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열사 영역에 발 슬쩍…‘눈치 보이네’
복합 할부금융 시장에 진출한 롯데카드의 조용한 영업이 의문을 낳고 있다. 사진은 롯데카드 본사 건물. 구윤성 기자 kysplanet@ilyo.co.kr
개인정보 유출 사태로 홍역을 치른 롯데카드가 복합 할부금융 시장에 진출하며 재기를 선언했다. 롯데그룹의 막강한 유통망을 활용하면 단시간에 시장에 안착할 수 있다는 계산이 깔린 행보다. 복합 할부금융은 캐피털사를 통해 할부로 물건을 사는 고객이 신용카드로 대금을 결제하면 할부 금리를 낮춰주는 것을 말한다. 일반 신용카드 할부와 달리 대출 성격을 띠는 상품으로 자동차나 전자기기 의료기기 등 주로 고가의 상품에 적용된다.
롯데카드가 복합 할부금융 시장에 도전장을 낸 것은 기존 사업의 수익성이 눈에 띄게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효자 노릇을 하던 카드 대출이나 현금서비스 등이 당국의 규제강화로 크게 위축된 데다 가맹점 수수료 체계 개편으로 이 부문 수익마저 줄고 있다. 게다가 개인정보 유출 사태로 3개월 영업정지까지 당하면서 직격탄을 맞았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1분기 롯데카드 이용액은 12조 6068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12조 8528억 원에 비해 2460억 원이나 줄었다. 개인정보 유출 사태로 대규모 고객이탈이 발생하면서 회원 수도 지난해 1분기 819만 명 대비 70만 명이나 줄어든 749만 명으로 뚝 떨어졌다.
롯데카드는 이런 상황을 타개할 승부수로 복합 할부금융을 택했다. 유통공룡으로 불리는 모그룹을 등에 업으면 시장제패가 가능하다는 판단에서다. 국내 할부금융업은 자동차, 산업재 및 일반 내구재 등의 상품으로 구성돼 있는데, 롯데카드는 이 가운데 자동차와 내구재 부문에 주력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롯데카드는 이를 위해 계열사인 롯데쇼핑 하이마트 등과 전략적 제휴를 체결했다. 롯데쇼핑과는 할부금융 상품 공동 출시도 준비했다.
사실 롯데카드가 할부금융업 진출을 준비한 것은 1년 전인 지난해 7월부터다. 당시 롯데카드는 금융감독원에 할부금융업을 등록하고 사업을 준비해왔다. 롯데카드는 자동차 복합할부의 경우 승용차보다는 트럭 등 상용차 시장에 집중할 계획이다. 승용차 부문은 현대캐피탈, 아주캐피탈 등의 아성이 워낙 공고하기에 틈새시장을 공략하겠다는 취지다. 롯데카드는 전산망 구축을 끝내고 수도권과 대도시 등을 중심으로 에이전시 제휴도 마쳤다. 또 7월 초에는 할부금융 상품까지 출시했다.
롯데카드는 7월 초 자동차 등 할부금융 상품을 출시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시중에서 롯데카드 할부금융 상품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광고나 홍보전단은 물론이고 언론 노출조차도 거의 없는 편이다. 자동차 대리점 등에서도 롯데카드를 취급하는지 알기는 쉽지 않은 상태. 계열사이자 제휴관계라던 하이마트에서도 롯데카드를 통한 구매혜택은 눈에 띄지 않고 있다. 롯데카드 관계자도 “일단은 조심스럽게 시작할 예정”이라면서 “홍보나 마케팅에 나설 계획은 아직 없다”고 전했다.
카드업계에서는 어리둥절한 반응을 보인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소비자와 직접 접촉하는 금융회사는 신상품이 나오거나 새로운 사업에 진출하면 대대적인 마케팅에 나서는 것이 상식”이라면서 “그런데 롯데카드는 홍보는 물론 오히려 영업개시가 외부에 알려질까 전전긍긍하는 모습마저 보이고 있다”며 의구심을 표했다.
카드업계와 재계에서는 롯데카드의 이 같은 행보가 다른 계열사와의 충돌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우선 롯데캐피탈이 이미 할부금융 시장에 진입해 자리를 잡고 있다. 자칫 롯데카드가 공격적인 마케팅에 나설 경우 ‘집안싸움’ 구도가 형성될 수 있다. 롯데캐피탈의 경우 자동차 할부와 건설기계 할부는 물론 오토리스와 중대형 차량 리스 영업까지 하고 있다. 게다가 물품구입대금을 분할상환하는 일반할부 사업에도 진출해 있다. 롯데카드가 노리는 시장과 사업영역이 거의 일치한다.
물품할부, 즉 일반할부 사업도 순탄치 못한 상황이다. 롯데카드는 자동차 할부뿐 아니라 가전제품 등 내구재 할부금융 상품도 같이 선보일 계획이었지만 제휴를 맺기로 한 하이마트의 반발로 상품 출시가 늦어지고 있다. 롯데카드는 지난해 10월 롯데그룹에 편입된 하이마트와 UHD(초고화질) TV나 고급 냉장고 등 고가 가전제품을 구입하는 고객을 대상으로 할부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롯데카드가 제안한 상품은 신용카드로 가전제품을 24개월 할부로 결제할 경우 연 10%대의 금리를 적용하는 할부금융 서비스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이마트 측은 롯데카드의 제안에 난색을 표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미 신용카드 무이자 할부 등을 실시하고 있는 마당에 굳이 이자를 부담해야하는 물품 할부를 도입할 이유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있는 롯데카드는 일단 수입차와 내구재 등을 타깃 삼아 ‘조용히’ 영업을 해나간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그룹 내 이해관계에다 과당경쟁에까지 노출된 롯데카드의 할부영업 사업이 자리를 잡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영복 언론인
자동차 vs 카드업계 이전투구 ‘복합 할부금융’ 존폐 뜨거운 감자 자동차 복합 할부금융 상품을 두고 자동차업계와 카드업계의 갈등이 날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카드사에 내야하는 수수료가 부담된다며 폐지를 주장하는 자동차업계와 소비자 피해가 우려된다며 존속을 요구하는 카드·캐피탈업계의 입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것. 이에 맞서는 카드사와 중소 캐피탈사들도 여신금융협회를 통해 당국을 압박하고 있다. 아주캐피탈과 KB캐피탈, JB우리캐피탈 등 6개 캐피탈사는 여신금융협회에 복합 할부금융 상품을 유지해야한다는 공동 의견서를 냈다. 업계 간 갈등이 고조되자 금융당국은 복합 할부금융 상품을 놓고 본격적인 논의에 들어갔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현대캐피탈과 다른 여신전문 회사들의 의견을 두루 청취한 뒤 문제점이 무엇인지 검토하고 있다”면서 “합의점을 찾는 데는 시간이 좀 걸릴 것”고 전했다. [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