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연습은 없다’ 잠자는 투지를 깨워라
6월 11일 오후(현지시간) 한국 대표팀이 베이스캠프인 브라질 이구아수 페드로 바소 경기장에서 첫 공식 훈련을 하는 모습. 경기장 밖으로 브라질 군인들이 경계근무를 섰다. 연합뉴스
# 브라질 대표팀 단골 훈련지
일단 월드컵 전초기지라 할 수 있는 베이스캠프는 여러 모로 합격점이었다. 브라질 파라나주 포스 도 이구아수는 전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관광 명소다. 엄청난 규모의 폭포 정기를 받으며 태극전사들이 오직 축구에만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이 하나 있다. 이구아수를 베이스캠프로 희망한 건 비단 한국만이 아니었다. 유럽 강호 크로아티아와 아프리카 신흥강국 코트디부아르가 있었고, 러시아 또한 이곳을 낙점했다.
하지만 한국의 발 빠른 움직임이 명암을 갈랐다. 아예 월드컵 본선을 확정짓기 전부터 움직였다. 브라질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이 한창이던 지난해 2월 대한축구협회는 직원들을 현장으로 파견해 월드컵 캠프 후보지를 답사하고 돌아왔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브라질월드컵 조직위원회를 통해 추천받은 50여 곳 가운데 20여 곳을 둘러봤다. 최종 결정한 것은 지난해 10월이었다.
이번에는 대표팀 김태영 코치가 현장을 직접 살핀 뒤 홍명보 감독에게 보고를 했고, 이구아수와 가계약을 하기에 이르렀다. 축구협회와 이구아수시(市)가 최종 계약서를 주고받은 것은 올해 1월 대표팀의 동계 강화훈련을 진행한 직후. 오랜 월드컵 경험이 빛을 발했다. 축구협회는 사전에 좋은 곳을 ‘찜’하지 않으면 경쟁국이 몰릴 경우 불리해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공개 훈련 도중 브라질 교민이 건넨 태극기에 사인을 하고 있는 홍명보 감독. 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
러시아는 뒤늦게 움직였지만 허사였다. 뒤늦게 알려진 사실이지만 이구아수는 개최국 브라질에게 각별한 장소다. 1999코파아메리카 대회와 2002한일월드컵 등 굵직한 주요 대회를 앞두고 이구아수에 캠프를 차렸고, 우승을 하기도 했다. 결국 베이스캠프 선정에서 한국에 밀린 러시아는 일본과 함께 대도시 상파울루에서 두 시간 가까이 떨어진 소도시 이투에 베이스캠프를 차렸다. 환경은 나쁜 편이 아니지만 교통이 불편하다. 브라질은 워낙 국토 면적이 넓어 경기 장소로 이동하려면 열차나 버스 등이 아닌, FIFA에서 제공하는 출전국 선수단 전용 전세기를 이용해야 하는데 이투에는 공항이 없다. 반드시 상파울루로 이동해 움직여야 했다.
선수단 호텔에서 공항까지 5~10분 떨어진 이구아수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 아주 자그마한 부분까지 챙겨야 하는 입장에서 동선이 어렵다면 선수들의 피로가 점차 커질 수 있다. 대표팀을 돕기 위해 파견된 이구아수 시 관계자도 “이구아수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7대 문화유산인 이구아수 폭포가 있을 뿐 아니라 최상의 환경이 조성돼 있어 대도시의 탁한 공기를 마시며 훈련을 해야 하는 다른 국가보다 한국이 훨씬 사정이 좋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태극전사들은 이구아수의 고급 호텔 중 하나인 버번 카타라타스 컨펜션 & 스파 리조트에 머물고 있다. 한국에서 날아간 취재진이 머무는 호텔의 바로 앞에 위치해 서로 간의 커뮤니케이션도 나쁘지 않다. 이번 대회를 위해 전 세계에서 몰려든 취재진은 9000여 명에 달한다. 한국에서는 취재기자 55명과 사진기자 20명, 방송 취재진 60여 명이 현장에 파견됐다.
