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아카데미 각본상 수상! 2014 골든 글로브 각본상 수상!’ 그리고 ‘올 가장 독창적인 로맨스!’라는 홍보 카피에서 알 수 있듯이 영화 <그녀>는 기발한 상상력의 각본을 바탕으로 완성된 매우 독특한 로맨스 영화다. 올해(2014년)뿐 아니라 세계 영화사에 길이 남을 영화가 아닐까. 영문 제목은 <Her>, 러닝타임은 126분이다.
IT 업계의 발전과 더불어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 역시 시시각각 바뀌고 있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주인공 ‘테오도르’(호아킨 피닉스 분)와 인공 지능 컴퓨터 운영체제 ‘사만다’(스칼렛 요한슨 분. 목소리만 출연하지만)의 사랑을 오늘날의 우리는 매우 기발한 로맨스라고 말하지만 실제 몇 년 뒤에는 이런 로맨스도 분명 현실이 될 수도 있다. 동전을 들고 공중전화 박스 앞에서 애인에게 전화를 할까 말까 망설이던 청춘들이 누구나 휴대폰을 갖고 있으며 문자 메시지로 사랑을 속삭이는 오늘날의 로맨스를 과연 상상이나 했을까. 불과 20여 년 전에만 해도 그랬다.
이 영화가 내세운 기발한 아이디어는 우선 차세대 컴퓨터 운영체제다. 인공 지능을 갖춘 운영체제가 새롭게 출시된다는 것. 지금까지 인공 지능을 갖춘 로봇이 등장하는 영화는 많은데 이번엔 훨씬 현실적인 인공 지능을 갖춘 컴퓨터 운영체제다. 사이보그는 너무 먼 미래 같지만 이미 누구나 활용하고 있는 컴퓨터 운영체제를 소재로 한 만큼 훨씬 현실적이다. 실제로 주인과 소통하며 컴퓨터를 비롯한 IT 기기들을 활용하는 데 도움을 주는 인공 지능 운영체제는 충분히 머지않은 미래에 충분히 현실이 될 수 있는 발상이다.
두 번째 기발한 아이디어는 형체가 없는 프로그램인 컴퓨터 운영체제가 인공 지능을 갖췄을 때 벌어지는 일들이다. 컴퓨터 운영체제는 당연히 물리적인 형태는 없다. 다만 인공 지능을 갖추고 있는 만큼 그 역시 생각은 한다. 컴퓨터의 주인인 사람과는 목소리로만 교감하지만 이 운영체제 역시 인공 지능을 갖춘 로봇인 사이보그처럼 사람과 동일하게 느끼고 생각한다. 다만 사이보그처럼 물리적인 형체는 없는 프로그램이다. 영혼만 있고 육체는 없는 대상이라면 정확한 표현일까.
따라서 이 영화의 가장 기발하고 독특한 접근은 IT 기술이 발전하고 세상이 첨단화되면서 더더욱 외로워진 인간이, 한낱 프로그램이지만 지능을 가진 운영체제가 사랑에 빠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이런 정도의 상상은 누구나 가능하다. 극도로 외로운 남성이 인공 지능을 갖춘 컴퓨터 운영체제와 가깝게 지내면서 사랑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는 것은. 컴퓨터 운영체제에 불과하지만 사만다는 테오도르에게 언제나 대화할 수 있고 내 얘길 들어주며 나만을 바라보는 연인이다. 속을 터놓을 수 있는 대상이 극도로 부족한 현대 사회에서 충분히 가능한 현상이다. 일종의 IT 중독으로 치부할 수도 있는 사안이다.
