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11일 청와대 출입기자들과 청와대 뒤편 북악산을 등반하다 잠시 쉬고 있다. 사진제공=청와대 | ||
총선 후 탄핵철회설의 핵심은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나오기 전에 탄핵을 철회해야 한다는 것. 최근 헌재 자문위원인 허영 명지대 석좌교수의 ‘헌재 탄핵 기각 및 대통령에 대한 경고’ 방안도 이 같은 분위기와 맞물려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허 교수는 그동안 탄핵 찬성론의 대표적 이론 학자였다는 점에서 눈길을 모으고 있다.
현재 제기되고 있는 총선 후 탄핵 정국의 시나리오는 크게 세 가지. 당초 여권에서 가장 원했던 것은 헌재의 각하 결정. 하지만 이에 대한 가능성은 물건너 갔다. 현재로선 5월 말로 예상되는 헌재의 결정을 기다리는 분위기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7일 헌재 자문위원인 허영 교수가 고려대 강연회에서 ‘헌재의 탄핵 기각과 노 대통령에 대한 강력한 경고’를 해법으로 제시하면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른바 ‘허영식 해법’으로 불리는 이 방안에 대해 법조계도 가장 가능성 높은 시나리오로 꼽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민변을 중심으로 또 하나의 시나리오가 꿈틀대고 있다. 헌재의 결정이 있기 전에 총선 직후 국회가 탄핵안을 자진 철회해야 한다는 것.
특히 민변은 대통령 변호인단에 직접 참여하는 대신 뒤에서 법률적 근거와 해석 등의 물밑 지원을 맡고 있는 입장이어서 그들의 주장은 결국 여권과 상당 부분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는 게 법조계와 정치권의 분석이다.
일각에서는 “대통령 변호인단을 이끌고 있는 삼두마차는 사실상 문재인 변호인단 간사와 강금실 장관, 최병모 민변 회장”이라며 총선 후 탄핵철회가 민변의 단독의견만은 아닐 것이란 관측이다.
실제로 최병모 민변 회장은 사견임을 전제하고 “총선과 맞물린 현 정국에서 헌재로서는 어떤 결정을 내리든 간에 정치적 이해관계에서 벗어나기 어렵게 됐다. 헌재에 그런 부담을 주기보다는 총선 후 새로운 국회가 스스로 탄핵안을 철회하는 것이 옳고, 또 그렇게 되리라고 본다”고 밝혔다.
하지만 탄핵안 철회와 관련해 현재 법규정이 없어 이는 또다른 논란을 불러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는 게 법조계의 지적. 국회 소추위측의 한 변호사는 “탄핵안의 자진 철회는 헌법에서도 언급이 없다. 또 과연 국회 정족수의 얼마가 의결을 해야하는지도 규정이 없다. 사실상 실현 불가능한 시나리오”라고 일축했다.
그러나 민변측은 “탄핵 철회는 아직 명문화되지 않은 규정으로 해석상 논란의 소지는 있으나, 1심 판결의 선고 전까지 공소를 취하할 수 있다는 헌재법 제40조 1항 및 형사소송법 제 255조를 준용한다면 헌재의 결정선고 이전에 탄핵을 철회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 노 대통령의 ‘봄’을 쥔 헌법재판소 전경. 임준선 기자 | ||
헌재의 이 보고서를 보면 ‘탄핵소추를 철회하려면 탄핵소추 의결을 좌절하는데 필요한 정족수(3분의 2) 이상의 정족수가 최소한으로 요구된다고 볼 때, 전체 과반수 이상이 의결하면 대통령 탄핵소추 철회에 대한 의결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는 견해가 제시되어 있다.
최 회장은 “국회 과반수 이상의 찬성이 있으면 탄핵 소추 철회가 가능하다고 보지만, 그것보다는 총선 이후 새롭게 시작될 국회 구성원들과 여야 각 대표가 합의하는 모양새가 이뤄진다면 결국 헌재도 받아들일 것”이라고 말했다.
민변의 김선수 사무총장은 “지난 16대 국회 임기가 오는 5월 말까지인 만큼 총선 후 민의가 전달이 된다면 총선 후 16대 국회에서 결국 탄핵안이 취소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 총선 이전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의 여야 대표 회담 제의는 총선에 민감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사실상 야당으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카드였다”며 “하지만 총선이 끝나면 새로운 전환점이 마련될 것”이라고 기대섞인 전망을 내놓았다.
민변에서 고문을 맡고 있는 이돈명 변호사 또한 “헌재의 결정까지 간다는 자체가 나라의 불행한 일”이라며 “결국 헌재가 총선 후까지 이 문제를 끌고 갔다는 점도 그렇고, 헌재로서도 자신들의 정치적 부담을 덜기 위해 총선 후 정치권에서 대타협을 이뤄주길 기대하고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처럼 민변을 중심으로 ‘총선 후 3자 타협을 통한 탄핵 철회설’이 제기되면서 그 배경을 두고 여러 가지 해석이 오가고 있다. 일각에서는 “헌재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탄핵 반대라는 일반 여론과는 다른 결정을 헌재가 내릴 가능성도 있다”는 분위기와도 무관치 않다는 위기론이 그것. 민변 관계자는 “헌재의 분위기가 자꾸 이상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만큼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 관계자는 “탄핵 철회 시나리오가 청와대 및 열린우리당과의 공감대를 통한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 부인했다. 그는 “민변의 지도부가 탄핵 반대 정서에 가깝다고 해서 구성원들이 모두 여권 지지층이라고 보는 것은 잘못”이라며 “여기에는 한나라당과 민주당 열린우리당 민주노동당 지지층이 고루 혼재되어 있다”고 밝혔다.
또다른 민변 간부는 “얼마 전 허영 교수가 발표한 ‘헌재의 탄핵안 기각 및 대통령에 대한 경고’가 법조계에서 상당히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면서 “당초 탄핵 찬성론자였던 허 교수의 이 같은 입장을 보인 것은 어느 한쪽의 일방적 손을 들어주기를 꺼려하는 현재 헌재의 입장과도 일치되고 있다. 만약 국회가 스스로 탄핵을 철회하지 않으면 이른바 허영식 해법이 채택될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