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심 품은 마담뚜 ‘판깨기’가 화근
“앞으로 그 많은 세월을 어떻게 감옥에서 삽니까”
그는 막막할 것이다. 1심에서 징역 20년을 선고받았다.
“말려야 할 입장인데 어떻게 살인청부를 하고 또 직접 가담까지 했죠?”
내가 오히려 따지듯 물었다. 인간은 사랑해도 죄는 먼저 미워해야 했다.
그는 판사 사위가 불륜관계가 없다는 걸 미행과정에서 알았었다. 회장 부인의 병적인 오해도 보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는 여대생의 죽음을 막아야 했다.
“나쁜 짓거리인 건 알았지만 계약을 했으니까 이행해야 하는 거지요.”
그가 또 불쑥 내뱉었다. 난 깜짝 놀랐다. 그에게 청부살인도 계약이었다.
이런 악령들이 이 사회를 떠돌고 있었다. 범죄계약을 해도 돈만 벌면 된다는 의식이었다. 거액만 준다면 변호사들도 사실을 왜곡시키고 위증을 시켰다. 정의보다는 의뢰인이 건네는 돈값을 먼저 해야 한다는 사고다. 거짓증언을 하는 인간들도 받은 돈에 대한 대가는 분명했다. 선악과 진실보다는 결과와 돈이 절대다. 그래도 그는 잡히니까 원망스러운 것 같았다.
“난 괜히 중간에서 껴 버렸어요. 사모님 대리인으로 우선 5천만원을 살인청부업자에게 줬는데 일이 잘 안됐어요. 사람 죽이는 게 어디 그렇게 영화 같이 쉽나요? 그런데 사모님은 계약일까지 안 죽였다고 절 잡아먹으려고 하는 거예요. 내가 중간에서 돈 떼먹은 줄 알아요. ‘너 같은 놈은 믿지 못하겠다’고 하면서 살인청부로 받은 돈을 도로 내놓으라고 했어요.
그래서 제가 살인청부업자에게 돈을 돌려달라고 했죠. 그랬더니 그 킬러가 뭐라고 했는지 아세요? 그동안 살인 준비하는 비용으로 다 써버렸대요. 독극물도 사야죠. 총도 사야 되죠. 그 여대생을 파악하는 데 썼다는 거예요. 그리고 착수금은 돌려주지 않는 거래요. 돈이 하느님인 사모님은 그런 거 들을 여자가 아니죠. 그러면 대신 네가 돈을 갚으라고 하면서 만약 안 주면 우리 아이들 학교까지 찾아가서 해코지 하겠다고 악을 썼어요. 돈 있는 사람들은 더 무서워요. 돈이면 무슨 짓이라도 하니까요. 그러니 저로서는 어떻게 하겠어요. 빨리 여대생을 죽여야 하는 수밖에 없었지요.”
수사기록과 그의 말을 통해 파악한 사건의 발단은 대충 이랬다.
회장 집은 호텔과 나이트클럽 외에 여러 회사를 인수해서 성장한 신흥부자였다. 결혼할 딸이 있는 회장 부인은 거물급 마담뚜의 수첩에 빼곡하게 적힌 예비판사 명단 중 27세의 사법연수생 김태환(가명)을 찍었다. 마담뚜의 명단에 오른 인물들은 고급 명품 같은 거래대상이었다. 남자측은 결혼비용 명목으로 7억원을 요구했다. 실질은 몸값이다. 마담뚜는 건너가는 돈의 10%를 받는 게 관례였다. 그 외 양가에서 각 3천만원씩의 중개료를 내야 했다.
김태환이 임관한 뒤 결혼식이 거행됐고 신랑측에 대금이 지급됐다. 회장 부인은 마담뚜에게 약속대로 3천만원을 지급했다. 그러나 사위가 된 김 판사는 자기부모에게 소개료를 주지 말라고 했다. 소송으로 청구할 수 없는 돈이니까 안 줘도 된다는 것이었다. 그게 화근이었다.
마담뚜들도 판례 실력은 없지만 판 깨는 실력은 대단했다. 어느 날부터 회장 부인에게 괴전화가 걸려왔다. 30대 젊은 여자의 목소리였다. 그 여자는 김 판사의 과거를 자세히도 설명했다.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회장 부인은 눈이 뒤집혔다. 사위의 불륜 현장을 잡기 위해 대대적인 미행 작전에 돌입했다. 딸 내외의 방에 도청기를 장치했다. 밤이면 딸 내외가 자는 방 입구에 머리카락을 붙여 놓고 사위가 어디 가는지를 체크했다. 나중에는 딸이 사는 아파트 현관에서 직접 밤을 새다가 눈이 퉁퉁 붓기도 했다.
회장 부인은 현직 경찰관, 심부름센터 직원 등 20여 명을 동원해 사위 꼬리잡기 작전에 돌입했다. 불륜 현장 사진을 가져오면 큰돈을 주겠다고 현상금을 걸었다. 형사나 심부름센터 직원들이 목욕탕이나 전자오락실에서 시간만 때우다 돈을 받는지 감시하기 위해 승복차림으로 현장을 급습하기도 했다.
미행자들은 회장 부인이 독 품은 얼굴로 “개뿔도 없는 집안 걸 사위 삼았더니 이 배은망덕한 새끼”라고 욕하는 장면을 목격하기도 했다. 회장 부인은 사위에게 하자가 있다면서 사돈집에 찾아가 준 돈의 반을 도로 찾아갔다고 수사기록에 적혀 있었다. 남을 믿지 못하는 회장 부인은 미행자들과는 별개로 감시망을 구축하기 위해 지하 단칸방에 살던 조카를 끌어들였다. 끝내 조카에게 살인까지 시켰다.
