경대에 발각됐다. 당시 현장에 출동해 황씨를 목격했다는 주씨는 “중앙 분계선 표식물을 몇 십m 앞두고 쓰러진 황 사관장은 머리에 권총을 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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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민군으로 복무했던 경험을 책으로 펴낸 주성일씨. | ||
주씨는 “방송이 나가고 몇 달 뒤 봉동리에 대한 국제 사회의 지원 소식이 있었다”며 “그 소식을 들었을 때 벌레가 몸에 기어 다니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소름이 끼쳤다”고 심정을 털어놓았다.
남한에서 보내온 물품, 식량에 묻은 독약이나 방사성 물질 때문에 군인들이 사망한 ‘괴이한’ 사건도 공개했다. 주씨는 이를 ‘적지물자’ 급식 중독 사건으로 소개했다. ‘적지물자’란 남한에서 풍선과 낙하산 등으로 보내온 물품을 일컫는 말로 라디오, 책, 카드, 식품, 전단지, 여자 속옷 등이 대다수를 이룬다.
주씨에 따르면 남한에서 온 것으로 알려진 속옷 등을 입은 여자들의 살이 썩어 가는 사건이 곳곳에서 벌어졌으며 주씨가 근무하던 부대 내에서도 네 명의 훈련병이 ‘적지물자’로 날아온 즉석국수를 먹다가 동시에 그 자리에서 숨졌다고 전했다.
주씨는 책에서 “북한 당국은 ‘남한이 적지 물자에 방사성 물질을 투입했다’고 선전했으나 군인 대부분은 남한이 예산을 들여 살포하는 적지물자에 독약을 묻혀 기껏 몇 명을 죽이려 했을 것이라고는 보지 않았다”고 밝혔다.
주씨는 군 부대 주변서 벌어진 ‘기상천외한’ 강간 사건 일화 한 토막도 소개했다. 그는 사건 내막을 이야기하면서 진정 ‘실제 사건’이라는 꼬리표를 달아 실화임을 강조했다. ‘강간범’들은 주씨 부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포 연대 소속 통신병들. 통신 선로 작업을 자주 나가는 병사에게 부대가 점심을 따로 주지 않은 탓에 이들은 작업 중 허기를 느끼자 무심코 한 가정집에 쳐들어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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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장엽씨 | ||
그러나 이들 군복 명찰의 이름을 기억해낸 신랑이 안전부와 보위부에 신고를 했고 이들은 군사 재판에 회부돼 징계를 받았다. 주씨가 ‘기상천외하다’는 표현까지 쓴 이유는 부하 군인들의 행동에 대해 사과를 하러 찾아온 포대 연대장과 신부·신랑의 대화 때문.
포대 연대장이 쌀과 고기를 싸와 피해 부부를 위로하자 신부는 “그럴 수도 있죠. 뭐”라고 대수롭지 않아 했고, 신랑은 한 술 더 떠 “오랜만에 고기를 먹게 돼 좋습니다. 군인들에게 한 번 더 오라고 전해 주시라요”라고 맞장구를 쳤다 한다.
주씨는 북한에도 병역 비리가 많다며 이와 관련한 사건도 책에 실었다. 일명 ‘초모생 열차 탈출 사건’이었다. ‘초모’는 우리 군으로 이야기하면 신병 징집에 해당한다. 즉 초모생은 징집된 신병인 셈. 이 사건이 북한 내에서도 화제가 된 것은 탈출한 초모생들이 다름 아닌 당이나 군의 간부 자식들이었기 때문이다.
사건의 발단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올려진 한 장의 보고서였다. 98년 인민군 신병 초모를 앞두고 김정일 위원장이 ‘당이나 군부의 자식들은 다 좋은 대로 가고 노동자와 농민과 같은 힘 없는 집 자식들은 제일 조건과 환경이 어려운 부대로 간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접한 것. 이에 김 위원장이 국방위원회에 진상 조사를 지시하자 부담을 느낀 국방위원회 및 군 간부들이 임시방편으로 초모 예정인 간부 집 자식들만을 골라 환경이 가장 형편 없다는 강원도 산골 군단으로 보냈다고 한다.
며칠 동안 영문도 모른 채 강원도로 향하는 열차에 태워졌던 초모생들. 급기야 이들은 호송장교로부터 자초지종을 전해 듣고, 곧바로 열차에서 탈출해 뿔뿔이 흩어졌다고 한다. 이 소식을 보고 받은 김 위원장은 해당 부모들의 현직을 박탈하고 자강도 산골로 추방시켰다고.
주씨는 “기억만 하면 어지러울 지경으로 사건이 숱하게 일어났다”며 배고픔을 참지 못해 농가에 침입했다가 할머니와 손자를 살해한 병사의 사형 집행에 자신이 직접 저격수로 나섰다는 사실도 털어놓았다. 그에게 ‘인민군의 추억’은 그렇게 잿빛투성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