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예정지 백운호수 일대에 거액 풀었다
▲ YS의 맏며느리 황경미씨가 운영하는 카페 ‘일 보스트로’. 황씨는 백운호수가 그림처럼 펼쳐진 이곳에 60억대 부동산을 마련했다. 우태윤 기자 wdosa@ilyo.co.kr | ||
그런데 백운호수가 앞마당처럼 펼쳐진 곳에서 고급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범상치 않은 사람’이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YS)의 맏며느리인 황경미씨가 바로 그 주인공. 황씨는 이곳에서 2002년부터 카페 사장으로 있다. 그런데 관심을 끄는 것은 황씨가 카페 주변 부동산도 대량으로 매입했다는 사실이다.
황씨 명의로 매입한 부동산만 10필지. 각기 지번만 다를 뿐 하나로 연결된 땅이다. 지난 2000년과 2002년 두 해에 걸쳐 매입한 부동산 규모는 모두 2천2백여 평. 부동산 업자에 따르면, 60억원은 족히 나갈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도대체 무슨 자금으로 이 부동산을 매입했던 것일까. 혹시 YS의 비자금 일부가 이곳으로 흘러들어간 것은 아닐까. 자연스럽게 이런 의혹이 제기되는 것은 그동안 전직 대통령들의 거액 비자금 은닉설이 끊이질 않았기 때문. 이와 함께 황씨가 투기를 목적으로 ‘휴양단지 개발설’이 나돌고 있는 이 지역 부동산을 사들였던 것은 아닐까. 이 같은 의혹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 백운호수를 다녀왔다.
황씨가 소유하고 있는 10필지는 다음과 같다. ①경기도 의왕시 학의동 517-2번지의 밭 2백85평(9백39㎡) ②546-1번지의 밭 3백69평(1천2백19㎡) 중 44평(1백46㎡) ③546-2번지의 대지 99평(3백25㎡)과 연건평 89평(2백95㎡)인 2층 건물 ④546-10번지의 밭 3백20평(1천57㎡) ⑤546-11번지의 도로 30평(98㎡) 중 15평(49㎡) ⑥546-12번지의 잡종지 61평(2백㎡) ⑦550-1번지의 대지 1백32평(4백37㎡)과 연건평 34평(1백13㎡)인 1층 주택 2채 ⑧551-2번지의 논 2백79평(9백22㎡) ⑨551-3번지의 논 6백23평(2천56㎡) ⑩551-4번지의 밭 3백50평(1천1백54㎡) 등이다.
토지만 합산하면 모두 2천2백8평(7천2백85㎡). 여기에 2층 건물 한 채와 1층 주택 두 채가 있는 것이다. 이 가운데 2층 건물은 카페 ‘일 보스트로’(IL VOSTRO)다. 그리고 1층짜리 주택은 황씨가 직접 거주하기 위해 매입했다는 게 황씨 측근의 설명. 황씨의 주소지도 여기로 돼 있는데, 실제 거주하진 않고 있다.
이에 대해 황씨 측근은 “사장님(황씨)은 건강이 안 좋아 공기가 맑은 이곳에서 직접 살려고 마련했다. 하지만 주택 주변에서 공사가 한창이어서 현재는 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 주택은 상당히 낡은 주택으로 ‘건강이 안 좋은’ 황씨가 실제 거주하기엔 부적합해 보였다. 은철씨와 황씨 부부는 현재 서울 서초동에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은철씨의 주소지는 서울 평창동으로 등재돼 있다. 부부의 주소지가 각각 다른 셈이다.
황씨는 지난 2000년 7월과 2002년 7·8월에 10필지를 집중 매입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2000년 7월엔 ①,⑦,⑧,⑨ 등 4필지, 2002년 7·8월에 ②,③,④,⑤,⑥,⑩ 등 6필지를 사들였던 것.
그렇다면 백운호수 일대 부동산 시세는 얼마일까. 인근 부동산 업자에 따르면, 호수가 보이는 지역과 그렇지 않은 곳은 땅값에 다소 차이가 난다. 호수를 볼 수 있는 지역의 대지는 평당 7백만원선. 호수가 보이지 않는 곳은 4백만원선에 거래되고 있다는 게 부동산업자들의 설명.
