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은 재검증…어쩌다 이 지경에!
▲ 지난 12월8일 오명 부총리가 서울대병원에 입원한 황우석 교수를 문병하고 있다. 사진제공=과학기술부 | ||
사태가 여기에 이르자 지난 11일 결국 황우석 교수도 서울대 측에 “재검증을 받겠다”는 뜻을 전했고, 서울대 간부들은 이날 오후 긴급회의를 소집해서 재검증을 실시하기로 결정했다.
논란은 국내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황 교수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던 <사이언스>도 황 교수에게 논문 의혹에 대한 검토를 요구하겠다고 밝혔으며 제럴드 섀튼 교수가 속한 피츠버그대학도 <사이언스> 게재 논문에 대해 조사에 착수했다.
결국 사태는 과학계의 손에 의해 결말을 볼 수밖에 없는 막다른 상황에 이른 것이다. 그런 점에서 “과학은 단지 과학일 뿐, 여론 정치도 아니고 대중의 인기나 선동도 아니다”는 한 소장 과학자의 말은 상당히 무겁게 다가온다.
국민들의 절대적인 지지와 성원을 받았던 황우석 교수 연구팀을 처음 흔든 것은 일부 정치권과 시민단체였다. 민주노동당과 여성민우회 등은 황 교수팀이 실험에 사용하는 난자의 확보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이른바 난자 윤리 논란이었다. 이 논란에 종지부를 찍은 것은 MBC 의 'PD수첩' 이었다. 여기서 황 교수팀의 난자 확보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다는 점이 보도됐다. 황 교수는 이 방송 내용을 인정했고, 11월24일 대국민 사과성 기자회견을 열었다. 국민들은 “이것으로 파문은 끝난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1라운드에서 치명타를 입은 황 교수는 반격을 준비했다. 'PD 수첩' 이 취재과정에서 일부 연구원들에게 강압적이고 비윤리적인 태도를 보인 것에 분노했다. 'PD 수첩' 도 물러서지 않았다. 난자윤리보다 더 문제가 큰 후속보도를 준비하겠다고 나섰다. 황 교수팀의 연구자체에 대한 진위논란이었다. 반대로 황 교수팀은 'PD 수첩' 팀이 무리한 취재로 진실을 왜곡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다시 국민들은 충격 속에 빠졌고, 논란은 분분했다. 이 논란의 해결사로 등장한 이 역시 언론이었다. YTN은 미국 현지의 연구원 인터뷰를 통해 'PD 수첩' 팀의 취재 과정상의 문제점을 집중 보도했다. MBC는 서둘러 지난 4일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2라운드는 완벽한 황 교수팀의 반격 성공이었다. 국민들은 내심 안도하면서도 “제발 이제 이것으로 끝내자”는 분위기가 우세했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일반 국민들의 바람일 뿐이었다. 이번에는 기어이 과학계가 나섰다. 한 소장 과학자는 “과학적 논란을 해결하는 과정이 비과학적이어서는 안된다. 젊은 과학자들은 바로 이점 때문에 국민 대다수의 여론과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그 배경을 설명했다.
서울대 생명과학부의 일부 소장 교수들은 정운찬 서울대 총장에게 공개적으로 ‘총장님께 드리는 글’을 통해 황 교수팀의 <사이언스> 발표 논문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면서 재검증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이들은 ‘대한민국 과학계를 위해 또 황 교수 개인을 위해서라도 서울대에서 이를 제대로 검증하고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총장은 “서울대가 자체적으로 진상 조사에 나서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뜻으로 완곡하게 거절했다. 8일 서울대 학장 회의에서도 “여론에 휩싸이지 말고 신중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뜻을 밝혔다. 이에 소장파 학자들은 반발하고 있지만 서울대 농업생명대와 수의대 교수들은 소장파들과 다른 뜻을 밝히는 등 사태는 복잡하다.
황 교수에 절대적 지지를 보내고 있는 국민들의 성원은 민노당과 MBC 에 이어 이번에도 어김없이 서울대 소장파 교수들에 대한 비난에 나섰다. 일각에서는 음모론이 제기되기도 했다. “황 교수에게 엄청난 인기와 시선이 집중되자 동료 교수들의 질시가 황 교수를 흠집내려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많은 의대 교수들과 이공계 교수 과학자들은 황 교수에 대해 ‘동물이나 상대하는 일개 수의학자가 너무 과도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라며 내심 불쾌해 한다더라”라는 얘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하지만 예전처럼 전면적이고 일방적인 여론의 뭇매 양상과는 좀 다른 분위기다. 이 분야의 전문가를 자처하는 과학자들이 직접 문제를 제기하는 것에 대해 국민들도 다소 혼란스러워 하는 것처럼 보인다. 특히 이 문제가 단지 서울대 내부 문제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카이스트 등 국내의 대부분 소장 과학자들에게 옮겨가고 있다는 사실이 향후 논란의 심각성을 제시해주고 있다. 심지어는 해외에서 공부하고 있는 과학도들이 인터넷을 통해 활발히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기도 한다.