태극전사들은 아레나 페드로 바소(닉네임 플라밍고)에서 공식 팀 훈련이 끝나면 호텔 실내외에 마련된 수영장에서 피로를 푼다. 훈련장은 파라나주 리그 클럽인 플라밍고의 홈구장인데, 대회를 앞두고 FIFA 정규 규격에 맞게 완전히 리모델링을 했다. 호텔 뒤뜰에도 미니 잔디 축구장이 조성돼 있어 선수들은 족구나 가볍게 볼을 주고받으며 몸을 풀었다. 벤치프레스, 러닝머신 등 피트니스센터에서 땀을 흘리긴 해도 아무래도 한국의 시설과는 차이가 있어 딱히 도움은 주지 못한다는 후문.
전세기를 타고 미국 마이애미에서 브라질로 이동한 선수단. 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
이번 대회에는 한국 대표팀을 전담 취재하는 각국 기자들을 위해 간이 미디어센터가 운용되고 있다. 이미 유럽과 남미 등은 A매치나 국제대회 등이 열릴 때면 원정을 떠나서도 별도의 미디어센터를 운용했는데, 한국은 이번에 처음 시도했고 지난 14일 축구협회 정몽규 회장이 참석한 가운데 미디어센터 오프닝 행사를 진행했다.
하지만 모든 게 꼭 좋은 건 아니었다. H조에서 한국만이 이구아수에 캠프를 차리면서 일부 안 좋은 경험도 했다. 러시아가 베이스캠프를 차린 이투 이외에도 벨기에가 여장을 푼 모지다스 크루지스, 알제리의 소로카바 등은 모두 상파울루 인근 도시다. 그런데 여러 국가들이 역시 상파울루 혹은 인근 지역을 선호했다. 그러다보니 러시아와 벨기에 등은 비공개 또는 비공식 평가전을 갖기가 수월했다. 한국도 현지에서 연습경기를 고려하기도 했지만 이 경우, 비행기를 타고 원정 아닌 원정을 떠나야 했던 탓에 그냥 팀 훈련을 하고 자체 연습 게임을 하는 정도로 만족해야 했다. 물론 비공개 연습경기는 자신들의 전력이 노출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지만 현지 기후에서 실전을 하는 것도 장점이 크다.
결국 대회를 앞두고 소집훈련을 시작해 최소 4경기 이상 공식 및 비공식 A매치를 치른 상대국들과는 달리 홍명보호는 국내에서의 튀니지 평가전(5월 28일), 마이애미에서 가나 평가전(6월 10일) 등 A매치 2회에 만족해야 했다. 홍 감독은 “러시아는 동유럽 특유의 강한 신체조건과 체력을 앞세운 축구를 구사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전형적인 동유럽 스타일이 아니다. 실제로는 패싱 축구와 탄탄한 조직력이 인상적이다”라며 가나전에 대한 의미를 애써 부여했지만 유럽 국가들과 2차례 승부해야 하는 상황에서 아프리카 국가들과의 2연전은 썩 납득할 수 없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 쿠이아바는 아직도 공사 중
대표팀은 15일 이구아수를 떠나 쿠이아바로 향했다. 이구아수에서의 첫 이틀(11~12일)은 휴식에 무게를 뒀고 13~14일 이틀 동안은 막판 조직력 다지기에 매진했다. 이구아수에서 쿠이아바는 본래 직항 항공노선이 없지만 월드컵 참가 선수들은 모두 전용기를 타기 때문에 불과 1시간15분 만에 도착했다. 반면 기자들과 일반 팬들은 모두 상파울루 혹은 쿠리치바 등을 경유해 이동해야 했다. 그러다보니 대표팀보다 빨리 현장에 도착해 선수들을 기다리려면 하루 빨리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6월 10일 마이애미에서 열린 한국과 가나의 평가전. 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
선수들은 오전에 쿠이아바에 도착, 팀 호텔인 드빌레 쿠이아바에 여장을 푼 뒤 곧장 오후 훈련을 진행했다. 장소는 바라 도 파리. 대회를 앞두고 역시 신축공사가 이뤄진 곳이다. 축구협회는 이후 대회 조별리그 2차전 알제리전(23일 오전 4시, 포르투알레그리)와 3차전 벨기에전(27일 오전 5시, 상파울루) 때는 경기 하루 전에 이동해 실전이 펼쳐질 경기장에서 팀 공식 훈련 1회만 하기로 결정했지만 쿠이아바에는 러시아전의 중요성을 감안해 하루 빨리 이동하는 편을 택했다.
