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집, 같은 방서 두 별이 자살 ‘소름 쫙’
쌍둥이 스타 댄서 제니 달리는 심각한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재기에 실패,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왼쪽 작은 사진은 제니 달리의 부고 기사.
1892년 10월 25일에 로즈 달리와 일란성 쌍생아로 태어난 제니 달리는, 로즈와 함께 짝을 이뤄 15세 때부터 무대에 섰다. 이후 플로렌즈 지그펠드의 유명한 ‘지그펠드 폴리스’(Ziegfeld Follies) 무대에 서며 인기를 끌었고, 자매는 1913년 결별해 각자의 길을 걸었다. 제니는 1912년에 결혼한 해리 폭스와 팀을 이루어 순회공연을 했고, 1916년에 로즈와 재회한 후 2000달러의 주급을 받는 빅스타로 떠오른다. 1918년엔 ‘달리 시스터즈’의 자전적인 영화인 <밀리언 달러 달리스>가 나올 정도였고, 당연히 주연은 로즈와 제니였다. 1차대전이 끝난 후 프랑스로 건너간 자매는 커다란 성을 사서 여왕들처럼 지냈다. 유럽의 왕족들은 그들에게 끊임없이 구애의 손길을 보냈고, 그들은 1920년대 가장 많은 돈을 받는 댄서였다. 물랭루주에선 하룻밤에 당시로선 엄청난 금액인 1200달러를 받을 정도였다.
자매를 더욱 유명하게 만든 건 그들의 도박 운이었다. 특히 제니 달리는 거의 타짜 수준이었다. 카지노와 경마장을 오가며, 제니는 돈을 긁어모았다. 칸에서는 하룻밤에 400만 프랑을 땄고, 몬테카를로의 은행 하나를 파산시켰다는 루머가 돌 정도였다. 경마, 바카라, 룰렛…. 그녀는 종류를 가리지 않았고, 수많은 칩을 수중에 넣었다. 그렇게 번 돈은 모두 보석 사는 데 썼고, 수많은 부자들이 그녀의 노름 밑천을 싸 들고 찾아왔다. 그들 중 하나가 런던의 소매업계를 주름 잡던 해리 고든 셀프리지였다. 그는 1000만 달러를 건네며 제니에게 프러포즈를 했다. 이 시기 막스 콘스탄트라는 프랑스의 파일럿과 사귀던 제니 달리는, 셀프리지와 결혼하기로 결심하고 콘스탄트와 마지막 주말여행을 떠났다. 하지만 파리로 돌아오는 길에 보르도 지역에서 대형 교통사고를 당했고, 폐 손상과 갈비뼈 골절 등의 중상을 입었다. 더 이상을 춤을 출 수 없었고, 아름다운 외모도 심하게 망가졌다. 이후 그녀는 자신의 모든 보석을 성형수술 비용에 쏟아 부었다.
건강 악화로 연기생활을 은퇴한 클라라 블랜딕. 원 안 오른쪽은 <오즈의 마법사>에 출연한 그의 모습.
제니 달리는 1935년에 버나드 비니스키라는 돈 많은 변호사와 세 번째 결혼을 하지만 결국 1941년에 이혼하고, 입양했던 두 딸과 함께 할리우드의 셸턴 아파트로 왔다. 마지막 남은 돈으로 성형에 성공해 화려하게 재기하겠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상황은 점점 나빠졌고, 신경 쇠약 증세로 진정제에 의존해 살았다. 그리고 1941년 5월 1일, 두 딸이 학교에 간 사이에 아파트 창틀에 목을 매 자살했다.
제니의 자살 소식을 들은 할리우드의 수많은 배우들 중엔 클라라 블랜딕도 있었을 것이며, 아마도 그녀는 자신이 그 아파트에서 자살한 두 번째 배우가 될 줄은 몰랐을 것이다. 우리에겐 <오즈의 마법사>(1939)에서 도로시의 이모로 잘 알려진 블랜딕은 20세기 초 미국 연극계의 촉망받는 배우였다. 1880년생인 그녀는 1901년에 연극 무대에 섰고, 이후 영화계와 브로드웨이로 진출했다. 그녀는 조연급으로 확고한 위치를 지니고 있었는데, 주로 엄마나 이모 같은 역할 전문이었다. 이후 점점 역할의 스펙트럼을 넓혔던 그녀는 상류사회 여성부터 냉혈 살인마까지 해내는, 할리우드에서 가장 쓰임새 많은 배우가 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1949년에 69세의 나이로 은퇴한다. 사람들은 그녀가 알뜰하게 모은 돈으로 여생을 즐기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녀가 연기를 그만둔 건 건강 때문이었다. 지독한 관절염으로 서 있기조차 힘들었고, 시력이 점점 감퇴하나 싶더니 결국은 실명 직전의 상황까지 이르렀다. 결국 그녀는 요양기관에 들어갔지만, 나아지는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1962년 4월 15일, 클라라 블랜딕은 모든 치료를 중단하고 오랫동안 비워 두었던 집으로 돌아왔다. 바로 로스엔젤레스의 노스 윌콕스 애비뉴 1735번지에 있는 그곳, 셸턴 아파트였다.
오자마자 그녀는 힘겹게 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자신이 좋아하는 사진과 기념품을 놓았다. 프로필 사진과 자신의 연기에 대한 기사를 스크랩한 것도 그 옆에 놓았다. 우아한 푸른색 가운을 입은 그녀는 머리를 곱게 단장했다. 그리고 다량의 수면제를 삼킨 후 침대에 누웠고, 금색 담요를 덮었다. 유서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나는 지금 위대한 모험을 떠나려고 한다. 이 뼈를 깎는 고통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것 같다. 그 고통은 내 몸을 온통 뒤덮고 있다. 곧 시력을 잃어 앞이 보이지 않을 거라는 사실도 견딜 수 없다. 내 영혼을 신이 거둬 주시길 기도한다. 아멘.” 일요일 아침, 집 주인이 그녀의 시신을 발견한 그 방은 21년 전 제니 달리가 목을 맸던 바로 그 방이기도 했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