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승규 신임 법무부 장관이 “인품 있는 검사를 특수부에 배치하겠다”고 한 데 대해 검찰 내부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지난 8월13일 금요일 밤. 서울 서초동의 한 술집에서 지난 대선자금 수사에서 혁혁한 공을 세워 당시 수사를 지휘하던 안대희 중수부장이 일등공신의 한 명으로 꼽던 한 검사가 기자들 앞에서 이렇게 외쳤다. 다른 때 같으면 농담처럼 들릴 법한 말이 자뭇 진지하게 들렸던 까닭은 검찰 인사권을 쥐고 있는 김승규 장관 취임 일성 때문이다.
김 장관은 취임사에 “그동안 수사의 성과를 내기 위해 검사들이 인간을 배려하지 않았다”며 “수사는 인간성과 조화를 이뤄야 하며 이를 위해 특수부에 인품이 훌륭한 검사를 배치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더욱이 이 검사는 대선자금 수사 때 김승규 장관이 변호사로 수임한 사건의 의뢰인을 수사했었다. 그는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이 의뢰인을 구속시키지 않으려는 김 변호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구속했다. 그러나 그는 김 장관이 “성과를 내기 위해 인간을 배려하지 않는다”라고 지적한 검사는 자신이 아니라 현재 지방에 있는 C검사라고 술자리 내내 강조했다.
그러나 술이 좀 오르자 그는 김 장관을 거칠게 비판했다. 그는 “변호사 시절 김 장관이 잘못된 검찰관을 갖게 됐다”며 “검사 출신 장관이 특수검사에게 인격이 중요하다고 하는 게 말이 되냐”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지난 대선자금 수사 때 혁혁한 성과를 내 검찰 위상을 바로잡았다며 칭송하더니 몇 달 지나지 않아 인간성 나쁜 검사로 매도한다”며 원망을 쏟아내기도 했다.
이처럼 김 장관의 인품론에 검찰이 흔들리고 있다. 그동안 검찰은 ‘꿩잡는 게 매’라고 수사를 잘하는 검사가 특수부에 전진 배치돼 중용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해왔다. 이런 전통은 과거 독재정권 시절 공안부가 득세하던 때에도 유지돼왔다. 참여정부 출범과 함께 강금실 장관이 취임하면서 서울에만 머무는 엘리트 검사를 없애고 시골검사를 서울로 올리는 ‘경향교류’를 확대하면서 약간 흔들렸을 뿐이다. 하지만 김 장관이 인격을 강조하는 인사원칙을 내걸자 검찰 내부가 동요를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검사들이 김 장관의 인사론에 흔들리는 것은 김 장관이 노무현 대통령과 코드가 일치한다는 강 전 장관보다 청와대와 잘 통하는 ‘힘있는 장관’이라는 점과 특수수사의 상징인 대검 중수부 폐지론이 고개를 들고 있기 때문이다.
개혁의 전도사를 자처하던 강 전 장관과 달리 신임 김 장관은 개혁이 가능한 부분만을 하겠다는 안정감으로 청와대로부터 후한 점수를 받고 있다.
청와대가 별 과오 없는 강 전 장관을 전격 경질하고 보수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김 장관을 임명한 데에는 이런 복선이 깔려 있는지 모른다. 따라서 김 장관의 소임은 ‘검찰권의 견제 및 축소‘에 맞춰질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 나온다. 지난 6월 검사장급 인사에서 안대희 중수부장을 수사권이 없는 고검장으로 보내는 등 반골검사들을 한직으로 보낸 것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검찰 일각에서는 분석한다.
따라서 김 장관이 다소 현실감이 떨어지는 ‘인간적 수사론’은 이런 포석을 깔고 있어 검사들에게는 ‘괴담‘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 왜냐하면 장관은 검찰 인사권이라는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어 검사들은 장관의 한마디를 무심코 흘려보낼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김 장관은 변호사 시절 호남 출신 의뢰인의 변론을 많이 맡았다. 호남 출신은 과거 김대중 정부나 현 참여정부에서나 수사대상 1순위였다. 실제로 많은 호남 인사들이 검찰에 줄줄이 구속기소됐고 이를 비호하던 호남 검사들이 모두 제거됐다. 그 가운데 김 장관은 유일하게 흙탕물이 튀지 않은 호남 출신 검찰 간부였고 후배들의 신뢰를 받았다. 덕분에 김 장관은 변호사를 개업하자마자 자의반 타의반으로 많은 호남 출신 피의자들의 변론을 맡게됐다.
