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번 예상 깨고 선전…한국 믿습니다!”
제파로프는 사우디에 있는 동안 한국을 많이 그리워했다며 선수 생활의 마지막 무대가 한국의 K리그였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월드컵 본선 진출 한 자리 놓고 한국과 경합
축구 선수라면 누구나 월드컵 본선 무대에 서 보는 것을 소원으로 꼽는다. 세르베르 제파로프도 다르지 않았다. 지난해 월드컵 최종 예선전을 치르며 한국과 같은 조에 속했던 우즈베키스탄은 목표 달성의 문턱에 오르기 직전, 한국의 골득실에 뒤져 3위로 밀려나면서 월드컵의 꿈을 접어야 했다.
“A조 3위로 플레이오프를 통해 월드컵 본선 진출을 노렸지만, 우리의 운은 거기까지였다. 예선전에서 많은 골도 넣고 팀의 주축 선수로 맹활약했다는 평가를 받았음에도, 브라질행 비행기에는 오를 수 없었다. 한국대표팀과의 A조 7차전(2013년 6월 1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0-1로 패하지만 않았어도 본선 행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었지만, 그 경기에 지면서 실낱같은 희망이 현실로 나타나지 않았다.”
당시 한국에 패한 우즈베키스탄은 이후 한국과 이란전에서 한국이 이란에 이기기만 했더라도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 지을 수 있었다. 그러나 한국은 최종예선 마지막 경기인 이란전서 0-1로 패하며 조 1위 자리를 이란에 넘겨줘야 했고, 같은 시간 우즈베키스탄이 카타르를 5-1로 대파하며 한국과 우즈베키스탄의 승점은 같아졌지만, 골득실에서 +1로 앞서며 간신히 브라질행 티켓을 거머쥘 수 있었다
“한국과 이란전 경기 결과를 보고, 뾰족한 칼이 내 심장에 꽂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내 생애 첫 번째 월드컵 출전 기회가 이렇게 사라졌다는 사실이 너무 아쉬웠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대표팀을 원망하진 않았다. 우리의 패배를 누구 탓으로 돌리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제파로프는 축구인생의 목표인 월드컵 출전에 대한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몸 관리만 잘한다면 4년 후를 기약할 수 있고, 우즈베키스탄의 공격형 미드필더로 활약 중인 그는 충분히 4년 후의 ‘희망고문’을 감당할 자신이 있다고 말한다.
지난해 열린 한국과 우즈베키스탄의 브라질월드컵 최종예선 7차전에서 우즈베키스탄은 한국에 0 대 1로 패해 본선 진출이 좌절됐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한국의 월드컵 예상? 솔직히 말해서…
“한국의 8회 연속 월드컵 출전이 부럽다. 최종예선 때 한국과 같은 조에 속했기 때문에 경기도 치러봤고, 대표팀 전력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지만, 당시엔 최강희 감독이 대표팀을 이끄셨고, 지금은 홍명보 감독으로 사령탑이 바뀐 터라 전력이나 전술에서 큰 차이가 있다고 본다. 선수 구성도 많이 달라졌고. 하지만 나도 한국 프로팀에서 생활하며 한국의 A매치가 벌어질 때마다 유심히 지켜봤는데, 한국이 속한 H조의 상대팀들이 어마어마하다. 솔직히 러시아, 벨기에는 한국으로선 버거운 상대다. 하지만 월드컵은 매번 이변과 돌발변수들이 충돌하면서 예상과 다른 결과를 가져다주기도 한다. 한국이 이번 월드컵에서 선전한다면 조 2위로 16강 진출에는 성공하지 않을까 싶다.”
제파로프는 한국의 16강 진출에 대해 ‘맥시멈’이라고 표현했다. 그렇다면 반대의 상황에선?
“객관적인 전력으로는 탈락할 가능성이 높다. 러시아와 벨기에가 FIFA 랭킹부터 선수 구성, 전력 등 모든 면에서 우위에 있다. 하지만 아직 경기도 치르기 전이다. 일단 두들겨 봐야 한다. 한국은 국제대회에서 매번 예상을 깨고 선전을 펼쳤다. 그렇기 때문에 희망을 갖고 임해야 한다고 본다.”
그래서 제파로프에게 짓궂은 질문을 던졌다. 한국이 아닌 러시아 벨기에 우즈베키스탄 알제리가 한 조라면 16강에 오를 팀이 어디인지를 물었더니 제파로프는 고민도 하지 않고 “우즈베키스탄은 생애 첫 월드컵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는 사실에만 만족할 것이다”라며 웃음을 터트렸다.
#우즈벡의 ‘청년 가장’ 제파로프
제파로프는 어렸을 때부터 축구와 체조를 시작했다. 축구는 동네에서 친구들과 함께 하는 ‘공놀이’ 수준이었지만, 체조는 학교에서 체계적으로 4년을 배웠다고. 그 덕분에 골 세리머니로 선보이는 ‘공중제비돌기’가 가능해졌다는 뒷얘기도 전한다.