“사모님이 처음에는 판사 사위 미행만 해달라고 했어요. 결혼 전에 만나던 애가 있는 것 같다고요. 얼마 지나자 사모님은 심부름센터를 믿지 못하겠다고 저 보고 직접 현장에 나가 판사 사위를 감시하라고 했어요.”
“그래 미행에서 뭔가 꼬리가 잡혔어요?”
내가 물었다. 아무래도 마담뚜들의 공작 같았다.
“나오긴 개뿔이 나와요? 다섯 달 동안 그 판사 뒤를 따라 저도 법원에 출근했는데 아무것도 없었어요. 점심도 판사 따라서 구내식당에서 먹고 퇴근하면 집으로 바로 갔어요. 그런데 사모님은 도대체 믿질 않아요. 분명 뭔가 있는데 네 놈이 제대로 일을 못하고 와서 거짓말 한다는 거예요.”
“왜 그렇게 사위를 의심했죠?”
난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거의 병적인 의심이었다.
“남편인 회장님이 원래 바람을 피워서 따로 자식이 있거든요. 사모님은 그 피해의식이 컸어요. 한번은 사모님이 젊었을 때 남편이 어떤 여자하고 차 안에 있는 현장을 잡았어요. 사모님은 자기가 운전하는 차를 몰아 가미가제 특공대 같이 여자와 남편이 있는 그 차에 가서 충돌한 적도 있어요. 정말 독해요. 딸만은 자기 같은 불행을 안겨주지 말자는 집념이죠.”
비로소 일부분은 이해가 갔다. 난 얘기의 방향을 돌리기 시작했다.
“만약 체포될 경우 어떻게 하자는 계획이 있었어요?”
사건의 증거 중에는 특이한 녹음이 하나 있었다. 그가 회장 부인과 통화를 하면서 모든 것을 덮어쓴 내용이었다. 거래 끝에 조작된 증거 같았다. 지능범들은 철저했다. 예상 질문과 답변을 만들어 철저한 연습을 했다. 알리바이나 거짓증거도 완벽했다. 그가 사실을 털어놓았다.
“사모님이 살인청부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얘기하라고 해서 그대로 말해준 게 녹음됐고요, 잡혔을 때 진술 계획을 공책에 써서 외웠어요. 검거된 첫날 경찰에서 연습한 대로 진술했죠. 내용이 뭐냐면 살인만 제3의 인물인 정 사장에게 재하청해서 실행했다는 거예요. 그런데 제가 경험이 없어서 그런지 형사들이 계속 세부적인 여러 가지 사항을 추궁하면서 이리저리 치는데 다 꾸며대지를 못하겠더라고요.”
미숙한 공범이 있는 한 완전범죄는 쉽지 않았다.
“그래서 말이죠, 두 번째 조서를 받을 때부터는 아예 사실대로 진술했어요. 형사가 그러는데 모두 사형에 처해질 건데 진실을 말하면 정상참작의 여지는 있다고 그랬어요. 사실 저는 중간에서 돈 전달하고 포대 자루 속에 넣은 여대생 운반한 죄밖에 없어요.”
그의 어리석음 때문에 공범들이 속깨나 썩었을 것 같았다. 그가 덧붙였다.
“검찰에서 제가 조사를 받을 때 사모님이 왔었는데 나를 보고 손바닥을 뒤집는 제스처를 하시더라구요. 나와 킬러가 총대를 메라는 거죠. 저만 말을 맞춰주면 완벽하다고 그랬어요. 사모님은 제 변호사까지 사 줬는데 그 변호사도 저를 찾아와서 그렇게 하라고 했어요. 그렇게 해주면 합의를 해서 형도 깎아 준다고 그랬어요.”
“정말 회장 부인이 살인청부의 심부름을 시켰습니까? 아니면 당신이 물귀신작전으로 물고 늘어지는 겁니까?”
내가 거꾸로 쳐 봤다. 그 어떤 것도 끝까지 속단할 수 없었다.
“정말 사모님 심부름한 거밖에 없습니다. 내가 모르는 여대생을 죽일 이유가 어디 있겠어요? 그것만 봐도 아실 수 있잖아요?”
그가 답답하다는 얼굴로 나를 보았다.
“지금 회장 부인 쪽 태도는 어떻습니까?”
내가 물었다. “대형 로펌 변호사들을 동원해서 자기는 미행만 시켰지 절대로 살인은 교사하지 않았다는 쪽으로 가고 있어요. 그쪽 변호사님이 오셔서 나한테 그렇게 말하라고 했어요. 작전을 잘 짜야 한다는 거예요. 내가 뒤집어쓰고 사모님을 빨리 빼내야 나도 살 수 있다는 거죠.”
“그러면 그렇게 하지 왜 나를 불러 사실을 털어놓죠?”
내가 비꼬아 봤다.
“회장 부인이나 그쪽에서 사 준 변호사를 안 믿기 때문에 이렇게 인권변호사님에게 따로 물어보는 거죠. 돈 문제는 사모님을 절대 안 믿죠.”
“그러면 앞으로 어떻게 할 계획인데요?”
“그냥 진실을 다 말할 거예요. 진짜 다 털어놓으면 그래도 좀 봐 주겠죠. 그 역할을 맡아주세요.”
그는 회장이나 부인은 그 어떤 사람도 매수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했다. 그래서 회장 부인은 살고 자신만 사형당할까 봐 두려워하고 있었다. 난 그와 회장 부인 그리고 킬러 사이의 진실을 알고 싶었다. 그건 법정소설감이었다.
(다음호에 3편 이어집니다)
엄상익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