현재 미네소타대학에서 포스트닥 과정에 있는 한 무명 연구원으로 자신을 소개한 한 네티즌은 나름대로의 이론을 바탕으로 황 교수 논문에 대한 의혹을 하나 하나 제기해서 온라인상에서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그는 “황 교수의 논문은 진실성이 결여되어 있으며 논문의 질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조작이 있다”는 결론을 제시하기도 했다.
자신을 물리학자라고 밝힌 한 학자는 <한겨레> 인터넷판에 올린 글에서 “나는 문제의 배아줄기 세포가 진짜라고 믿는다. 아니, 믿고 싶다”라며 “그러나 과학은 종교가 아니다. 과학적인 믿음은 과학적인 근거가 있어야 한다. 국익에 비춰 본다면 매우 매몰차 보일지 몰라도 과학자들은 매사에 의심하고 회의를 품고 0.1%의 의혹에도 문제 제기하도록 그렇게 교육받고 훈련받은 사람들”이라고 밝혔다.
소장 과학도들이 모이는 인터넷 게시판 bric, kids, scieng 등에서도 활발한 의견이 개진되고 있는 가운데, 일반 사이트와는 달리 황 교수의 명쾌하지 못한 자세에 대해 비판하는 견해가 많았다. ‘kids’에서 L씨는 “이번 사태의 가장 큰 책임은 언론이나 황 교수나 청와대에 있는 것이 아니고 바로 한국과학계의 복지부동에 있다”면서 “과학보도에 애국주의가 침범한 지는 이미 오래전 일이고 과장이 있더라도 아무도 나서서 지적해주지 않았다. 전문가들이 반론조차 공개적으로 못 내놓을 정도의 공포분위기가 조성됐다”고 비난했다.
지금까지 지적된 의혹을 종합하면 다음 네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체세포와 줄기세포의 DNA 지문 분석 결과가 너무 흡사해 조작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며 둘째는 2005년 특허 출원할 때 줄기세포를 기탁하지 않은 것은 줄기세포가 없어서가 아니냐는 것이다. 또한 셋째는 'PD 수첩' 팀이 지적한 대로 2번 줄기세포와 환자 모근세포 DNA 지문을 검사했는데 16개 마커 대부분이 달랐다는 점이며 넷째는 11개 줄기세포를 실험단계별로 촬영한 1백여 장의 사진 중 일부가 같은 사진이라는 부분이다.
이와 함께 미국 <사이언스>도 9일(미국시간) ‘황 교수가 언론의 각종 의문 제기에 대해 직접 답변하거나 제3자의 검증을 받도록’ 촉구하고 <사이언스> 역시 제3자의 검증을 기대한다는 뜻을 밝혔다. 황 교수팀의 발표가 <사이언스>의 입장 변화와 관련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사이언스>의 입장 변화로 ‘황 교수 파문’은 전혀 새로운 단계로 넘어간 것이나 다름없다.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번져가자 “내년 봄에 나올 연구 논문 발표로 모든 의혹을 잠 재우겠다”는 입장만 밝힌 채 말을 아껴온 황 교수팀은 결국 11일 “<사이언스>에 발표한 연구논문에 의혹을 제기하는 일부 학자들이 있다면 검증을 받아들일 것”이라는 입장을 서울대 측에 전했다. 국내와 해외 학계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제기되는 의혹의 포위망을 현재의 침묵만으로는 벗어나기 힘들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앞서 황 교수팀은 만일 논문 재검증을 요구한다면 논문을 게재한 <사이언스>, 연구비를 지원한 과학기술부, 연구소가 소속된 서울대 등 3곳만이 자격을 갖고 있다고 말했었다. <사이언스>가 논문 재검증을 요청하고 황 교수 팀도 실험 데이터 제공 용의를 밝혔으며 앞서 피츠버그대도 ‘제럴드 섀튼 교수 등의 요청에 따라 황 교수 논문의 논란 부분을 자체 조사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제 공은 과학계로 넘어갔다. 단순히 난자 매매를 둘러싼 윤리 문제나 취재 윤리 문제를 넘어 논문의 진위에 대한 공방으로 번져 세계적인 연구 성과가 시험대에 올랐다. 모두가 감정이나 이해관계를 떠나 차분하게 과학계의 심판을 기다려야 할 때가 왔는지도 모른다.
감명국 기자 km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