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쇼 보고 ‘뚝딱’…커터도 ‘준비중’ 신무기 장착 참 쉽죠잉~
# 류현진의 스펀지 학습
지난 22일 피츠버그전에 선발 등판한 류현진은 7이닝 동안 삼진 5개를 잡아내며 시즌 11승을 올렸다. 이날 경기에서 류현진은 빠른 슬라이더를 18개 던졌고, 그중 피안타는 1개였다. 이날 잡은 삼진 5개 중 3개가 빠른 슬라이더였을 정도로 우타자를 상대했을 때 류현진은 빠른 슬라이더를 결정구로 사용했다.
류현진은 불과 한 달여 만에 88~89마일의 ‘빠른 슬라이더’를 자신의 결정구로 만들어냈다. AP/연합뉴스
류현진은 불과 한 달여 만에 빠른 슬라이더를 자신의 결정구로 만들어냈다. 말 그대로 신무기 개발을 해낸 셈이다. 이에 대해 국내 좌완 투수들 대부분은 이 점에 대해 류현진의 가치를 높이 평가한다. 좌완 투수 중 한 명은 “새로운 구종을 몸에 습득하기 위해선 무려 2~3년의 시간이 걸린다. 그런데 류현진은 아주 짧은 시간에 그걸 자기 것으로 만드는 비범함이 있다”면서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류현진은 이 점과 관련해서 자신의 ‘MLB 일기’를 통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한국에서 (윤)석민이 형으로부터 슬라이더를 배운 적이 있고, 그걸 내 걸로 만들려고 노력도 해봤지만, 내가 원하는 슬라이더가 나오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그 당시에는 너무 깊게 파고 들어가려 했었고, 이번에는 그냥 가볍게 생각하고, 마치 연습 하듯이 던져본 게 의외의 결과가 나온 것 같다. 연습만 하다 실전에서 커쇼의 슬라이더 그립을 잡고 던진 건 지난 샌디에이고전이 처음이었다.”
류현진은 자신의 빠른 슬라이더와 커쇼의 그것과는 팔의 각도면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다고 밝혔다. 더욱이 짧은 시간 내에 시속 10㎞ 이상 스피드를 올릴 수 있었던 데는 팔의 각도를 올렸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팔의 각도를 살짝 높인 상태에서 직구로 던지니까 각이 살아났고, 상대 타자들이 전혀 공략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류현진은 변화구 위주의 피칭에 따른 부상 위험에 대해서도 “그런 공을 던질 때 몸이 불편하다는 느낌이 없었다. 공을 던질 때 불편함이 없다면 괜찮은 거 아니냐”고 반문했다.
# “난 아직 갈 길이 멀었다”
류현진은 지난 6월 12일 신시내티 레즈전에서 이전에 보지 못했던 구종으로 공 3개를 던졌다. 조이 보토에게 1회와 5회에 던진 공이 모두 커터였던 것. 류현진은 어깨 부상으로 부상자명단에 오른 동안 릭 허니컷 투수코치로부터 커터 그립 잡는 법을 배웠고, 꾸준히 연습을 해오다 신시내티전에서 좌타자 조이 보토를 상대로 시험을 해봤던 것이다.
류현진이 지난 7월 22일 피츠버그전에서 빠른 슬라이더를 선보였다. MBC 화면캡처
당시에도 류현진의 그 공이 슬라이더라고 설명한 전문가도 있었지만, 류현진은 “87~88마일 이상의 공이 슬라이더처럼 꺾여 들어간다. 타자 입장에선 슬라이더라고 생각했다가 자신의 앞에서 훨씬 빠른 스피드로 꺾이는 공에 순간 당황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내보였다. 다른 선수도 아닌 신시내티의 중심 타자인 조이 보토에게 새로운 공을 선보인 데 대해서 류현진은 자신의 주무기인 체인지업이 노출될 때로 노출된 상태에서 그걸 보완해줄 만한 변화구가 필요했는데, 릭 허니컷 투수코치로부터 커터 그립을 배워 실전에서 사용했다고 대답했다.
그래서 류현진에게 커터와 빠른 슬라이더의 차이를 물었다. 그러자 그는 “커터는 살짝만 옆으로 휘는 것이고, 빠른 슬라이더는 각으로 떨어진다는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더욱이 그가 커터를 던지는 것은 향후 우타자를 상대할 구종이기에 좌타자를 상대로 시험해본 것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만약 우타자에게 커터를 던지다 살짝만 휘어지지 않고, 그보다 조금 더 휘어 들어갈 경우 실투가 돼 홈런을 맞을 수 있다. 그래서 우타자용 커터는 좀 더 공에 대한 확신이 생겼을 때 구사할 계획이다.”
류현진의 말을 종합해 보면 그가 최근 샌디에이고전과 피츠버그전에서 선보인 빠른 슬라이더는 그가 주장하는 대로 커터가 아니라고 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송재우 메이저리그 해설위원은 류현진과 다른 견해를 갖고 있었다. 빠른 슬라이더가 결국엔 컷패스트볼, 커터라는 것이다.
“투수나 포수가 빠른 슬라이더를 던졌다고 해도 타자 입장에선 커터라고 볼 수 있다. 88~89마일 찍히는 슬라이더는 없다. 커터이기에 가능하다. 그러나 던지는 투수가 슬라이더라고 주장하면 어쩔 수 없다. 현지 메이저리그 중계 해설을 들으면 대부분 류현진의 그 공을 커터라고 표현한다. 그들의 눈에도 빠른 슬라이더가 커터로 보이는 것이다. 내가 봐도 그 공은 커터다. 아무리 빠른 슬라이더라고 해도 커터일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류현진의 재미난 대답이 이어진다. “상대 타자들이나 전문가가 아무리 커터라고 하든 말든 난 슬라이더를 던졌다. 조이 보토를 상대했을 때는 커터를 던졌지만, 최근 두 경기에선 빠른 슬라이더였다”라고 설명했다.
그 공이 빠른 슬라이더인지, 커터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메이저리그 2년차에 접어든 류현진이 주무기 체인지업이 털릴 것에 대비해 새로운 구종을 개발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류현진을 가리켜 야구인들이 ‘영리한 투수’라고 입을 모아 칭찬하는 것도 이 부분에 있다.
류현진은 이런 칭찬에 대해서도 자신은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말한다. 그리고 한마디 더 덧붙인다. “아직 커쇼처럼 되려면 멀었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