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심 업고 당 흔드나’ 친박도 경계
이정현 전 수석.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박근혜 대선 캠프 출신의 여권 핵심 관계자는 이정현 전 수석 사의 표명이 알려진 직후인 6월 7일 이같이 말하며 “출마 지역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이 전 수석 본인의 출마 의지가 강하고, 박 대통령 역시 여기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이 전 수석은 아직 별다른 입장을 내놓고 있지 않지만 여의도 주변에선 서울 동작과 경기 김포 등 3~4곳이 출마 후보 지역으로 거론되고 있다. 앞서의 여권 관계자는 “승리 가능성이나 당내 경선 등을 종합했을 때 김포 쪽이 유력하다”고 내다봤다.
이 전 수석 출마를 지켜보는 새누리당 내 시선은 그다지 곱지만은 않다. 이 전 수석이 재보선에 출마할 경우 야권이 ‘박근혜 정부 심판론’을 들고 나올 것이란 우려가 깔려 있다.
당권에 도전하고 있는 김무성 의원은 6월 9일 기자간담회에서 “이 전 수석이 출마하면 재보선이 이 정권에 대한 중간평가 선거가 돼버린다”며 “이 전 수석은 그 누구보다 대통령에 대한 충정이 강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러지 않을 것이라 본다”며 출마 불가론을 주장하기도 했다. 이러한 김 의원 발언에 새누리당 적잖은 의원들이 공감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 속을 들여다보면 좀 더 미묘한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이 전 수석 출마를 주제로 대화하던 몇몇 의원들이 “청와대에서의 왕수석 노릇이 지겨웠나보다”, “개선장군처럼 의기양양하게 당으로 돌아왔다”며 수군대는 장면도 포착됐다. 다분히 비아냥거림이 섞인 어조다.
이재광 정치평론가는 “정권 출범 후 박 대통령은 일부 측근을 제외하곤 논공행상에서 당을 챙기지 않았다. 반면 이 전 수석은 인수위 때부터 박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며 최고 실세로 자리매김했다. 새누리당 의원 일부가 이 전 수석을 폄하하거나 못마땅해 하는 것도 이런 배경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권에선 이 전 수석 행보에 따라 여권의 정치 스케줄도 달라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전 수석은 대선캠프 공보단장과 인수위 비서실 정무팀장, 청와대 정무수석을 거쳐 홍보수석까지 맡으면서 박 대통령 의중과 국정철학을 가장 깊숙이 꿰뚫고 있는 인사로 꼽힌다. 박 대통령이 어떤 형태로든 이 전 수석에게 중책을 맡길 것으로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더군다나 7월 14일 전당대회와 7월 30일 재보선과 같은 중요한 정치 일정을 목전에 두고 있는 시기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비박과 친박 간 치열한 주도권 싸움이 예상되는 가운데 박 대통령의 각별한 신뢰를 받고 있는 핵심 친박 인사인 이 전 수석 ‘컴백’은 남다른 의미를 가진다는 평이다.
새누리당 내부에서 이 전 수석을 달갑지 않게 여기는 분위기가 흐르는 것도 이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새누리당의 한 비주류 중진 의원은 “이 전 수석이 당으로 왔다는 것은 박 대통령이 집권 초부터 계속됐던 청와대 중심의 당·청 관계를 더욱 강화하겠다는 것 아니냐”고 반문하며 “그동안 청와대에 일방적으로 끌려 다녔던 것에 대한 당의 불만이 컸던 만큼 반발도 적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대통령직인수위 시절 박 대통령과 함께한 모습. 사진공동취재단
그런데 이 전 수석 ‘친정’이라고 할 수 있는 친박에서조차 비슷한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는 ‘박심’을 등에 업은 이 전 수석 등장으로 친박 지형이 요동칠 수 있다는 판단에서라고 한다. 집권당 주류 친박은 언뜻 보면 단일대오를 이루고 있는 것 같지만 정권 출범 이후 여러 차례 분화를 거듭해 왔다. 그 결과 지금은 친박 좌장 ‘서청원계’와 홍문종·최경환·윤상현, ‘친박 3인방’으로 대표되는 당권파가 균형을 이루고 있다.
또 친박에 속하긴 하지만 사실상 비주류에 가까운 의원들도 있다. 이 전 수석에 대한 비토 목소리는 이러한 친박 세력 분포와 연관 지어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권대우 정치평론가는 “이 전 수석은 박 대통령 대변인을 자처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당심’을 얻는데 있어서 가장 큰 무기가 될 수 있다”면서 “이 전 수석이 서청원-당권파의 양강 구도 판을 흔들려 한다면 친박 내부에서 힘겨루기가 벌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치권에선 이 전 수석이 전당대회 및 재보선과 관련해 박 대통령 ‘오더’를 받았다는 것을 십분 활용해 적극 목소리를 낼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친박 의원은 “박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수습 과정에서 친박 의원들이 제대로 엄호 사격을 하지 못했다는 것에 대해 불만을 품고 있다. 이 전 수석을 ‘차출’한 것은 박 대통령 뜻을 더욱 정확히 당에 전달하라는 것 아니겠느냐”면서 “박근혜 정부 1기에서 당을 이끌었던 최경환이 입각하고, 그 ‘바통’을 이정현이 이어받았다는 것에 주목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이 전 수석이 박 대통령을 앞세워 자기 정치에 나설 것이란 소문도 확산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이 전 수석이 비박계는 물론 친박과 갈등을 빚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정가의 우세한 관측이다. 또 다른 친박 중진 의원은 “더 이상 당이 청와대에 끌려 다녀선 안 된다는 공감대가 퍼져 있는 상황에서 이 전 수석이 무조건 박 대통령 입장만을 옹호한다면 역풍을 맞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전 수석이 ‘마이 웨이’를 할 것이란 소문에 대해서도 앞서의 중진 의원은 “보좌관 출신인 이 전 수석은 선수로 치면 비례대표 한 번 한 게 전부다. 아무리 박 대통령 복심이라고는 하지만 의원들 사이에선 중량감이 떨어진다. 호락호락하진 않을 것”이라고 부정적으로 전망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