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보통 사이는 아니다” 억측 만발
김 전 청장은 올 초 여성 경찰로는 처음으로 ‘경찰의 별’이라는 경무관에 올랐다. 강 경위는 군비리 수사로 전현직 군 장성을 체포해 ‘장군 잡는 여경’으로 불릴 정도로 주목을 받았다. 또 이들 두 사람의 도움으로 허위 운전면허증을 발급받은 김씨는 지금은 철창신세를 지고 있지만 한때 건설업체를 견실하게 운영하며 익명으로 불우 청소년들을 돕는 자선활동가로 활동하기도 했다.
잘나가던 여경 두 사람이 인생을 망칠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왜 김씨를 도운 것일까. 특히 김 전 청장과 강 경위는 미혼인 데다 한때 같은 아파트에서 생활을 같이할 정도로 가깝게 지낸 것으로 알려지면서 경찰 주변에 온갖 추측과 설들이 난무하고 있다.
또 경찰 내 김 전 청장과 강 경위의 반대 세력이 이번 사건을 언론에 제보한 것은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돼 경찰이 감찰에 착수하는 등 이번 사건은 이래 저래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지금까지 경찰수사를 통해 알려진 바에 따르면 김 전 청장은 1987년 경찰청 소년계에 근무하면서 자선봉사단체 이사를 맡고 있던 김씨를 처음 만났다고 한다. 김씨는 당시 제법 탄탄한 건설업체를 운영하고 있었다. 김씨는 김 전 청장에게 불우 청소년을 돕고 싶다는 뜻을 전했고, 1989년부터 업체가 부도가 난 1992년까지 모두 1억5천만원을 김 전 총장을 통해 불우 청소년들에게 전달했다.
김 전 청장은 이후 김씨를 만나지 않다가 1996년 우연히 김씨를 만났다고 했으나 김씨는 경찰에서 1996년 김 전 청장이 직접 전화를 걸어 서울 한남동 한 음식점으로 불러내 만났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청장은 당시 김씨가 수배자 상태인 것을 알고 있었다고 경찰은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가 “나를 붙잡아 가려고 부르는 것 아니냐”고 했더니, 김 전 청장은 “그런 것 아니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날 자리는 김 전 청장이 여경 후배들과 저녁을 함께 하는 자리였고, 강 경위도 참석해 김씨와 처음 인사를 나눴다.
김 전 청장이 수배자인 것을 알면서도 김씨를 저녁식사 자리에 초청했다는 김씨의 말이 사실이라면 김 전 청장은 김씨와 꾸준히 연락을 취해왔을 개연성이 크다. 이에 따라 두 사람이 과연 어떤 사이인가에 대한 갖가지 의혹들이 제기되고 있다.
경찰 한 관계자는 “범죄자를 잡아야 할 경찰이 ‘안잡아갈 테니 나오라’고 한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처사”라며 “두 사람이 어떤 관계였는가를 파악하는 것이 이번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는 열쇠”라고 말했다. 그는 “어떤 말 못할 사정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하지만 김 전 청장과 김씨는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서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강 경위와 김씨와의 관계도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다. 강 경위는 1996년 김씨를 처음 만난 이후 1997년 “도피중이니 도와 달라”는 김씨의 부탁을 받고 1997년과 2001년 두 차례에 걸쳐 서부 면허시험장 담당자의 거부에도 불구하고, 연줄을 이용해 김씨에게 위조 운전면허증을 발급해 줬다. 또 강 경위는 김씨에게 1억원을 빌려 주었고, 이중 4천만원을 아직 돌려받지 못한 것으로 경찰조사에서 드러났다.
사업체 부도로 도피중인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고 보호까지 해준다는 것은 가족이라 할지라도 쉽지 않은 일이다. 두 사람은 무슨 사이였을까 하는 궁금증이 이는 것은 당연하다.
경찰 일각에서는 강 경위의 결혼설과 연관해서 추측하는 사람도 있다. 한 경찰관은 “강 경위가 올해를 넘기지 않고 결혼할 것이라고 얘기하고 다녔다”면서 “그러나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같은 관측에 대해 떠오른 근거가 없기 때문에 지나친 억측이라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김 전 청장과 강 경위의 관계도 관심거리다. 두 사람은 경찰 내에서 선후배 단짝으로 유명했다. 경찰의 한 고위 관계자는 “두 사람이 워낙 친하고 한때 같은 아파트에서 산 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숨은 일화도 있다. 호남 출신인 강 경위를 같은 호남 출신인 김강자 전 총경이 자기 사람으로 끌어 들이려고 했는데, 이 같은 사실을 강 경위가 김 전 청장에게 말해 두 사람 관계가 더욱 돈독해졌다는 것이다. 김강자 전 총경은 2004년 총선 출마를 위해 경찰을 떠나기 전까지 여경 선두주자였으며 김 전 청장과는 라이벌 관계였다.
이와 관련, 이번 사건이 외부에 공개된 것도 여경 사이의 알력에서 비롯됐다는 관측이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여경 내 김 전 청장과 강 경위 반대세력이 언론에 흘렸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강 경위가 긴급체포 됐을 당시 여경 두 명이 조사 과정에 입회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당초 경찰은 김 전 총장과 강 경위의 입지를 고려해 감찰조사 형태로 조용히 처리하려고 했다”면서 “그러나 언론에 공개되는 바람에 검찰과의 수사권 조정 문제도 있고 해서 읍참마속 심정으로 사건을 철저히 수사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 전 청장은 부산 동아대 1학년에 재학중이던 1972년 순경 공채로 경찰에 입문해 27년 만인 1999년 경찰의 꽃이라는 총경에 승진했다. 그러나 김강자 전 총경의 그늘에 가려 항상 ‘2인자’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그러다가 2004년 경무관으로 승진했고, 올 초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지방경찰청장(제주)에 임명된 뒤 명실상부한 ‘1인자’로 부상했다.
강 경위는 1986년 순경으로 출발해 특수수사통으로 이름을 날렸다. 경찰청 특수수사과에 근무하던 2003년 인천국제공항 군 발주 공사 관련 첩보를 끈질기게 추적해 전현직 장성 5명의 비리를 밝혀냈다. 그러나 2003년 12월 경찰청 구내 커피숍에서 노무현 대통령 부부에 대한 부적절한 소문을 입에 담았다가 그것이 청와대와 국회 인터넷 홈페이지에 게재되는 바람에 남대문경찰서로 좌천되기도 했다.
유영욱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