김 장관은 올해 대선자금 수사 당시 건설업체 (주)부영 이중근 회장과 현대비자금 사건의 박광태 광주시장, 나라종금 사건의 한광옥 전 민주당 대표의 변호인으로 활동했다. 또 지난해에는 자신의 형인 김명규 한국가스공사 사장을 변론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김 장관은 수사 성과에 집착하는 검찰의 모습에 많은 회의를 느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안팎에서는 김 장관이 취임사와 기자회견에서 “기업인에 대해 존경심을 가져야 한다”는 말은 이중근씨의 변론에서 느낀 인상 때문이라는 게 중론이다. 검찰은 지난 대선자금 수사에서 부영 이중근 회장을 그룹 회장으로는 이례적으로 구속기소했다. 대선자금 명목으로 정치권에 돈을 뜯긴 기업은 수사에 협조하면 최대한 선처하겠다는 검찰의 원칙에서 이 회장은 예외였던 셈이다. 그 과정에서 김 장관의 ‘인간적 검찰론’이 싹텄다는 것이다.
업친 데 덮친 격으로 이 와중에 대검 중수부가 수사한 대선자금사건 가운데 무죄가 나오고 있다. 특히 김 장관이 변론을 맡았던 박광태 광주시장이 무죄를 선고받고 석방됐다. 이중근 회장의 경우 유죄가 인정됐기는 하지만 수백억원의 횡령액 가운데 상당 부분이 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광재, 이재정씨가 벌금형으로 풀려났으며 신경식 이상수 여택수 서청원 등이 줄줄이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분위기가 이렇게 뒤숭숭해지자 특수부의 자존심이라는 대검 중수부가 맥없이 해체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정치권에서 이를 해체하려고 하자 송광수 검찰총장은 6월15일 “내 목을 치라”며 강력하게 반발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미 김 장관은 기자회견을 통해 중수부 축소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법무부는 개혁기획단을 통해 여러 차례 중수부의 수사기능을 없애는 방안을 연구해왔다. 김 장관이 이를 받아들일 경우 빠르면 올해 내에 중수부는 특수수사를 지휘 감독하는 기구로 그 권한이 대폭축소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이 안은 검찰도 찬성한 개혁안이다. 그러나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립을 계기로 검찰권 약화를 우려해온 검찰은 실제로 중수부가 축소될 경우 회복하기 힘들 만큼 위상이 추락될 전망이다.
우선 중수부가 폐지될 경우 청와대와 같은 권력 주변 수사는 앞으로 어려워질 전망이다. 그만큼 검찰의 영향력도 떨어진다. 중수부와 달리 서울중앙지검 등 일선 지검지청은 권력실세 수사가 사실상 어렵다.
대표적인 것이 서울중앙지검의 썬앤문그룹 관련 이광재 의원 수사다. 최도술 안희정 선봉술씨 등 노 대통령 측근 수사도 대검 중수부가 아니면 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검찰 안팎의 지적이다.
따라서 검찰 내부에서 김 장관의 검사관에 적지 않은 우려를 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평검사 인사에서 벌써 그런 우려가 점쳐진다.
서울중앙지검은 특수부에 최초로 여성검사를 배치하는 한편 인품이 훌륭한 검사 다수를 특수부에 배치하겠다고 밝혔다. 김 장관의 잔기침 한 번이 검사들에게 큰 감기로 닥쳐온 셈이다. 일 잘하던 특수부 검사들이 ‘특수수사를 잘하지만 인품이 나쁘다’는 이유로 이번 인사에서 밀려날지 모른다는 추측이 벌써부터 무성하다.
한 검사는 “군사정권에서는 호남이, 호남정권에서는 영남이 물을 먹더니 이제는 특수부 검사라서 물을 먹는다”며 “김 장관 다음 장관은 체력좋은 검사를 중용할 건가”라며 답답해했다.
검사들은 계량화하기 어려운 인품이란 요소로 검찰 인사를 결정하겠다는 김 장관의 인사가 결과적으로 또다른 차별을 가져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검찰 안팎에서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현직 장로인 김 장관과 가까운 검찰 신우회 멤버와 호남 출신 검사들이 대거 발탁될 것이라는 내년 인사 예측까지 나오고 있다.
박태수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