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박 전진 앞으로… 잠룡 ‘춘추전국시대’
홍준표, 남경필, 원희룡 당선인(왼쪽부터)이 새누리당의 차기 대권주자로 떠오르고 있다. 일요신문 DB
“솔직히 지금 새누리당에는 야권 대권주자를 상대로 이길 만한 후보가 없다. 그래서인지 차기 대권 후보는 도지사 중에서 나올 것이라는 이야기가 많다. 아예 당에서는 각 지자체 평가를 중심으로 서로 경쟁시키면서 대권감으로 키우자는 이야기도 나온다. 앞으로 각 지자체장 활약이 흥미진진할 듯하다.”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새누리당 당직자가 한 말이다. 여권 관계자들이 향후 ‘도백들의 전쟁’을 예고하는 배경에는 두드러진 대권주자감이 없다는 점 이외의 호재가 숨어 있다. 이번에 뽑힌 시장·도지사들은 오는 2017년 대선 출마를 위해 중도 사퇴하더라도 해당 지자체는 별도의 재·보궐 선거가 치러지지 않는다. 2017년 대선과 이듬해 지방선거가 6개월 이내로 붙어 있는 까닭에서다.
이는 지난 2012년 대선 때와 대비된다. 당시 김두관 경남지사는 대선 출마를 위해 지사직을 던지고 민주통합당 대선후보 경선에 나왔다 패한 뒤 상당한 정치적 타격을 입었다. 김문수 경기지사의 경우 직함을 유지한 채 당내 경선에 참여해 좀 더 나은 상황이었지만 도정 공백을 내버려둔 채 대권 도전에 나섰다는 비판이 따라붙었다. 하지만 2017년 대선은 이 모든 비판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이다.
대선지지율 1위를 달리던 정몽준 서울시장 후보가 낙선한 것도 원인으로 꼽힌다. 앞서의 새누리당 당직자는 “서울시장 낙선으로 인해 정몽준 전 의원은 당분간 정치권 복귀가 쉽지 않을 것”이라며 “이번에 선대위원장을 맡은 김무성 의원이나 총리로 거론되는 김문수 경기지사 역시 지방선거 과정에서 특별한 활약을 보이지 못했다. 결국 판을 바꿀 사람은 이번에 당선된 홍준표·남경필·원희룡 지사 정도”라고 덧붙였다.
실제 여권 내에서 가장 먼저 치고 나올 만한 잠룡(잠재적 대권주자)으로는 홍준표 경남지사가 거론된다. 홍 지사가 재선에 성공하면서 단숨에 대권 반열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번 선거 과정에서 확인된 PK(부산·경남) 민심 이탈을 확실하게 되돌린다면 당내 경선에서 충분히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다는 관측이 많다.
홍 지사의 대권욕은 지난해 진주의료원 폐업 문제를 놓고 중앙당은 물론 청와대와도 대립각을 세우면서 확인되기도 했다. 진주의료원 폐업은 여야는 물론 당에서도 찬반이 극심하게 엇갈렸지만 선거 결과로만 보면, 홍 지사는 도민들의 재신임을 얻은 셈이 됐다.
홍 지사가 재선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쏟아낸 발언들도 의미심장하다. 최근 PK 지역 핵심 현안으로 떠오른 경남-부산 물 공급 문제에 관해서 그는 “주민투표를 통해서 해결할 것”이라며 상생을 약속했지만, 정작 영남 최대 현안인 동남권 신공항 입지로는 “물구덩이(가덕도)보다 맨땅(밀양)에 짓는 게 낫다”고 하는 등 벌써부터 민감한 이슈들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히며 예열 중이다.
남경필 경기지사 당선인과 원희룡 제주도지사 당선인 역시 주목되는 잠룡들이다. 두 당선인은 그간 여권 내 ‘소장파’로서 개혁적인 목소리를 내면서 쌓아온 이미지와 앞으로 지자체장으로서의 성과를 더해 대권 가도에 오른다는 시나리오다.
특히 5선 국회의원인 남경필 당선인은 김진표 새정치연합 후보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면서 더욱 주가가 올랐다. 경기도는 유권자 수가 가장 많은 핵심 지역인 만큼 김문수 지사의 도정을 잘 이어받아 가꾼다면 무난히 대권에 나설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 지역은 이인제·손학규 등 역대 경기지사 대부분이 대권후보로 거론됐지만 한 번도 꿈을 이루지 못한 것이 갈증으로 남아 있기도 하다.
원희룡 당선인 역시 제주지사 경력을 발판으로 대권행을 예고한다. 여권은 원 당선인으로 인해 20년간 이어진 ‘제주판 3김(우근민·신구범·김태환)’ 정치의 막이 내렸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는다. 원 당선인은 개표 결과가 나온 직후 경쟁자였던 신구범 새정치연합 후보를 직접 찾아 앙금을 풀어내는 등 유연한 리더십을 보이기도 했다.
다만 수도권 및 중앙정치로부터 멀어졌다는 것이 큰 걸림돌이다. 그러나 친박계 한 재선 의원은 “원 지사가 결코 낙향한 것이 아니다. 제주 강정마을 문제를 원만히 해결하고, 20대 총선에서 제주 지역에 새누리당 의원을 배출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며 “제주는 중앙 정치권 이슈에 휘둘릴 필요가 없다는 게 강점이기도 하다”라고 긍정적 전망을 내놨다.
홍준표·남경필·원희룡 세 사람은 공교롭게 모두 비박계 혹은 비주류로 분류된다. 친박계에서는 서병수 부산시장 당선인과 유정복 인천시장 당선인 정도를 주목하는 분위기지만 잠룡으로 보기엔 아직 존재감이 덜하다는 게 중론이다. 앞서의 친박계 의원은 “당 바깥에서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반기문 대망론’을 부추기는 것보다 지금부터 광역단체장들을 중심으로 ‘50대 대망론’ 같은 걸 준비하는 게 낫지 않겠느냐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김임수 기자 ims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