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못 받은 ‘덕산할매’ 앙심이 ‘파국’ 불러왔다
같은 해 3월 한 여대생의 피살체가 산중에서 발견되면서 시작된 이 사건은 해외 도피를 했던 살인용의자들이 1년여 만에 경찰에 검거돼 대기업 회장부인의 청부살인 사실을 고백함으로써 일단락되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세 차례의 재판을 거치면서 치열한 진실공방이 벌어졌고, 이 과정에서 사건의 뒤안길에 가려져 있던 충격적인 사실들이 하나둘씩 드러났습니다. 과연 우리가 알고 있는 ‘진실’은 얼마나 될까요? 사건에는 아직도 수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습니다. -편집자 주-
2004년 1월26일 오후 2시. 서울고등법원 303호 법정 밖은 영하 10℃를 밑도는 한파가 몰아쳤다. 살해된 여대생의 아버지 정의택씨가 초췌한 얼굴로 증언석에 앉았다. 그 대각선 방향에 살인교사를 한 회장부인이 고개를 빳빳이 들고 앞을 응시했다. 그 옆으로 살인범인 김용국과 마기룡이 고개를 숙인 채 면도날 같은 신경줄을 펴고 상황을 감지하고 있었다. 재판장이 신문 전에 먼저 위로의 말을 전했다.
“딸을 불시에 잃으시고 얼마나 마음이 아프시겠습니까? 힘드시더라도 진실을 밝히는 데 도움을 주셨으면 합니다.”
“알겠습니다.”
정의택씨의 지치고 쉰 목소리였다. 검사가 묻기 시작했다.
“회장부인이 전문중매를 통해 판사사위를 맞아들이고 그 부모에게 7억원을 줬다면서요?”
“네 맞습니다. 그러다가 사위가 바람이 났다고 하자 회장부인인 저 여자는 3억원을 돌려달라고 집요하게 요구해서 도로 가지고 갔습니다. 판사사위가 제 조카지만 더러운 매매혼에 팔려갔습니다.”
법대 위 판사들의 얼굴에 순간 모멸감이 스쳐갔다. 검사가 질문을 계속했다.
“계좌추적을 해보니까 돌려받은 그 3억원을 미행과 살인청부 자금으로 쓴 것 같던데.”
그때였다. “잠깐만요!” 하고 손을 들면서 회장부인이 검사의 말을 잘랐다. 재판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여자였다.
“뭐죠?”
재판장의 표정에 얼핏 불쾌한 감정이 스쳐지나갔다.
“저 사람 말 다 거짓말이에요. 어이가 없어서 말이지. 제 딸이 혼처가 세 군데나 나왔어요. 그 중에 지금 사위가 가장 적극적으로 대시한 거예요. 그래서 결혼을 시켰는데 제가 어떻게 돈을 줬다고 합니까? 그리고 인간이라면 어떻게 한번 준 돈을 찾아올 수 있겠어요? 상식적으로 안 그렇습니까?”
회장부인이 앙칼지게 내뱉었다. 정의택이 맞받아쳤다.
“그러면 돈을 받은 판사 부모를 불러서 물으면 되겠네요?”
그때 회장부인의 변호사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거들었다.
“이보세요, 증인! 어떤 근거로 그렇게 매매혼이라고 단정을 하시는 거죠? 회장부인이 돈을 준 적이 없다고 하잖아요?”
정의택씨는 흥분을 가라앉히려고 무던히 애쓰는 모습이었다.
“저는 부모로부터 분명히 직접 들었습니다. 더러운 돈으로 판사사위를 끌어들이는 게 매매혼이 아니고 뭡니까?”
“그게 어째서 매매혼입니까?”
회장부인의 변호사가 다시 다그쳤다.
“내 관점에서는 더러운 매매혼입니다. 변호사님 생각은 다를지 몰라도 말이죠. 각자 어떤 현상을 보더라도 관점에 따라 평가는 자유롭게 할 수 있죠. 그걸 자기 잣대와 다르다고 비판하지 마세요.”
