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23일 당대표에 선출된 박근혜 의원 | ||
박 대표의 개인 인기에 기대어 연명하고 있는 한나라당은 총선 이후 일단 단합을 모색하겠지만 향후 여러 세력으로 분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박 대표의 인기가 유지되더라도 뚜렷한 주인이 없는 상태인 만큼 한나라당은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나기 위한 진통을 계속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특히 박근혜 대표와 이명박 서울시장, 손학규 경기지사 사이에 차기를 둘러싼 3각 각축전이 본격 전개될 것으로 예상돼 벌써부터 주목받고 있다. 박 대표가 총선에서 나름대로 선전하고 당내 기반을 장악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이 시장과 손 지사의 ‘견제’도 본격화할 것이란 전망이 높다.
한나라당의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는 우선 박근혜 체제로 급격히 재편되는 경우를 꼽을 수 있다. 박 대표는 탄핵안 가결 이후 개헌저지선도 확보하기 힘들 것이라던 분위기를 뚫고 한나라당의 상승기류를 일궈냈다. 박 대표가 비록 1당을 못 이룬다 하더라도 1백 석만 넘기면 성공작으로 평가받을 수 있을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여기에다 1당에 근접하는 2당이 되면 대성공이다. 극적으로 1당이 된다면 박 대표는 당내에서 완전 ‘영웅’이다.
박 대표 입장에선 어떤 경우라도 이득을 볼 수밖에 없다. 한나라당이 위기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박 대표를 선택했듯이, 선거 이후 한나라당도 박 대표외에 뚜렷한 대안을 찾기 힘들다. 박 대표를 중심으로 한나라당이 급격히 재편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과정에서 이회창 전 총재 및 최병렬 전 대표의 세력들은 급격히 퇴조할 것이 확실시된다. 이 전 총재의 측근들은 이미 대부분 공천과정에서 탈락한 상태다. 양정규 하순봉 김기배 의원 등이 모두 공천을 받지 못했으며, 특보를 지냈던 서정우 변호사는 감옥에, 이병기 이종구씨 등은 비례대표를 받지 못해 사실상 한나라당을 떠났다.
이 전 총재의 사람으로 분류될 수 있는 건 비례대표 14번을 받은 유승민 전 여의도연구소장 정도다. 이는 이 전 총재에 대한 마지막 배려 차원이다. 한나라당은 총선 이후 자연스럽게 이 전 총재의 색깔을 완전히 지우게 될 것이다. 최병렬 전 대표 체제 인사들도 마찬가지다. 최 전 대표가 이미 공천을 받지 못한 데 이어 홍사덕 전 총무마저 원내 진입에 실패하고, 최 전 대표의 측근으로 꼽혔던 홍준표 정형근 의원 등이 낙선하는 최악의 상황도 가능한 것으로 점쳐진다. 한나라당은 과거의 ‘저격수’들이 모두 날개를 꺾이게 되는 상황을 맞을 수 있다.
대신 박근혜 대표 주변으로 새로운 사람들이 모여들 것으로 예상된다. 박 대표를 보좌한 윤여준 의원이 여의도연구소장을 계속 맡아 ‘박 대표 대통령 만들기’에 본격 나설 것이 확실해 보인다. 영남권 당선자들은 박 대표를 절대적으로 성원할 수밖에 없다. 수도권에서 살아남은 의원들 상당수도 박 대표 ‘우산’으로 들어올 가능성이 높다. 박 대표는 이제 당내에서 크게 견제받지 않은 채 독주체제를 정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반대의 상황도 예상할 수 있다. 박 대표 못지않게 이명박 시장과 손학규 지사도 이번 총선에 상당한 공을 들여왔다. 이 시장은 형 이상득 의원의 당선에 목을 매고 있다. 향후 당에서 이 시장을 떠받쳐줄 힘이기 때문이다. 이상득 총장은 당선될 경우 5선으로 당내 최다선 의원으로 좌장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이 시장은 이틀에 한 번꼴로 이상득 의원 지역구에 전화를 걸어 선거상황을 물어볼 정도다.
손학규 지사는 열린우리당이 선거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소할 만큼 적극적인 행보로 논란을 낳았다.
▲ 손학규 경기도지사(왼쪽)와 이명박 서울시장의 모습. | ||
이 시장과 손 지사가 지방자치단체장을 수행하는 시기는 2년 뒤인 2006년까지다. 이들은 당장 박근혜 체제에 협력하겠지만 언제까지 기다리고만 있을 입장은 아니다. 이미 손 지사는 차기 희망을 피력해놓은 상태고, 이 시장도 마음을 열어놓고 있다.
이들이 박 대표의 독주체제를 마냥 옹호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그런 점에서 향후 한나라당 내에서 이들 3인의 각축과 세력대결이 암암리에 확대될 것이란 전망이 적지 않다.
이들 외에 수도권에서 살아 돌아오는 현역의원들은 독자적인 목소리를 높일 가능성이 높아졌다. 서울에서 이재오 의원이 당선된다면 3선이다. 경기도에서 김문수 의원도 당선되면 역시 3선이다. 이들은 ‘차기’ 희망을 은근히 표출해왔다.
차기 꿈을 가진 몇 명이 박 대표 체제를 흔들어대면 한나라당은 쉽게 휘청거릴 수 있는 체제다. 박 대표 말대로 박 대표는 돈도 조직도 없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예측 가능한 또 다른 시나리오는 박 대표가 총선 승리 이후 ‘작전상 2선 후퇴’를 하는 경우다. 실제로 당 일각에선 박 대표가 “총선에서 나의 역할을 다했다”고 선언한 뒤 6월 전당대회에 재출마를 포기하는 시나리오가 제기되고 있다. 박 대표는 계속 대표직에 있을 경우 2007년 대선까지 3년 동안 열린우리당과 여론의 공세에 그대로 노출되게 돼 있다. 약점이 드러날 수 있고, 신선도도 떨어질 수 있다.
박 대표의 일부 참모들은 대권을 생각한다면 대표를 계속 맡는 게 유리하지 않다는 조언을 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박 대표가 총선 승리 후 모든 영광을 안은 채 2선 후퇴하면서 차기를 노린다면 그야말로 상당한 ‘감동의 드라마’를 연출하게 되는 셈이다.
한나라당은 어떤 경우든 총선 이후 커다란 변화를 겪을 수밖에 없다. 기호1번을 놓치지 않았던 한나라당이 제2당으로 전락하게 된다면 상당기간 정체성의 혼란도 불가피하다.
야당체질로 변신, 다시 서기까지 험난한 앞길이 예상되고 있다. 한나라당의 당선자들이 과연 야당생활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많다. 그런 점에서 한나라당이 총선 이후 현재의 대오를 유지할 수 있을지도 주목된다.
열린우리당이 과반수를 넘기지 못한다면 한나라당 의원을 상대로 빼가기 작업에 들어갈 수도 있다. 이 경우 한나라당의 분열과 함께 정치권의 정계개편도 빨라질 가능성이 있다.
한나라당은 겉으로 박근혜 체제로 봉합되겠지만 내부적으론 다양한 가능성이 병존한 채 실험대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이필지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