그런데 황씨가 소유한 대지에선 호수를 볼 수 있다. 그가 소유한 대지 ③의 99평과 ⑦의 1백32평을 합치면 2백31평. 현재 시세대로라면 16억2천여만원에 거래될 수 있다. 더불어 황씨 소유의 논과 밭 등은 평당 2백만원선에 거래된다고. 이렇게 따져봤을 때 논과 밭 등 1천9백77평은 39억5천여만원 정도에 매매될 수 있다. 황씨가 소유한 대지와 논·밭 등 땅값만 55억7천만원을 호가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여기에 2층 카페 건물 한 채와 1층 주택 두 채의 가치까지 합치면 모두 60억원에 육박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 부동산을 매입했던 자금의 출처는 어디일까. 이에 앞서 YS가 대통령으로 재직하던 지난 93년부터 98년까지의 공직자 재산공개 현황을 들여다보자. YS는 93년 8월12일 처음으로 부인 손명순 여사와 부친 김홍조옹, 장남 은철씨와 맏며느리인 황씨, 차남 현철씨 등의 재산을 공개한 바 있다.
관보에 따르면, 당시 YS 일가는 모두 16억4천5백27만1천원의 재산을 갖고 있다고 신고했다. 이후 YS 일가의 재산은 4억4천59만원 증가(관보 94년2월28일자)→3억9천5백72만1천원 증가(95년2월27일)→1억5천1백20만3천원 증가(96년2월29일)→9천7백85만3천원 증가(97년2월28일)→8천7백14만4천원 감소(98년2월28일)되는 과정을 거쳤다.
YS 집안이 지난 98년 3월 대통령 퇴임 직후 신고한 재산변동사항(관보 98년3월31일자)을 보면 8백31만1천원이 증가했다. 다시 말해 YS 일가는 93년 대통령 취임 당시 16억4천5백27만1천원의 재산을 보유했는데, 퇴임할 때는 26억5천1백80만5천원으로 10억6백53만4천원이 불어났다는 얘기다. 이것이 YS 일가의 재산을 ‘공식’ 확인할 수 있는 마지막이었다. 이후의 재산 변동사항에 대해선 확인이 쉽질 않다.
‘마지막’ 재산신고 했던 지난 98년 3월31일자 관보에 따르면, YS 일가 가운데 장남 은철씨 부부의 재산은 모두 6억9천3백99만8천원. ‘처음’ 재산등록을 했던 93년 8월12일엔 4억4천5백60만7천원이었다. 당시 은철씨는 경남 거제의 어업권 재산으로 4억원을, 부인 황씨는 서울 남대문로 상가의 일부 지분으로 4천5백60만7천원을 각각 신고했다. 이렇게 은철씨 부부의 재산은 YS가 대통령 재직 기간 동안 2억4천8백39만1천원 증가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황씨가 2000년 7월 처음 백운호수 일대 부동산(①,⑦,⑧,⑨) 4필지를 매입할 수 있었던 자금의 출처는 어디일까. 2002년 7·8월 매입한 6필지(②,③,④,⑤,⑥,⑩)는 또 어떻게 마련했던 것일까. 부동산등기부에 따르면, 황씨는 지난 2002년 5월2일자로 H은행에 16억5천만원의 근저당이 설정됐다. 은행 대출금으로 2002년 7·8월에 부동산을 매입했을 가능성도 점쳐진다.
▲ 건물 사진은 며느리 황씨가 매입한 부동산 중 2층카페(위)와 두 채의 단층주택 중 한 채. | ||
그런데 차남 현철씨가 한솔그룹 조동만 전 부회장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재판이 진행 중이어서, YS의 ‘공약’은 빛이 바랬다. 서울고법은 지난 4월26일, 조 전 부회장에게서 불법 정치자금 20억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기소됐던 현철씨에게 징역 1년6개월, 추징금 20억원을 선고했던 1심 판결을 깨고,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추징금 5억원을 선고한 바 있다.
재판부는 “현철씨가 조 전 부회장에게서 받은 20억원 가운데 15억원은 현철씨가 조 전 회장에게 맡겼던 70억원 가운데 이자로 받기로 했던 50억원에 대한 이자로 볼 수 있다”며 “나머지 5억원만 조 전 부회장이 제공한 불법 정치자금”이라고 밝혔다. 여기서 현철씨가 조 전 부회장에게 맡겼던 70억원은 지난 92년 대선 잔여금으로 지난 94·95년 두 차례에 걸쳐 김기섭 전 안기부 운영차장을 통해 당시 조 부사장에게 맡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정치권과 검찰 안팎에선 “은닉한 비자금이 또 있을지도 모른다”는 시각이 적지 않다.