사람들은 ‘무엇을 하느냐, 얼마나 있느냐’로 가치를 평가했다. 자격증과 졸업장으로 포장만 잘 돼 있으면 명품인 세상이다.
그 무렵 나는 법조 원로들의 한 모임에 참석했었다. 여대생 청부살인 사건 얘기가 잠시 화제로 떠올랐다. 사석이기 때문에 아무런 제한 없이 자유롭게 의견이 쏟아져 나왔다.
“그 사건 말이지 1심에서는 잘못 선고한 것 같아. 사형을 선고하고 항소심에서 무기징역 정도로 내렸어야 하는데 1심 재판장이 징역 20년으로 너무 인심을 써 버렸어. 항소심 재판장이 입장이 곤란할 거야.”
수많은 사건을 재판한 경험들에서 나오는 소리였다. 참석한 전직 원로 판사들의 의견이 대동소이했다.
“그 사위가 됐다는 판사가 사표 쓰고 나갔지?”
좌장격인 원로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아직 나가지 않고 버틴답니다. 얼마나 힘들게 얻은 판사자린데 나가냐면서 지방으로 가서 바람이 잦아들 때까지 숨죽이고 있다가 서울로 다시 올라온다는 얘기가 있던데요.”
자리에 있던 한 사람이 말했다.
“하기야 자기가 법적 책임이 있는 건 아니니까 법관징계위원회에서 내보낼 수는 없겠지. 그렇지만 사법부를 위해서는 본인이 도의적 책임을 지고 나가줘야 하는 거 아닌가?”
그들은 공통적으로 법관사회에 누를 끼친 젊은 판사를 탓하고 있었다.
“참 요새 사법연수원생들이 전문 중매쟁이에게 팔려가는 수가 많다는데 정말 그래요?”
참석했던 한 검사장 출신이 물었다. 모두의 시선이 전임 사법연수원장에게 쏠렸다.
“연수원에서 주는 박봉으로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카드빚들이 3천만~4천만원씩 되는 연수생들이 많더라고요. 그렇지만 국가 입장에서 보면 1천명에게 한 달에 사무관급 본봉의 월급을 주니까 엄청난 예산이죠. 내가 사법연수원장 때 보니까 카드빚을 진 연수생들은 그 빚만 누가 대신 갚아줬으면 하는 마음이죠. 너무 나쁘게 생각마세요.”
예나 지금이나 그런 매매혼의 악습은 있었다. 딸 가진 부잣집들 계산으로는 많은 법률비용을 들이는 것보다 법조인 사위를 들이는 게 주판알을 튕기면 더 이익일 수 있었다. 그래서 전문자격증을 가진 신랑감들이 고가에 매매되는 게 현실이다. 그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거물급 전문 중매쟁이들이 은밀하게 활약하고 있었다. 그들은 혼사를 성립시키기도, 방해하기도 한다고 했다.
덕산 할매는 수사기록 어디에도 나와 있지 않았다. 사건의 배경을 알고 있는 인물임이 틀림없었다. 나는 덕산 할매의 정체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연락처도 주소도 없었다. 덕산 할매를 안다는 그 업계의 거물을 대신 한 사람 만났다. 간신히 만난 그 중매꾼은 명문여고를 나온 금년 62세의 부인이었다.
“덕산 할매는 어떤 사람입니까?”
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성격이 뱀같이 차고 깐깐한 할매예요. 그 아래 여러 명의 남자들을 고용해서 사법연수원생들을 포섭하고 그 할매는 부잣집들의 ‘사위 주문’을 받고 다녀요.”
그녀의 설명이 계속됐다.
“우리 중매꾼의 세계도 ‘판사 전문’, ‘의사 전문’같이 분야별로 또 나뉘어지죠. 판사 전문도 다시 사법연수생 포섭 담당과 부잣집 담당으로 나뉘어지죠. 사법연수생 담당은 인원 명단과 성적까지 입수해서 연수생들에게 개인적으로 접촉해요. 술도 사주고 용돈도 주면서 자연스럽게 포섭하는 거죠. 사법연수원 시절이라는 게 힘들 때잖아요?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을 때 ‘예쁜 여자 소개해 줄 테니까 한번 보지 않을래?’ 하고 슬쩍 말을 던지는 거죠. 그러겠다고 하면 연수원생 담당 중매꾼이 부잣집 딸 담당 중매꾼에게 연락을 해요. 그쪽은 혼기에 찬 부잣집 딸들을 빠삭하게 꿰고 있거든요. 이런 전문 중매는 혼자 하는 게 아니라 조직으로 해요.”