“11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아버지 혼자서 누나와 나를 키우시느라 고생 많이 하셨다. 아버지가 공장에 다니셨기 때문에 집에서 밥해 줄 사람이 없었다. 나중에 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제대로 된 밥을 먹을 수 있었다. 다행히 축구를 잘한 덕분에 중학교, 고등학교에 한국의 특기자전형 입학처럼 혜택을 받으며 입학할 수 있었고, 고등학교 졸업 후 프로팀에 입단하면서 집안 경제를 책임지게 되었다. 축구는 우리 가족들의 생활을 윤택하게 만들었고, 아버지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나게 해주었다. 내가 만약 축구가 아닌 체조를 선택했더라면 지금의 제파로프는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우즈베키스탄의 별로 떠오르며 인기를 얻지도 못했을 것이다.”
제파로프는 2008년 우즈베키스탄 분요드코르 소속으로 19골을 터뜨리며 그 해 아시아축구연맹(AFC)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다. 2010년 FC서울로 6개월 임대돼 18경기서 1골 7도움을 기록, FC서울에 정규리그 우승을 선물했다. 이후 2011년 FC서울로 완전 이적했다가 2012년 사우디아라비아 알 샤밥으로 팀을 옮긴다.
“사우디에서 우리 가족들은 굉장히 힘든 시간을 보냈다. 한국에서 아주 만족스런 생활을 하다가 갑자기 환경이 바뀌니까 아내와 아이들이 괴로워했을 정도다. 여자는 경기장에도 못 들어갔고, 운전도 금지였고, 아이들도 밖에서 놀 수가 없었다. 더위가 거의 살인적인 수준이었다. 사우디에서 생활하는 내내 우리는 한국을 그리워했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게 됐을 때는 진짜 행복했다. 누구보다 아내가 가장 좋아했다.”
#박종환 감독의 ‘더티 플레이’
2002년부터 2012년까지 자신이 속한 팀에서 해마다 우승을 맛봤던 제파로프. 그가 한국 복귀를 앞두고 택한 팀은 FC서울이 아닌 성남 일화였다. 그 이유가 궁금했다.
“당시 안익수 감독이 나한테 했던 말을 잊지 못한다. 성남 일화의 우승을 위해선 나의 힘이 가장 필요하다고 하셨다. 안 감독은 나에게 서로 힘을 모아서 성남의 우승을 만들어보자고 말씀하셨다. 그 분의 진심이 나를 움직였다. 정말 기쁜 마음으로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러나 성남 일화는 지난 시즌을 끝으로 안익수 감독을 내보내고 박종환 감독을 새로운 사령탑으로 앉혔다. 성남 일화가 시민 구단인 성남 FC로 탈바꿈하며 성남 일화를 인수한 성남시는 감독 교체에 나섰고, 안 감독은 졸지에 실업자 신세가 되고 말았다. 제파로프는 자신이 믿고 따랐던 감독이 팀을 나가는 상황이 안타까웠지만, 박 감독 밑에서 더욱 열심히 하겠다는 다짐과 함께 올 시즌을 맞이하게 된다. 그러나 박 감독은 조금씩 제파로프를 전력에서 열외시키며 언론을 향해 제파로프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가장 강조했던 말이 ‘제파로프는 선수도 아니다’란 얘기였다.
“그때는 내가 바보가 된 듯했다. 내가 왜 선수도 아닌 선수가 돼버렸는지, 내가 왜 그라운드가 아닌 벤치에만 머물다 퇴근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터키 전지훈련 때만 해도 연습경기에서 도움 2개, 골 3개를 터트리며 박 감독의 사랑을 받았었다. 그런데 시즌 들어가서는 갑자기 선수도 아니라는 얘기가 들렸다. 처음에는 속앓이를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신경을 안 썼다. 내가 선수가 아니면 그도 같은 입장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박종환 감독의 경질이 발표된 날, 자신의 SNS를 통해 ‘굿 뉴스’라고 표현하는 바람에 또 한 차례 구설수에 올랐다. 곧바로 삭제됐지만, 제파로프로선 박종환 전 감독에 대한 감정을 그렇게라도 나타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나한테는 ‘굿 뉴스’였지만, 누구한테는 ‘굿 뉴스’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에 그 글을 삭제했다. 난 그 분을 보고 이 팀에 온 게 아니다. 우리 팀의 승리를, 우승을 위해 왔다. 앞으로 그런 간절함이 경기장에서 어떻게 나타나느냐가 중요하다. 지금 우리 팀을 이끌고 있는 이상윤 감독님과 좋은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자신이 있다. 그래서 시즌 후에는 우리 팬들에게 진짜 ‘굿 뉴스’를 전해드리고 싶다. 그게 올 시즌 목표다.”
제파로프는 선수 생활의 마지막 무대가 한국의 K리그였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현재 자신의 고향인 우즈베키스탄에 자신의 이름을 딴 축구장을 건설 중인 그는 은퇴 후 축구 관련 일을 하며 남은 인생을 봉사하며 살고 싶다는 바람도 전했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