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직전 일주일간 두문불출 “심각했다”
▲ 이윤형씨가 자살한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지난 98년 1월 오빠 재용씨의 약혼식에 참석한 모습. | ||
윤형씨 사망에 대한 언론의 취재 경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지 5일 만인 지난 11월26일 삼성측 공식 발표와는 전혀 다른 사인이 나온 것이다. 단순히 시중에 흘러 다니는 설이 추가보도된 수준은 아니다. 윤형씨의 시신을 검안한 것으로 알려진 뉴욕검시소가 윤형씨가 목을 매 숨진 사실을 처음으로 공개한 것이다.
충격적인 뉴스가 전해지면서 재계 및 정가가 다시 한번 술렁이고 있다. 상황이 예상치 못한 흐름으로 급박하게 전개되면서 각계 소식통들도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이 회장이 그토록 애지중지했던 막내딸 윤형씨가 갑작스럽게 극단적인 자살을 선택, 이승과 작별을 고한 까닭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 내막과 함께 윤형씨가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삼성 발표가 자살로 뒤바뀌기까지의 과정, 그리고 아직 남아있는 의문점 등을 종합해봤다.
윤형씨의 사망원인이 일부 확인됐지만 자세한 사고 경위는 아직 드러나지 않고 있다. 외관상으로는 뉴욕검시소에서 윤형씨가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고, 목 맨 흔적 외에는 다른 원인을 찾지 못했다는 것만 확인해준 상황이다. <뉴욕타임스> 인터넷판도 지난 26일 윤형씨가 숙소인 뉴욕 맨해튼 이스트빌리지에 있는 아파트 애스터 플레이스에서 목을 맨 채 숨져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윤형씨의 시신이 맨해튼 카비리니 메디컬 센터로 옮겨져 검시를 받았으며 매디슨 애비뉴 프랭크 E 캠벨 장례식장에서 장례식이 치러졌다고 덧붙였다.
자살 보도 이후 관심은 유서의 존재 여부에 쏠려 있다. 아직 윤형씨가 유서를 남겼는지는 거론되지도 않고 있다. 그러나 일단 목을 맨 자살 대부분이 보통 우발적 흥분이 아닌 미리 계획해 실행에 옮긴 사례가 많다는 점을 감안할 때 윤형씨가 미리 자살을 결심하고 유서를 남겼을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대세다.
<뉴욕타임스>는 사건 자체에 대해서는 간단하게 전했지만 그 중 중요한 두 개의 대목을 전하고 있다. 가장 관심이 가는 부분은 발견자가 윤형씨의 남자 친구 신아무개씨와 그의 친구이며 발견 시각은 19일 오전 3시(현지시간)라고 전한 점. 그리고 아파트 경비원의 말을 인용, 그녀가 숨지기 전 일주일 동안 자신의 아파트에서 외출을 하지 않고 집안에 머물고 있었던 것 같다고 전한 것이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그녀는 이미 일주일 동안 자살을 생각하며 무엇인가 심각하게 고민을 했다는 점을 말해 준다. 일주일 동안 그녀를 고민하게 만든 문제는 무엇이었을까.
사망 동기에 대해 여러 말이 나오고 있으나 삼성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들은 대체로 결혼 문제와 관련한 주변 상황이 복잡하게 얽힌 탓이 아닐까라는 조심스러운 추측을 내놓고 있다.
▲ 초등 4학년 때 모친 홍라희씨와 주스를 만드는 장면. | ||
정·재계는 물론, 증권가나 연예계 쪽에서도 윤형씨 자살과 관련, 사귀던 남자와의 교제 자체를 집안에서 반대한 것이 큰 원인으로 작용하지 않았겠느냐는 설이 크게 설득력을 얻고 있다. 실제 윤형씨 사망 파문이 불거지면서 사귀던 남자의 신원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들이 오가고 있지만 우선 그녀의 시체를 처음 발견한 남자 친구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 새벽 3시에 그녀의 아파트를 찾아갈 만큼 친한 사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남자라는 설도 있지만 일치하는 것은 윤형씨가 사귀던 남자와 3년 전쯤 만났으며 출신이 호남이고 S대 공대 출신이라는 식으로 꽤 구체적인 얘기까지 퍼진 상태다. 반대 이유도 그 남자의 고향 문제라는 설도 있으나 삼성측은 펄쩍 뛴다.
