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1월7일 서울 강남에서 외출중인 엄아무개 여인과 황장엽씨와의 사이에서 얻은 것으로 알려진 일곱 살난 엄군의 뒷모습. 왼쪽은 지난해 12월 출판기념회에서 손님을 맞고 있는 황장엽씨.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지난 1997년 2월 우리나라로 망명한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국제담당 비서(81). 그에게 ‘숨겨진 여인과 아들’이 있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확인됐다. 황 전 비서는 망명 이후 국정원 안가에서 생활하며, 국정원 산하 ‘통일정책연구소’ 이사장을 맡았다. 그러다가 지난해 8월 망명한 지 6년4개월여 만에 국정원의 ‘특별보호대상’에서 벗어나 일반 탈북자와 같이 경찰의 경호 아래 서울 모처에서 살고 있다.
팔순을 넘긴 고령임에도 그는 지난 3월 ‘북한민주화포럼’을 결성했으며, 9월에는 김영삼 전 대통령을 명예위원장으로 영입, 인터넷 ‘자유북한방송’ 방송위원회 위원장에 취임했다. 지난 11월26일에도 탈북자단체 관계자들과 ‘북한민주화동맹’ 활성화 방안을 논의, 최근 부쩍 활발한 대외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런 그에게 마흔세 살의 여인과의 사이에서 얻은 일곱 살짜리 아들이 숨겨져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일본과 미국 당국에서도 큰 관심을 가질 전망이다.
황씨의 아들은 지난 1998년 10월26일 태어나 올해로 일곱 살인 엄아무개군. 그런데 엄군의 성이 왜 ‘황씨’가 아닌 ‘엄씨’인지에 의문이 생긴다. 이는 엄군의 생모인 엄아무개씨의 성을 따랐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엄군의 출생 비밀을 감추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 정통한 소식통 따르면, 엄씨는 서울 강남에서 고급식당을 경영하고 있으며, 황씨가 국정원 안가에서 생활할 때 밥을 해주는 등 수발을 들면서 황씨를 처음 알게 돼 아이까지 낳았다고 한다.
전국적으로 엄씨와 같은 성과 이름을 가진 이들은 모두 4명. 이들 가운데 서울 강남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은 ‘엄군 엄마’가 유일하다. 그렇다면 황씨의 ‘남한 부인’이자 엄군의 생모인 엄아무개씨는 과연 누구일까.
엄씨는 1961년생으로 올해 43세. 황씨와는 무려 서른여덟 살의 나이 차이가 나는 셈이다. 충북 출신으로, 부친 엄아무개씨와 모친 사이에 태어난 3남2녀 가운데 막내다. 부친은 지난 1981년 7월에, 모친은 1987년 8월에 각각 사망했다. 이후 그는 큰오빠(66)의 호적에 등재됐다가, 아들 엄군이 태어난 지 한 달 정도 지난 1998년 11월23일에 큰오빠의 호적에서 분가했다. 그리고 서울에서 태어난 엄군을 자신의 아들로 호적에 올렸다.
엄씨는 서울 강남에서 지난 2003년 2월부터 D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이 식당에는 요즘 같은 경기 침체기에도 문전성시를 이룰 정도로 손님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고 있다. ‘불황 속의 호황’을 구가하고 있는 인기 업소인 것. 또한 엄씨는 지난 10월 의약품 및 의료기기 판매업을 주로 하는 회사(자본금 5억1천만원)를 설립, 맹렬 여성 사업가로 활동하고 있다. 이 회사는 설립된 지 얼마 되지 않은 까닭에 아직은 이렇다 할 사업실적이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 회사는 엄씨가 대표이사를 맡고 있으며, 그의 큰언니 부부가 이사로 등재되어 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D식당이 입주해 있는 건물에는 한때 황씨의 개인 연구소도 함께 있었다. D식당의 지배인은 지난 4월 기자와 만나 “난 이곳(식당)에서 일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이 건물에는 무슨 ‘북한문제연구소’가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엄) 사장님의 언니네가 살고 있다. 그런데 그 연구소 앞으로 요즘도 우편물이 많이 배달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일요신문>(제574호, 2003년 5월18일자)은 황씨 측근들의 말을 인용해 “황씨가 강남에서 ‘개인 연구소’를 극비리에 운영하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당시 보도했던 ‘강남 연구소’가 D식당 지배인이 언급했던 ‘북한문제연구소’였던 셈이다. 황씨는 지난해 5월부터 10월경까지 이 건물 6층에서 ‘극비리에’ 북한문제연구소를 운영하다 이후 다른 곳으로 이전했다. 그렇다면 황씨가 이곳에서 연구소를 운영했을 당시에는 엄씨 등과 함께 지냈을 공산이 매우 크다.
