든든한 아군 뿔나면 최악의 적군
MBC <아이돌 풋살월드컵>에 참가한 ‘애프터스쿨’. 팬들과 인사 문제로 마찰을 빚기도 했다.
애프터스쿨 소속사의 대응은 빠르고 명쾌했다. 변명하려 하지 않고 “잘못이 확인된 관계자들에 대해서는 엄중하게 처벌하고 향후 재발 방지를 위한 회사 내부의 교육도 진행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런 소속사의 대응을 바라보던 대부분의 연예기획사 관계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현명한 대처”라고 입을 모은다. 상대가 다름 아닌 팬클럽이었기 때문이다.
연예계가 거대화, 산업화되면서 그들을 좇는 팬클럽 역시 체계적으로 시스템을 갖춰가고 있다. 그들은 온라인이라는 공간을 통해 의견을 하나로 모으는 등 결속력이 강해지면서 단순한 지지 수준을 넘어 특정한 인물이나 분야를 열성적으로 좋아하는 문화현상인 ‘팬덤(fandom)’으로 발전했다.
그들은 단순히 스타를 좋아하고 선물 공세를 펴는 수준에 그치지 않는다. 추종하는 스타가 신작이나 신곡을 발표할 때는 신문과 현수막 광고, 버스 래핑 광고 등을 통해 직접 홍보에 나서고 안티팬들의 공격으로부터 ‘오빠’들을 보호한다. 생방송이나 녹화 현장에는 팬들이 준비한 도시락이 공수되고 관련 기사에 댓글 작업까지 한다.
JYP는 지난 2010년 ‘2PM’ 재범 사태에 항의하는 팬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당시 2PM의 팬들이 재범 사태 해결 과정에 불만을 드러내며 소속사 JYP엔터테인먼트 앞에서 시위를 가졌다. 약 2시간 동안 진행된 이 시위에는 200여 명의 팬들이 참여했다.
JYP엔터테인먼트 측이 재범의 영구 탈퇴를 공식 발표한 후 반대 여론이 거세지자 결국 JYP엔터테인먼트는 팬들과의 간담회를 열었다. 이 간담회는 언론에는 공개되지 않았다. 많은 기자들이 소속사 측에 간담회 내용을 알려 달라고 요청했지만 이 간담회는 철저히 소속사와 팬들 간의 비공개 행사로 진행됐다.
이에 대해 한 연예계 관계자는 “소속사가 언론에 모든 내부 사정을 일일이 공개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팬들의 경우 사정이 다르다. 그들 스스로 ‘식구’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당당히 소속사 측에 정보 공개를 요구했고 소속사가 이에 응한 것”이라며 “팬층이 이탈하는 것이야말로 스타와 소속사가 가장 두려워하는 일이다”고 말했다.
아이돌 그룹은 여타 솔로 가수들과는 태생부터 다르다. 철저한 기획과 트레이닝을 거쳐 캐릭터와 이미지를 만든다. 골수 팬클럽은 그들이 공식 데뷔하기 전부터 존재하며 그들이 연습생 신분을 거쳐 스타가 되는 과정을 함께한다. 향후 공식 팬클럽이 창단되면 이들은 팬클럽 운영의 핵심 역할을 맡는다. 때문에 각 소속사에는 이런 팬클럽의 수뇌부를 관리하는 이들이 따로 존재할 정도다. 지상파 음악프로그램 공개 녹화가 있을 때는 팬클럽 자리를 먼저 준비하고 콘서트가 열릴 때도 가장 좋은 자리는 팬클럽 회원들이 예매할 수 있도록 우선권이 주어진다.
이 관계자는 “유력 연예기획사에서 배출하는 아이돌 그룹은 데뷔 때부터 이미 체계적인 팬클럽이 존재하고 그들에 대한 관리가 이뤄진다. 그들을 바탕으로 새로운 팬층을 넓혀가며 입지를 굳혀가는 것이다. 때문에 소속 그룹에 대한 부정적인 기사 몇 개가 나오는 것보다 팬클럽 내부에서 소속사의 문제점을 지적할 때 소속사는 가장 큰 위기감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올해 초에는 아이돌 그룹 빅스의 소속사가 성난 팬클럽을 진정시키느라 애를 먹었다. 한 언론사와 빅스의 인터뷰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소속사 젤리피쉬의 한 직원이 무성의한 태도를 보였고 인터뷰 기사를 통해 이런 사실이 공개되며 문제가 불거졌다.
빅스의 소속사는 성난 팬클럽을 진정시키느라 애를 먹었다. 사진출처=www.realvixx.com
빅스의 팬들은 과거 소속사의 부적절한 대응 사례까지 지적하며 항의의 뜻을 밝혔고 팬들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으면 빅스 DVD 구매를 보이콧하겠다는 움직임까지 보였다. 결국 젤리피쉬 측은 “인터뷰 현장에서의 불미스러운 일에 대해서는 해당 직원이 매체 기자님을 찾아가 정중한 사과를 드렸고 오해를 풀었다. 이 직원에 대한 자체 징계가 있었으며 유사 상황의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 마련 논의가 진행 중”이라며 “팬 여러분들에 대한 응대와 각종 외부 업무를 수행함에 있어 모든 직원들이 실수를 거듭하거나 오해를 불러올 태도나 행동을 각별하게 주의할 것을 거듭 약속드린다”고 사죄하며 급한 불을 껐다.
물론 팬클럽이 지지하는 아이돌 그룹의 소속사 측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며 스타로 성장하도록 조언하는 건 긍정적 요소다. 하지만 일부 조직화된 팬클럽의 실력 행사가 스타와 소속사에 부담으로 작용하는 경우도 있다. 특히 ‘오빠들은 잘못이 없다’는 식의 팬클럽의 맹목적인 ‘스타 사랑’이 그릇된 방향으로 발현되곤 한다.
또 다른 연예계 관계자는 “소속사 입장에서 차마 밝힐 수 없는 내부 사정도 있다. 스타들이 어떤 잘못을 하고 이를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는 소속사를 향해 ‘우리 오빠는 잘못이 없다’며 무조건 소속사를 탓하는 팬들도 많다”며 “지나친 사랑은 오히려 과욕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꼬집었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