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96년 12·12 및 5·18과 관련해 법정에 나란히 선 노태우 전두환씨. | ||
전씨는 검사의 질문에 대해 일부는 “○○○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설명을 드리겠다”며 다소 장황하게 상황을 설명하기도 했다. 그리고 대부분 자신의 주장을 강하게 피력했다.
반면 노씨는 대부분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잘 모르겠다” “기억이 없다” “내가 대답할 성질이 아니다”로 일관하고 있다.
전씨는 “당시 시국이 시끄러운 이유는 3김씨가 순리적인 정치 일정을 기다리지 못하고 급히 권력을 잡을 욕심에 사회를 혼란스럽게 하기 때문이라고 판단하였다”고 밝혔다.
그간 세간에 알려졌던 일부 사실에 대해서는 인정하기도 했다. 그는 “국보위 상임위원장으로서 실질적으로 내가 국보위를 이끌었던 것은 맞다”고 했고, “80년 초여름경 당시 김원기 경제부총리에게 요청해서 돈 1백억원을 지원받은 사실도 있다”고 시인했다. 이 자금은 전씨가 민정당을 창당하는 데 쓰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5·18 민주항쟁에 대해서는 그는 시종일관 “계엄사에서 한 일로서 당시 보안사령관이었던 내가 답변할 성질이 아니다”라는 말로 답변을 피해갔다.
그는 최 대통령의 하야 과정에 대해서는 “내가 여러 사람들로부터 최 대통령의 하야 과정에서 강압적인 수단을 사용한 것인 양 의심받고 있는 입장이므로 내 진술은 변명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그 관련 질문은 최 전 대통령에게 직접 해달라”고 답하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집권 과정과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집권 과정이 어떤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검사의 질문에 “박 장군은 분명히 혁명을 하여 정권을 잡았고, 나는 정권을 잡을 생각이 없었는데 결과적으로 대통령이 되었을 뿐”이라고 언급해 눈길을 끌었다.
한편 노씨는 검사의 질문에 대부분 “모르겠다”는 짧은 대답으로 일관하다가 검사로부터 “왜 거짓말을 하느냐”는 등의 다소 공격적인 질문을 받기도 했다.
그런 가운데서도 광주 항쟁에 대해 노씨가 언급한 견해는 눈길을 끌었다. 노씨는 “광주사태가 심각해진 원인은 첫째 악성 유언비어가 난무하여 광주 시민을 자극했고, 둘째 서울은 시위 발생시 군인이 출동하는 심각한 지경에 이르면 시민들이 대항하지 않는데, 광주는 군인들도 경찰과 같이 생각하여 함부로 군인에게 투석 등을 한 것이 과잉진압을 부른 측면이 있다. 셋째로는 광주사태 직후 군에서 책임자를 적발해 내어 엄벌했어야 했는데 미온적으로 처리한 부분이 있다”고 밝혔다.
두 전직 대통령은 역사적인 이 피의자 신문조서의 마지막 장에 모두 자필 사인을 하고 지장을 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