남자 주인공 테오도르는 더더욱 외로운 사람이다. 그의 직업은 다른 사람들의 편지를 대신 써주는 대필 작가다. 연애편지는 물론, 아들에게 쓰는 아버지의 편지까지 다양한 편지를 대신 써주는 테오도르의 직업 역시 메마른 현대 사회를 대변하는 외로운 직업이다. 게다가 아내와는 별겨 중이다. 이처럼 공허한 삶을 살아가는 테오도르가 여성의 목소리인 컴퓨터 운영체제와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스마트폰 중독처럼 IT 중독의 일종으로 보는 게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영화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비록 사만다는 음성뿐이지만 폰섹스처럼 서로의 목소리(신음소리를 포함해)만으로 성관계를 갖기도 한다. 심지어 테오도르처럼 컴퓨터 운영체제와 사랑에 빠진 이들이 많아지면서 몸을 빌려주겠다는 여성들도 등장한다. 돈을 받고 매춘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랑에 빠진 컴퓨터 운영체제를 위해 일종의 봉사 활동(?)으로 자신의 몸을 빌려주는 여성들이 등장하는 것. 자원 봉사에 나선 여성은 이어폰과 카메라를 몸에 부착해 컴퓨터 운영체제와 교감한다. 운영체제는 카메라를 통해 테오도르를 바라보고 봉사에 나선 여성에게 어떻게 몸을 움직이고 반응하라고 지시한다. 그리고 성관계 도중 목소리와 신음소리는 컴퓨터 운영체제인 사만다가 직접 낸다. 결국 자원봉사에 나선 여성은 몸만 빌려주고 감정과 반응은 모두 컴퓨터 운영체제가 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글로는 제대로 된 표현이 힘든 베드신인데 사실 화면으로 접해도 이해가 쉽지 않긴 매한가지다. 워낙 독특한 상황인 터라 테오도르 역시 이런 상황에 난처해 한다. 그렇지만 이런 장면을 통해 컴퓨터 운영체제와 인간의 관계가 얼마나 깊은 사랑에 빠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단순히 IT 중독에 따른 병적인 행동이 아닌 서로의 육체까지 갈망할 만큼 진지한 사랑이라는 것을.
그리고 이들의 사랑은 여느 연인들의 그것처럼 서로 싸우기도 하고 갈등을 겪기도 하며, 또 가슴 아프게 헤어질 수도 있다. 이런 과정이 영화 <그녀>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기발한 상상력의 설정에 놀라면서 보기 시작한 이 영화는 인간이 아닌 캐릭터인 컴퓨터 운영체제를 통해 과연 인간적인 게 무엇이며, 사랑이란 것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거꾸로 묻고 있다.
@ 배틀M이 추천 ‘초이스 기준’ : 새로운 느낌의 로맨스 영화를 기대한다면 클릭
정말 개인적인 느낌이지만, 필자는 이 영화 <그녀>를 보며 여성 톱스타와 일반 남성의 사랑을 그린 영화 <노팅힐>을 떠올렸다. 아니 사실은 영화를 보기 전 느낌이 그랬다. 독창적인 로맨스라는 홍보 카피 때문에 막연히 든 생각이었는데 실제 보니 더 그런 느낌을 받았다. 지금 보면 <노팅힐>이 그저 그런 로맨스 영화일지 몰라도 그 영화 개봉할 땐 정말 독특한 로맨스였다. 그런 느낌에 IT 기술까지 접목한 영화가 <그녀>일 텐데,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독특한 로맨스 영화라는 점에서, 어쩌면 멀지 않은 미래에 정말 우리네 인간들이 저렇게라도 사랑을 하며 살아가지 않을까 싶은 생각에 간만에 집중해서 많은 생각을 하며 본 영화다.
@ 배틀M 추천 ‘다운로드 가격’ : 7500원
뭔가 새로운 영화를 찾는 이들에겐 충분히 가치 있는 영화다. 게다가 반드시 새롭진 않더라도 괜찮은 로맨스 영화를 기대했던 이들에게도 추천하기에 부족함 없다. 추천의 가치가 충분한 영화인 만큼 다운로드 가격 역시 조금 높은 수준에서 책정했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