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만의 위험한 재회 끝내 칼부림 참사로…
고 기형도 시인은 자신의 유고시 ‘질투는 나의 힘’을 이렇게 끝맺고 있다. 같은 제목의 영화까지 만들어지며 더욱 유명해진 이 시를 통해 기 시인은 질투뿐이었던 자신의 젊은 삶을 반성하고 있다. 하지만 남녀 간의 극단적 질투는 결코 시처럼 아름답게 끝나지 못했다. 중학교 때 사귄 풋풋한 첫사랑과 30년 만에 다시 만나 애틋한 사랑을 이어 가던 50대 남성이 결국 처절한 질투심에 사로 잡혀 칼부림을 함으로써 우여곡절 많았던 첫사랑을 비극으로 끝냈기 때문이다. 둘 다 가정이 있던 남녀 간의 위험천만한 사랑(?)이라는 점에서 남자의 비뚤어진 질투심은 애초부터 불행의 씨앗을 잉태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참극으로 끝을 맺은 첫사랑 살인미수 풀스토리를 따라가 봤다.
대구지방검찰청 김천지청(지청장 최운식) 형사2부는 내연녀 B 씨(50)의 얼굴을 과일칼로 수차례 찔러 흉기휴대상해 혐의(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 위반)로만 입건됐던 피의자 A 씨(51)를 지난 6월 30일 살인미수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수사초기 단계에서 경찰이 폭력 혐의로 검찰에 기소를 의뢰했지만 검찰이 살인미수라는 중죄로 기소를 한 것이다.
A 씨와 B 씨는 30여 년 전 경북 김천의 한 중학교에 같이 다니면서 자연스레 교제를 시작했다. 서로는 서로에게 첫사랑이었다. 하지만 A와 B 두 사람은 서로 다른 고등학교로 진학하면서 자연스레 소홀해졌고 연락도 끊겼다. 하지만 그렇게 헤어지고 강산이 세 번 바뀌고 나서인 지난 2009년, A 씨는 동창모임 등을 통해 그녀 B 씨의 소식을 듣게 됐고 알음알음해 그녀를 다시 만나게 됐다.
다시 만나게 된 그들이 30년 전 풋사랑을 위험한 사랑으로 치환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금방 내연관계로 빠져들었다. 둘 다 가정이 있는 유부남, 유부녀였지만 그런 제약은 그들 앞에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남자의 어긋난 질투와 오해는 서로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고 말았다.
김천지청에 따르면 대구에서 택시운전을 하는 A 씨는 B 씨가 운영하는 경북 구미의 한 식당을 자주 오가며 데이트를 즐겼다. 하지만 이런 만남이 5년이 지나면서 둘의 관계는 조금씩 균열이 생기기 시작하며 다툼이 잦아졌다. A 씨는 지난 1월 초순께 B 씨 소유의 스마트 폰을 집어던지는 등 재물을 파손시켰고, 지난 1월 말께는 피해자의 얼굴을 수차례 때리는가 하면 머리카락을 잡아 뜯었다.
지난 2월 중순께에도 B 씨의 머리를 때리는 등 폭행을 가했다. 더 나아가 A 씨는 그로부터 며칠 뒤 피해자에게 수차례에 걸쳐 전화를 걸어 죽이겠다고 협박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결국 지난 3월 5일 사단이 나고야 말았다. 다툼의 과정에서 B 씨 소유 스마트폰을 집어던진 후 과도로 B 씨의 얼굴을 7회 내려찍으며 생명에 직접적 위해를 가했다. 30년의 세월을 두고 두 번이나 사귄 A 씨와 B 씨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A와 B의 애틋한 관계에 C라는 또 다른 남자가 개입된 게 화근의 불씨였다. A 씨가 지난 1월 B 씨의 휴대전화에 저장된 다른 남자(C)의 사진을 발견하고 휴대전화를 집어던지는 바람에 서로 다툼이 시작됐고 신뢰 관계도 급격히 무너지기 시작했던 것. 그러던 지난 3월 5일 오후 12시께 여느 때처럼 B 씨의 식당에 들른 A 씨는 자신이 B 씨의 휴대전화에서 봤던 C 씨가 식당일을 도와주고 있는 장면을 목격하고 말았다.
B 씨는 순간적으로 얼굴을 돌려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지만 얼굴과 목 등에 열상(피부가 찢어져서 생긴 상처)을 입어 전치 2주의 진단을 받고 입원 치료를 받았다. 이에 대해 김천지청 관계자는 “A 씨와 B 씨 둘만 식당에 있는 상황에서 A 씨가 B 씨를 넘어뜨리고 B 씨의 가슴 위에 올라타서 과도로 얼굴을 내려찍었다. A 씨가 왼쪽으로 재빨리 얼굴을 피하긴 했지만 얼굴에 상처가 났을 뿐만 아니라 귀 부분이 7cm가량 찢어졌고 뒷목 부분도 찢어졌다. B 씨의 친구가 식당에 찾아오면서 상황은 종료됐다”고 밝혔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애초 A 씨를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하지만 검찰은 조사 과정에서 A 씨가 과도가 휘어질 정도로 강하게 B 씨의 얼굴 정면을 찌른 점 등을 봤을 때 살인의 고의가 있다고 판단해 살인미수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7번에 걸쳐 칼로 찌른 것으로 생겼을 거라 예상되는 상처에 비해 완치 기간이 지나치게 짧은 것에 대해 김천지청 관계자는 “대학병원에서 진단서를 끊었는데 해당 상처 부위에 열상이 있을 경우 치료에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나 보더라. 피해자를 데려다 실제 범행도구로 범행 장면을 재연해 봤는데 해당 상황에서 얼굴을 돌리니 정확히 귀 부분이 찢어지게 됐다”고 답변했다.
A 씨는 검찰 조사에서 “B 씨가 다른 남자와 만나는 것으로 의심해 다퉜고 술을 마신 상태에서 경찰에 신고를 했다는 얘기를 듣고 흥분해 홧김에 범행을 저질렀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A 씨의 이 같은 의심과는 달리 B 씨는 C 씨가 자신의 식당에 자주 오는 단골손님일 뿐 내연 관계가 아니라고 주장했다는 전언이다. 또 B 씨는 본남편의 귀책사유로 본남편과도 오래전부터 동거를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천지청은 A 씨의 보복범죄 예방을 위해 피해자인 B 씨에게 위치 확인 장치를 제공해 보안업체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조치했으며, 관내 피해자지원센터와 연계한 일대일 심리상담, 의료비 및 이사비용을 지원키로 결정했다. 이에 관해 김천지청 관계자는 “B 씨는 기본적으로 ‘불륜’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치료비에 수백만 원이 들었는데 A 씨는 칼로 얼굴을 찌른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합의를 거부하고 있고 치료비 변제 의사도 전혀 없는 상태여서 불가피하게 A 씨에 대해 지원을 결정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연호 기자 dew901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