이런 의문에 대해 황씨의 설명을 듣고자 했으나, 회답이 없었다.
이에 YS의 상도동 자택으로 연락했다. 그렇지만 상도동 비서진은 황씨의 카페운영은 물론 부동산 매입사실조차 모르는 눈치였다. 상도동의 한 비서는 “(YS의) 가족들이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없다”며 “(황씨가) 카페를 한다는 얘기도 처음 듣는다. 더군다나 부동산을 대량 매입했다는 사실은 더욱 모른다”고 말했다. 덧붙여 그는 “이분(YS)이 연금으로 근근이 사시는데 무슨 돈이 있어서 자식들을 도와줄 수 있겠느냐”고 밝혀 ‘황씨 부동산 매입 자금 출처가 YS의 주머니라는 의혹’을 일축했다.
그렇다면 황씨 친정 등의 재력이 뒷받침됐던 것일까. 은철씨는 H대 공대를 졸업한 후 잠시 중소기업에서 일했고, 지난 82년 11월 중매를 통해 황씨와 결혼했다. 이후 미국 LA에서 오퍼상을 경영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84년 귀국한 은철씨는 상도동 본가와 경남 거제와 마산 할아버지 집을 오가며 멸치어장을 관리했다. 그는 동생 현철씨와 달리 정치에 별 관심을 두지 않았고, 할아버지도 “은철이가 가업인 멸치어장을 이어가야 한다”고 말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황씨의 친정 집안에 대해 알려진 사실은 거의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90년대 초 세상을 떠난 것으로 알려진 황씨의 아버지는 교회장로였으며, 황씨 집안이 미술 사업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게 고작이다. 지난 2001년 3월엔 황씨 집안이 운영하는 (주)아트그룹 시우터가 서울미술관을 경매·낙찰받았다. 지난해 7월 미아(MIA)미술관으로 개관했으나, 운영난을 이유로 지난해 말 폐관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렇다 해도 황씨 친정의 내력이나 재력 여부 등에 대해선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는 상태다.
그렇다면 황씨가 백운호수 일대 부동산을 매입했던 까닭은 무엇일까. 백운호수 일대는 지난 89년 경기도 의왕시청으로 승격되면서부터 각종 문화·휴양단지 개발설이 나돌았다. 특히 YS가 지난 92년 대선 후보 당시 이 지역 유세를 와서 “백운호수 일대를 휴양단지로 개발하겠다”고 공약했던 것을 기억하는 주민들이 아직도 적지 않다. YS 재직 때, 이 지역에 ‘세계연극축제’를 개최하려 했다가 시 의원들의 반대로 무산된 바 있다.
그래도 90년대 중반 백운호수 일주도로가 건설되면서 카페와 음식점들이 우후죽순 늘어나 현재는 80여 개 업소가 영업중이다. 또한 의왕시도 그동안 여러 차례 백운호수 주변 개발 계획을 수립했었다. 의왕시청의 한 관계자는 “백운호수 일대 40여만평을 수용해서 테마파크와 호텔 등을 세우기 위해 3조원을 투자할 계획을 세운 적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백운호수 개발 계획은 실행에 옮겨지지 못했다.
이에 의왕시는 백운호수 개발 프로젝트를 백지상태에서 다시 시작하기로 결정, 지난 7일 ‘백운호수 주변 개발 타당성 조사 및 기본 구상 등의 용역’을 컨설팅사와 건축회사, 엔지니어링사 등이 참여한 외부 컨소시엄 업체에 기술용역을 의뢰했다. 백운호수 개발 청사진을 새롭게 작성하겠다는 의도다.
이와 관련해 의왕시청 관계자는 “내년 2월쯤 최종 용역 의뢰 결과가 나올 것”이라며 “용역 결과에 따라 백운호수를 향후 어떻게 개발할지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로써 백운호수 일대 개발은 이전보다 구체화됐다. 백운호수 일대 주민들도 “언젠가는 진짜 개발되지 않겠느냐”는 기대감을 감추지 않고 있는 상황.
따라서 황씨가 향후 호수 주변 개발에 따른 시세차익을 염두에 두고서 이 지역 부동산을 매입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다. 이런 의혹에 대해서도 황씨는 입을 열지 않았다. 대신 황씨의 측근은 “(황씨가) 몸이 안 좋아서 전화 통화도 할 수 없다”며 사실상 확인요청을 거절했다. 황씨는 백운호수의 카페도 거의 나가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지영 기자 you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