선택은 어쩌면 당연했다. 브라질 마토 그루스주의 주도인 쿠이아바는 남미 대륙의 정중앙이다. 총면적은 3538㎢에 달하지만 밀도가 낮아 인구는 인근 지역까지 약 100만 명 정도에 불과하다. 분지 지형의 이곳은 마나우스와 함께 브라질 내에서도 가장 더운 곳으로 꼽히는데, 연평균 기온이 섭씨 31도다. 지구상 최대 습지인 판타나우 지역에 위치해 30도를 웃도는 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12시간의 시차를 보이는 포르투 알레그리나 상파울루 등과는 달리 13시간의 시차가 났다.
그런데 쿠이아바는 월드컵이 한창인 지금 이 순간에도 대대적인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기자가 올해 1월 이곳을 찾았을 때도 공항 청사와 활주로 등을 확장하고 있었는데 5개월여가 흐른 요즘에도 크게 바뀌지 않았다. 그저 시뻘건 흙탕물이 콸콸 흘러가던 경기장 주변만 간신히 정비한 정도였다. “남아공도 이렇지는 않았다. 역대 최악의 월드컵”이라는 FIFA에서의 푸념이 괜한 게 아니었다. 극심한 도로 정체 현상으로 도보로 이동해도 20여 분이면 충분할 거리를 한 시간 가까이 차를 타고 움직여야 도착이 가능할 정도였다.
아레나 판타나우는 쿠이아바 지역 축구클럽인 믹스투의 홈구장 베르다우를 허물고 2010년 5월부터 공사가 시작됐는데 계획대로라면 지난해 12월 31일까지는 완공돼야 했다. 그러나 수많은 이유로 공사는 계속 차일피일 미뤄졌고, 월드컵 직전에야 FIFA의 ‘사용 승인’을 받았다. 시공비 5억 1900만 헤알(약 2700억 원)이 들었다고 하는데 경기장은 대부분 쓰레기 재활용 자재로 구성됐다.
선수들은 “하도 언론에서 브라질월드컵 준비 상태가 심각하다고 해서 놀랐는데, 막상 와 보니 정말 그랬던 것 같다”면서도 “어찌됐든 우린 시설보다는 결과를 가져가야 한다. 모든 국가들이 똑같은 입장이다. 같은 입장에서 똑같이 싸우는데 이런 걸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입을 모았다.
브라질 이구아수·쿠이아바=남장현 스포츠동아 기자
축구 천국 브라질 이모저모 ‘현지인과는 절대로 축구를 논하지 말라’ 뭔가 준비가 허술한 브라질이었지만 확실한 건 이곳이 ‘축구 천국’이라는 사실이다. 24시간 내내 현지 TV에서는 축구 중계가 끊이지 않았다. 심지어 축구와 별 연관이 없어 보이는 이구아수의 지역 채널조차 축구 중계를 송출하고 있었다. 워낙 축구 인기가 높다보니 현지 교민들은 “절대로 브라질 사람들과 축구 이야기를 하며 잘난 체를 해서는 안 된다. 서로 흥분하다 보면 큰 싸움이 벌어질 수도 있어 각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꼭 강도가 아니더라도 축구 때문에 사망 사고가 흔한 곳이 바로 브라질”이라고 조언했다. 취재진이 출국에 앞서 축구협회와 여행사가 배포한 자료에도 “절대로 축구 이야기를 하지 말라”는 친절한 조언이 담겨 있었다. 현지에서 마주친 브라질 인들은 천성적으로 느긋해 보였다. 대낮부터 술집과 식당 등지에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축구를 보는 모습을 자주 접할 수 있었다. 물론 대개가 유니폼을 걸친 채였다. 그래서인지 시내 중심가의 쇼핑몰은 물론, 길거리 노점상에서도 유니폼을 유통하고 있었다. 물론 차이는 있었다. 쇼핑몰에서는 나이키, 아디다스 등 공식 숍에서 파는 진짜 유니폼을 판매했고 노점상에서는 브랜드 마킹이 없는 일명 ‘짝퉁’ 유니폼들을 전시했다는 점이다. 기자가 올해 1월 이곳을 찾았을 때는 나이키 숍에서 대표팀 유니폼은 브라질이 전부였지만 요즘은 시기가 시기인 만큼 나이키가 후원하는 국가 유니폼이 전시돼 있었다. [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