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 찬바람 맞고 비 뿌리는 ‘혁신구름’
▲ 서울 여의도 KBS 전경. | ||
지난 6월1일 발표된 KBS ‘경영혁신안’은 ▲Total Review에 의한 금년도 예산 삭감 ▲사장직속의 경영혁신팀 신설 ▲임금삭감 ▲특별명예퇴직 ▲KBS KOREA 아웃소싱을 강력히 추진하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이외에도 KBS는 재정구조 혁신을 위해 ▲수신료 물가연동제 실시 ▲광고단가 인상 등 광고제도 개선요구 ▲국책방송의 국고지원금 확보 ▲방송발전 기금 납부 유예 ▲지상파 DMB, 디지털 전환 등을 위한 공적 재원 확보 등을 추진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번 혁신안에 대해 KBS노조(위원장 진종철)가 반대의사를 밝히면서 노사갈등이 시작된 것이다.
이처럼 표면적으로 보면 현재 KBS 갈등은 혁신안을 둘러싼 노사 간 대립으로 요약된다. 하지만 갈등의 이면에는 정연주 사장 취임 이후 추진해왔던 개혁에 대한 입장 차이가 깔려 있다. 즉 지난 2004년 실시된 대팀제 도입과 지역국 기능조정 과정에서 형성된 KBS내 갈등구조가, 올 초에 실시된 KBS노조 선거에서 ‘반 정연주 노선’을 표방했던 현 진종철 노조위원장 체제가 들어서면서 본격화됐고, 이후 각종 현안에서 이 같은 ‘전선’이 극명하게 부각된 것이다.
이번 혁신안을 둘러싸고 형성된 내부 갈등구도도 이 같은 분석을 뒷받침하고 있다. 지난 5일 KBS PD협회(회장 이강현)가 노조의 투쟁방식을 비난하고 나섰고 7일에는 KBS 기자협회(회장 윤석구)도 이 대열에 동참했다. KBS내 보도·제작·아나운서 출신 중앙위원들도 성명서를 내는 등 노조비판 대열에 동참하고 나섰다.
이 같은 ‘전선’은 진종철 노조위원장 체제가 들어선 이후 KBS내에서 발생했던 각종 노사 갈등에서 형성된 구도와 일치되는 부분이다. 현 노조집행부는 경영·기술·지역국 종사자들을 지지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서울 본사 방송현업 구성원들의 지지를 받고 있지 못하다. 이른바 보도·제작·아나운서 부문은 이번 노조집행부에 반대표를 던진 쪽이 많았다. ‘경영혁신안’을 둘러싼 노사갈등이 노조 대 각 협회간 갈등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
물론 KBS가 발표한 ‘경영혁신안’ 또한 적지 않은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다. 가령 재원구조 혁신 방안과 관련해 KBS는 ▲단기적으로 PPL광고(드라마 등에서 특정제품을 노출시키는 간접광고) ▲중기적으로는 중간광고 도입 및 협찬규제 완화, 광고총량제 도입 등을 추진하겠다고 ‘선언’했지만, 이는 그동안 첨예하게 논란을 빚어온 방송계 현안을 일거에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 단식농성중인 진종철 KBS노조 위원장(왼쪽), 정연주 KBS 사장.미디어오늘 | ||
‘예산 및 임금삭감’ ‘특별 명예퇴직’ 등을 뼈대로 한 내부 비용절감 방안의 경우도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궁극적인 해결책이 되지는 못한다. 장기적인 계획에서 임금과 제작비 삭감이 필요하다면 수용할 수 있지만, 일시적인 해결책을 위한 방안이라면 머지않아 반대에 부딪힐 거라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구성원들의 공감대 형성이 부족했다는 비판과 함께 구조적인 차원의 접근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점차 커지는 것도 이런 배경을 전제로 한다.
문제는 현재 KBS 내부갈등이 표면적으로는 ‘경영혁신안’을 둘러싼 논란으로 흐르고 있지만 본질은 그렇지 않다는 데 있다. 지난 6월30일 정연주 사장과 진종철 노조위원장이 단독으로 만나 ‘상황 타개’에 나섰으나 합의도출에 실패한 것도 혁신안에 대한 입장 차이보다는 그동안 쌓인 불신의 폭을 좁히지 못한 결과라고 보는 게 정확하다.
진 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현재 KBS 재정과 공영성 위기 원인은 상당부분 경영진에 있기 때문에 사퇴 형식의 책임을 져야 하며 ▲지금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라도 경영진 사퇴는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반면 정 사장은 ▲현재의 위기 극복을 위해선 KBS에 대한 혁신이 필요하고 ▲이런 상황에서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으며 ▲노조위원장이 대의원들을 설득해 조합안을 철회해 줄 것 등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종합하더라도 이번 갈등이 ‘경영혁신안’의 내용에 대한 입장 차이보다는 KBS 개혁에 대한 방향과 상대방에 대한 불신에서 기인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KBS 사태가 어떻게 전개될지 예측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KBS노조가 위원장 단식이라는 극한 투쟁방식을 이미 선택한 상황에서 이를 돌파할 수 있는 해법 찾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이미 KBS 경영진은 혁신안 강행 의사를 공공연히 내비치고 있고, KBS내 방송현업 부서들도 현 노조집행부에 호의적이지 않은 상황이다. 게다가 외부 여론 또한 이 문제에 그다지 많은 관심과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 같은 점을 고려해서인지 일각에서 ‘제3자 중재론’을 제기하고 있기도 하다. ‘3자 개입설’은 KBS 내부에서 현 사태를 논의할 만한 구심체가 없기 때문에 언론시민단체들을 중심으로 중재위원회 구성을 통해 사태를 해결을 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 같은 방식은 KBS 문제를 ‘외부’ 시민단체들이 개입(?)해서 해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인식 때문에 아직 사회적인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지는 못하다. 하지만 KBS 갈등 상황이 현재보다 더 심각해지면서 장기화한다면 현실적인 방법으로 부각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방송계에서는 상황이 이렇게까지 전개된다면 KBS는 공영방송으로서의 위상의 추락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고 지적한다. KBS노조와 구성원들을 주목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민임동기 미디어오늘 기자 gom@media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