“어떻게 그런 정보들을 얻나요?”
“그거야 한 집만 알아도 알음알음으로 금세 훤하게 되죠.”
“판사사위를 데려오면 몸값은 어떻게 내죠?”
“얼마 전 대구의 한 사업가 집안에서 판사사위를 맞아들였는데 예단 외에 서울에 45평짜리 타워팰리스를 사주고 현찰 2억원을 판사사위 부모에게 줬어요.”
“현찰 2억원을 사위 부모에게 주는 건 무슨 뜻인가요?”
“그동안 공부시킨 값이죠.”
그 중매꾼이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그녀의 얘기는 계속됐다.
“저는 판사가 아니라 의사 전문이에요. 서울대를 나온 의사를 사위로 맞아들이는 데 10억원은 있어야 해요. 병원을 차려줘야죠. 하여튼 그럴 듯한 사위를 들이려면 빌딩을 준다, 돈을 준다 해야 돼요. 겉으로는 모두들 부정을 하지만 중매꾼인 내가 본 현실은 겉이 번지르르하고 점잖은 척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더 욕심이 많고 은근히 돈을 바란다니까요.”
아들을 가진 부모가 먼저 자식을 상품화한다는 얘기였다.
“중개료는 어떻습니까?”
이 살인사건의 동기가 된 부분이었다.
“여자측에서 남자 집에 가는 총 액수의 10%를 받아요. 그걸 받아서 중매한 사람들이 나누어 먹죠. 중매가 되지 않는 경우에도 얼굴만 한번 보는 데 30만원을 받게 돼 있어요. 그 덕산 할매는 판사후보 남자 한 명을 아침에 호텔 커피숍에 오게 하면 하루에 여자를 세 명도 보이고 네 명도 보이고 그렇게 했어요. 그것만 해도 간단히 하루 일당이 1백만원이 넘게 떨어지는 거죠. 중매가 안 돼도 서로 만나게 하는 횟수만 늘리면 수입이 짭짤해요. 남자 하나가 괜찮으면 수백 명을 보일 수 있고 모두 아낌없이 돈을 내요. 한번은 부모끼리 상견례를 하면서 남자부모가 여자부모에게 ‘우리 아들이 좋은 거냐, 판사가 좋은 거냐’ 하고 묻는 것도 봤어요. 그걸 경험하고 시집간 여자들은 자기가 애를 낳으면 더러워서라도 판·검사나 의사를 만들어야겠다고 그래요.”
“만약 중매료를 내지 않으면 어떻게 되죠?”
법적으로 인정되는 돈이 아니었다.
“중매꾼들이 가만히 있지 않죠. 남자한테 동거하는 여자가 있다고 모략도 하고 어떻게든 방법을 안 가리고 갈라놔요.”
“여대생 살해사건의 판사부모가 중매료를 내지 않았다던데?”
내가 마지막으로 핵심부분을 물었다.
“덕산 할매도 보통 독한 사람이 아닌데 안 받고 가만 있을 사람은 아니죠.”
“이번에 범인들이 중국에서 잡혀온 그 여대생 살해사건 아시죠? 덕산 할매가 회장부인에게 중매했다던데….”
“그럼요. 중매쟁이들 사이에서 소문이 짜하게 퍼졌는데요. 소문으로는 회장부인도 나쁘고 덕산 할매도 나쁘다고 그래요.”
“그 덕산 할매에 대해 더 해줄 말씀 없어요?”
“나이는 칠십이 넘었는데 빼빼하고 얼굴이 얄팍해요. 더 이상은 몰라요.”
껍데기 수재들 중에는 새싹 때부터 그렇게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치우는’ 경우가 많았다.
(다음호에 이어집니다)
엄상익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