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 깎아준 대가 밤 한 자루…
▲ 강만수 전 재경부 차관 | ||
강 전 차관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1970년 행정고시를 패스, 경주세무서 총무과장으로 첫 공직에 발을 디뎠다. 그가 부임한 첫 해 영천 금호강변에서 한 직원이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세금을 가혹하게 매긴 세리가 맞아죽었다는 소문이 흉흉했다. 현대판 암행어사라고도 불리는 청와대 민정비서관이 내려올 정도였다. 사실은 술에 만취되어 강변에서 동사한 것이다. 당시 자장면이 1백40원일 때 하루 출장비가 1백50원밖에 되지 않았고, 2만원의 월급은 1만8천원의 하숙비를 내느라 목민심서에 나오는 청렴한 목민관이 되고자 하는 결심에 회의가 들기도 했다고 한다.
당시 농촌에선 밀주단속을 하던 때였다. 강 전 차관은 어린 시절 자신의 할머니가 세무직원이 시키는 대로 술동이를 이고 징검다리를 건너다 넘어진 것이 생각나 밀주 단속을 못하게 해 세무서 직원과 다투기도 했다. 이후 농주단속법은 20년이 지난 뒤에야 폐지됐다.
한 농민이 대를 걸쳐 홍수에 터진 둑을 고치며 일군 하천부지를 매각할 때 신고가격을 절반으로 깎아주기도 했다고 한다. 조세 원칙과 배치되는 것이었지만, 농민들의 입장에 선 인간적인 세리가 되겠다는 것이 강 전 차관의 신념이었던 것이다. 그 농민은 그 해 가을 밤 한 부대를 가져와 세무직원과 밤 잔치를 벌였다고 한다.
당시 구하기 힘든 청자 담배를 피다 신문 가십에 나기도 했다고 한다. 돈을 주고 기자증을 사서 다니는 기자들 워낙 많아 부임턱을 제대로 못한 결과였다고 한다. 쌀이 모자라던 시대 경주시장 환송연에서 쌀밥을 먹은 것이 방송에 보도되던 시절이었다.
이처럼 세무행정이 세무직원들의 재량에 의해 결정되던 때이다 보니 세금을 매기며 돈을 먹었다고 검찰에 잡혀가는 일이 다반사였다. 강 전 차관은 공직에 대한 회의를 느낄 때마다 국립경주박물관장으로부터 신라 얘기를 듣곤 했다고 한다. 박물관장은 강 전 차관을 위해 에밀레종을 쳐주기도 했다.
겨울을 경주 남산의 암자에서 나기도 하고 폐결핵을 앓은 뒤 운동을 하기도 하는 등 강 전 차관은 첫 공직 생활을 시작한 경주에 남다른 추억을 가지고 있다. 서울로 금방 불려갈 것이라던 처음의 기대와 달리 2년이 지난 뒤 대구로 부임했다. 전별금으로 외상 술값도 다 못 갚고 떠나왔다.
이후 대구에서 3년간 법인세과장으로 지내던 시절 직원들이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장이 파열되도록 맞은 일도 있었다고. 이에 대해 그는 이유를 밝히지는 않았지만 강 전 차관은 결국 선배의 도움으로 국세청을 떠나 재무부로 옮기고 사연많은 세리의 길을 접었다.
지금 시각으로 보면 강 전 차관의 국세청 재직 시절 부끄러운 일들에 대한 변명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어려웠던 시대 상황을 보면 이런 인간적인 고백은 퇴직한 관리의 한 자락 추억으로 간직될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