D식당과 엄씨 회사가 입주해 있는 건물과 토지는 현재 엄씨의 소유로 등재돼 있는데, 한때 토지 소유권 이전과 관련해서도 ‘황-엄’ 두 사람이 얽혀 있었다. 엄씨는 지난 2001년 4월14일 이 토지를 매입했다가, 같은 달 28일 황씨가 이 토지에 대한 매매를 예약하면서 가등기했다. 그러다가 2002년 7월11일 황씨의 가등기가 말소되면서 엄씨 소유로 남아있다.
대지 85평에 지난 2003년 1월 세워진 이 건물은 지하 1층, 지상 6층 규모(연건평 2백69평)로, 지하 1층부터 3층까지는 엄씨가 운영하는 식당으로 사용되고 있다. 4층은 외부의 한 업체에 임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5층은 엄씨가 설립한 회사 사무실로, 6층은 이 회사의 이사로 등재된 큰언니 부부와 딸들이 거주하고 있다.
취재진이 관찰한 바로는 황씨의 아들 엄군은 매우 활달한 성격이었다. 붙임성도 좋아 보였다. 지난 11월6일 엄씨의 친척 모임이 D식당에서 열렸는데, 엄군은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자신보다 몇 살 많아 보이는 사촌형제들과 잘 어울려 놀았다.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심도 거의 없어 보였다. ‘피는 못 속인다’고 했던가. 엄군의 눈매를 보면 첫눈에도 황씨를 닮았다고 느낄 정도다.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기자는 올해 초부터 엄씨측에 인터뷰를 요청했다. 하지만 엄씨는 자신의 측근을 통해 “할 말이 없다”며 거절했다. 식당을 찾아가도 잦은 외출로 만날 수 없었다.
그러다 지난 11월 ‘마침내’ 엄씨를 D식당 부근에서 만났다. 그는 기자 신분을 밝히자, 무슨 질문인지 듣지도 않은 채 다짜고짜 “남의 사생활을 갖고 왜 그러냐”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엄군이) 그분(황씨)하고 상관이 있다면 그분한테 물어봐라. 그분 자식도 아닌데 왜 이러냐. 소문 갖고 왜 이러냐”며 엄군이 황씨의 아들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렇지만 더 이상 설명하려 하진 않았다. 어떻게든 기자를 피하려고만 했다.
만일 그가 진짜 황씨 아들인 엄군의 생모가 아니라면, 굳이 그렇게까지 기자를 피할 이유가 없었을 것. 더군다나 기자가 왜 인터뷰를 요청하는지도 모르면서 막무가내로 “할 말 없다”만 반복한 점도 쉽게 납득할 수 없는 대목이다.
그런데 황씨의 측근 인사들에게서 엄씨와 엄군에 관한 얘기를 우회적으로 들을 수 있었다. 2003년 말 황씨의 한 측근은 “황 선생님 연세에 자식이 있으면 좋은 것 아닙니까”라며 간접적으로 아들의 존재 사실을 시사했다. 이 측근은 한 탈북자 단체의 고위관계자로 현재도 황씨와 상당히 가까운 인사인데, 당시 구체적인 사실에 대해선 언급을 회피했다. 최근 이 측근과 전화를 통해 엄씨와 엄군의 실명을 거론하며 질문하자 “엄씨가 누구인지 모르고, 그런 얘기라면 하지 말자”며 예전과는 달리 냉랭한 목소리로 짧게 말했다.
황씨의 또 다른 측근으로 한때 우리나라 정치권의 실세였던 한 인사는 최근 기자를 만나 “국정원 내부에서 밥해주고 수발을 들어주는 사람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린애를 낳았다는 것은 부정한다. 루머라고 생각한다”고 말하면서도 “(황씨에게) 사생활에 대해서는 묻지 않는다. 그렇지만 (아이를) 낳을 수도 있는 것 아니냐. 있을 수도 있는 일 아니냐”는 묘한 뉘앙스의 말을 남기기도 했다.
여기서 앞서 언급했던 정통한 소식통의 전언과 비슷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엄씨가 “황씨에게 밥을 해주던 사람”이었다는 점이다. 일각에선 “황씨가 국정원에 머물던 시절 그의 여비서가 아이를 낳았다”고 알려졌는데, 그렇다면 엄씨는 황씨가 국정원 체류 시절 수발을 들던 여비서였을 가능성이 높다.
황씨는 지난 6일 전화통화에서 ‘엄씨를 아느냐’는 물음에 “내 비서였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엄군이 친자인지 묻는 질문에 대해선 “왜 당신네들은 그런 ‘시시한 문제’를 가지고 자꾸 얘기하느냐”며 언성을 높였다. 엄군이 친아들인지에 대해선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았다.
북한 민주화를 주장하고 있는 황씨는 국내외로부터 주목받는 대표적 탈북 인사다. 현재까지의 탈북자 가운데 최고 거물급 인사인 것이다. 그래서인지 최근엔 일본에서 내년 봄께 수립될 북한 망명정부의 대표로 추대될 것이라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황씨는 이에 대해 “(대표를 맡을)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김지영 기자 you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