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병원·박물관… 제2의 금수원 있나
유병언 전 회장
유병언 전 회장은 구원파에서 사업을 하는 초반부터 병원 설립에 대한 욕심이 컸다. 구원파 관계자들에 따르면 유 전 회장의 종합병원 설립계획이 구도가 잡힌 건 지난 1991년경이다. 당시 유 전 회장은 정부로부터 병원 설립 인가를 받고 경기도 과천시 갈현동 일대 9118㎡ 부지를 사들인 후 지상 12층, 지하 5층 규모의 병원을 짓기 시작했다. 그 이름이 바로 과천에서 유명한 ‘우정병원’이다.
이처럼 유 전 회장이 대형 병원을 짓는 이유로는 유 전 회장 계열사의 주력 상품인 ‘스쿠알렌 판매’가 비중이 컸던 것으로 파악된다. <일요신문>이 단독 입수한 유 전 회장의 1995년도 저서 <마음을 넓히라>에서는 종합병원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책에는 세모 직원들의 스쿠알렌 판매 촉진을 언급하며 “이렇게 하다가 보면 우리들의 바라던 종합병원이 완성되는 날, 지금까지 판매 촉진을 위해서 여러 지방과 여러 나라를 바쁘게 왕래해 가며 강연을 해 주고 있는 의료팀들과 식품공학을 연구한 팀들, 모두가 합세하면서 많은 일들이 크게 전개되리라 기대해 본다”고 나타나 있다. 종합병원을 설립함으로써 판매 수익을 증대하겠다는 포부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문제는 자금이다. 유 전 회장은 우정병원을 짓기 위해 구원파 신도 및 금융기관에서 공사비 700억 원 등 ‘1000억 원’ 상당의 자금을 끌어들였다. 당시를 고려한다면 천문학적 금액이다. 하지만 야심차게 시작했던 공사는 7년 만에 좌초됐다. 1997년 16억 원의 어음을 갚지 못한 세모그룹이 최종 부도 처리되면서 공사도 중단됐기 때문이다. 당시 공정률은 70% 정도. 병원 건립에 돈을 쏟은 구원파 신도들로서는 유 전 회장에게 ‘먹튀’를 당한 셈이 됐다. 전 구원파 신도는 “우리가 쏟은 돈을 대체 누가 책임져 줄 것인지 대책이 없었다. 애초에 저렇게 큰 병원을 짓겠다는 게 무리수였다는 얘기가 많았다”라고 전했다.
이후로 17년. 우정병원은 과천의 대표적인 ‘흉물’로 자리매김했다. 우정병원이 지어질 때부터 인근에 거주했다던 한 시민은 “우정병원을 지을 때 얼마나 땅이 울리던지 주변 주택 문짝이 안 맞을 정도였다. 그렇게 시끌벅적 시작하더니 지금은 저렇게 흉물이 됐다. 가끔 청소년들이 들어가 귀신놀이를 하거나 유흥을 즐기는 장소로 변질된 지 오래다”라고 전했다. 과천시에서도 우정병원으로 인해 이만저만 골머리를 썩는 게 아니다. 철거 비용만 수십억 원이 들뿐만 아니라 체납세금만 20억 원에 달하기 때문이다. 지분이 여기저기 얽혀 있어 용도 변경을 해주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새누리당 신계용 과천시장은 4대 공약으로 ‘우정병원 정상화’를 내걸었다. 과천의 한 시민은 “우정병원 정상화는 지방선거 때마다 나오는 공약이다. 이번만큼은 얼마나 지켜질지 모르겠다”라고 전했다.
이처럼 유 전 회장이 벌려 놓은 우정병원의 잔해가 가시지 않는 가운데, 우정병원을 인수한 기관들이 구원파와 관련한 자본이 아니냐는 전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전 구원파 관계자는 “유 전 회장은 절대 우정병원을 그냥 포기하지 못할 것이다. 구원파 자금이 벌써 인수 기관 사이로 흘러갔을 가능성이 충분하다”라고 전했다. 결국 우정병원이 유 전 회장의 여전한 은닉재산일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는 이유다.
과천에 위치한 아해박물관(위)은 설립자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구원파 소유가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세모그룹이 짓다가 17년째 방치된 우정병원(아래)도 유 전 회장의 은닉재산일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적지 않다.
한편 우정병원뿐만 아니라 과천시 주암동에 위치한 ‘아해한국문화전통어린이박물관’(아해박물관)도 구원파의 소유가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463㎡ 부지에 지상 3층인 이 건물 옆에는 4000평 규모(1만3223㎡)의 ‘아해숲’도 위치해 있다. 과천 지역 한 인사는 “‘아해’가 유 전 회장의 호를 뜻하는 것이기에 아예 연관성이 없지 않을 것이라는 의혹이 과천 바닥에서 심심치 않게 돌았다”라고 전했다.
하지만 아해박물관 측은 이러한 사실을 전면 부인했다. 아해박물관 측은 “‘아해’는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할 당시 어린이를 칭했던 순 우리말로, 아해박물관의 아해와 유병언의 아해는 우연의 일치일 뿐이다. 아해박물관 설립자 및 관장인 서울여대 아동학과 문미옥 교수는 유병언과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구원파와도 당연히 아무런 관련이 없다”라고 일축했다.
실제로 기자가 찾아간 아해박물관에서 유 전 회장과 관련한 흔적들은 찾아볼 수 없었다. 박물관에 전시된 갖가지 전시품들은 어린이들을 위한 놀잇감들이었다. 아해박물관 관계자는 “아해라는 이름 때문에 경찰도 몇 번을 왔다가곤 했다. 하지만 별 다른 것은 없었다. 구원파와 전혀 관계가 없다는 점을 증명하는 셈”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의혹은 여전하다. 아해박물관의 설립자 및 관장인 문미옥 교수의 남편이 ‘구원파’가 아니냐는 전언이 돌면서부터다.
<일요신문>과 접촉한 한 구원파 관계자는 “문 교수의 남편이 구원파이고 의사 출신이라고 들었다. 두 사람은 세모그룹이 소유하고 있는 한강유람선에서 결혼식을 올린 것으로 안다. 두 사람의 결혼에 유 전 회장이 관련됐다는 얘기도 있다”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문미옥 교수는 “결혼식을 세모유람선에서 한 것은 맞지만 그냥 결혼식 장소가 유람선이었을 뿐”이라며 “남편은 개인병원을 운영하는 의사이고 종교활동은 하지 않는다. 저희 가족은 구원파와 관련이 없다”라고 반박했다.
이렇듯 우정병원 등 과천 일대의 유 전 회장의 은닉재산으로 의심되는 곳은 점차 늘어나는 상황이다. 과천 일대에 정통한 한 부동산 업자는 “과천 일대는 오래전부터 사이비 종교가 야금야금 땅을 장악하고 있는 실정이다. 구원파도 이와 관련이 아예 없다고는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