윤형씨는 다른 남매들과는 달리 활달하고 개방적인 성격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때문에 윤형씨는 자신이 한때 만들었던 홈페이지에 자신과 친구들의 소소한 일상 이야기와 사진들을 올렸다. 여느 홈페이지처럼 처음에는 남자친구와 함께 찍은 사진과 개인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나 기타 배우려고 시도하다가 내 남자친구가 기타 잘 치거든. 그냥 남자친구한테 조금씩 배우고 있는데, 내가 맨날 게으름 펴서 안 늘어.^^”(2003년 10월29일)라는 등의 이야기도 올라와 있었다. 이런 면에서 윤형씨는 남자 친구도 스스럼없이 사귀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 과정에서 이 남자와 사랑이 깊어지며 가족의 반대가 있었던 것이 아니냐는 것이 현지에서 추측하고 있는 대체적인 줄거리다.
윤형씨의 연애, 결혼 문제가 사망 원인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전해지면서 자연스럽게 윤형씨가 미국 뉴욕으로 유학을 가게 된 배경에도 궁금증이 일고 있다. 어머니인 홍라희씨의 미술관 사업을 돕기 위해 공부를 한다는 것이 유학을 결정하게 된 ‘대의명분’이었지만, 사실 이들의 연애와 관련한 도피성 유학일 가능성이 높다는 설이 고개를 들고 있다.
사실 윤형씨의 사망 소식이 알려진 후 이와 관련, 국내와 미국 현지에서는 갖가지 추측이 나돌고 있던 상황이었다. 지난 11월20일을 기점으로 윤형씨의 비보가 몇몇 언론 보도를 통해 짤막하게 보도된 이후 정확한 사고·사망 경위 등이 전혀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11월18일 밤 뉴욕 인근에서 교통사고로 사망, 이틀 뒤 직계 가족만이 참석한 가운데 현지에서 불교식으로 장례가 거행’ 며칠간 보도된 윤형씨 사망 관련 내용은 이것이 전부였다.
▲ 지난 2000년 1월 이건희 회장의 서울대 명예경영학박사학위 수여식장에 참석한 이윤형 서현 부진 자매(왼쪽부터). 윤형씨는 이 회장에게 축하 꽃다발을 건넸다. | ||
또한 현지 언론이 윤형씨가 뉴욕에 도착하기 직전 고모인 이명희 신세계백화점 회장의 팜스프링스 별장에 잠시 머물렀다는 사실을 보도하면서, 뉴욕으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사고가 났을 수도 있다는 점을 암시하자 자살설 등은 일순간 거론되지 않을 듯 보였다.
그러나 사고 직후 며칠이 지난 후에도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이 대사로 근무한 주미대사관이나 뉴욕총영사관이 현지 경찰에 사고 진위 여부를 파악하는 단계라는 입장만 고수하자 뭔가 석연치 않다는 의혹은 계속 부풀려졌다.
특히 삼성측이 일부 언론사에게 직·간접적으로 윤형씨 관련 기사 보도를 자제해 줄 것을 요청하면서 이번 사고와 관련, 차마 공개하지 못할 사정이 필히 있다는 점은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여졌다.
이처럼 파장이 커지면서 현지의 취재 경쟁도 치열하게 전개됐다. 한 언론사 기자는 “뉴욕 시내에서 응급 중환자를 받을 수 있는 약 22개 병원을 직접 수소문중”이라고 귀띔하기도 했다.
자살 보도 직전에는 이미 국내 언론의 뉴욕지사나 한인 지역 언론이 현지 삼성 관계자와 뉴욕대 학생, 심지어 뉴욕경찰 등을 통해 새로운 파장을 몰고 올 정도의 구체적 정보를 입수했다는 얘기까지 전해졌다.
실제 현지 언론의 일부 간부들은 취재 요청이 들어오자 “말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자세한 내막을 털어놓는 것을 부담스러워했다는 후문도 들린다.
삼성측은 “당초 교통사고로 보도됐고 유족들의 슬픔을 생각해 이를 적극적으로 수정하지 않았을 뿐 숨길 의도는 없었다”고 해명하고 있다.
유재영 기자 elegan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