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진남 설정에 레트로 감성 저격해 남녀노소 ‘푹’…‘20세기 소녀’ ‘소울메이트’서도 ‘만찢남’ 완벽 소화
현재 방송가 최고의 화제작은 변우석이 주연한 tvN 월화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다. 현재와 과거인 2008년을 넘나드는 두 남녀의 타입슬립 로맨스를 내세워 시청자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최근 tvN 역대 시청률 1위 기록을 수립한 김수현 주연의 ‘눈물의 여왕’의 화제성과 비교해도 체감 인기는 더 뜨겁다. SNS에서는 변우석과 선재에 대한 이야기가 넘친다. 인기의 척도로 꼽히는 ‘바이럴’에서도 단연 화제다. 처음엔 여성 시청자를 중심으로 인기가 형성됐지만 회를 거듭할수록 3040세대 남성들까지도 빠져들게 만들고 있다. ‘그때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레트로 감성까지 자극하고 있어서다.
#‘첫사랑 아이콘’ 이젠 변우석에게
‘선재 업고 튀어’는 삶의 의지를 일깨워준 아티스트 류선재(변우석 분)의 죽음으로 절망에 빠진 열성팬 임솔(김혜윤 분)이 과거로 돌아가 선재를 살리기 위해 벌이는 일을 그리고 있다. 유명 스타와 열성팬인 이들이 2008년 고교 시절 서로에게 ‘첫사랑’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마음을 확인한 두 사람은 설렘이 폭발하는 사랑의 감정을 키운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타입슬립 설정은 최근 로맨스 드라마가 자주 선택하는 콘셉트다. ‘선재 업고 튀어’ 역시 드라마의 흥행 코드를 충실히 따르면서 출발한다. 하지만 ‘빤한 로맨스’일 것이라는 예상을 보기 좋게 뒤엎고 있다. 반전의 성공을 거두는 힘은 선재 역으로 활약하는 변우석으로부터 나온다. 순정만화의 주인공처럼, 2000년대 초반 유행했던 하이틴 소설의 주인공처럼, 마음을 감추지 않고 좋아하는 상대에게 다가가는 이른바 ‘직진 로맨스’로 여심을 뒤흔들고 있다.
고교 시절인 2008년의 선재는 수영 유망주로, 순정만화에서 막 튀어나온 듯한 비주얼을 지닌 소년이다. 모두가 선망하는 인물이지만 다른 이들에게 눈길을 주지 않고 몰래 마음에 품은 첫사랑 소녀 솔에게 ‘직진’한다. 변우석이 연기하는 선재의 매 순간은 여성 시청자의 마음을 빼앗으면서 첫사랑의 아이콘이자 ‘심쿵의 아이콘’으로 인정받는다.
제작진은 첫사랑의 감정을 극대화하는 장치로 극의 배경인 2008년의 시대상을 드러내는 각종 소품과 음악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스마트폰이 등장하기 직전이라는 상황에 맞춰 주인공들은 폴더폰과 슬라이드폰을 쓰고, 인스타그램도 없던 시절을 표현하는 방편으로 싸이월드를 통한 일촌 맺기를 내세운다. 커피 리필도 사라진 지금 떠올리면 ‘호시절’ 같았던, 생과일 전문 카페에서의 식빵 리필 모습 역시 3040세대의 감성을 한껏 자극한다. 추억과 향수까지 자극하는 첫사랑은 그대로 시청자의 몰입을 유발한다.
그중 가장 놀라운 건 변우석이 1986년생, 서른두 살이라는 사실이다. 교복을 입고 마음을 숨기지 못하는 순수한 소년의 얼굴로 화면을 채우지만, 실제론 30대 초반이라는 점을 떠올리면 지금의 ‘선재 열풍’이 얼마나 뜨거운지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30대 남자 배우가 ‘겁 없이’ 교복을 입고 고교생의 첫사랑을 표현하지만, 누구도 이질감을 느끼지 않는다. 이런 상황을 즐기려는 듯 변우석은 화려한 런웨이를 걸었던 패션모델 출신답게 키 187cm에 이르는 남다른 비주얼도 아낌없이 발휘한다.
그래서 탄생한 말이 ‘선친자’다. 일명 ‘선재에게 미친 자(사람)’를 뜻하는 신조어다. 최근 다양한 소재의 로맨스 드라마가 계속 등장하지만, ‘친자’의 타이틀을 붙은 건 선재 그리고 변우석이 유일하다. tvN 드라마의 새 역사를 썼다고 인정받는 톱스타 김수현도 얻지 못한 수식어다.
#변우석이 걸은 ‘첫사랑’의 길
변우석은 갑자기 탄생한 스타는 아니다. 이번 ‘선재 업고 튀어’를 통해 그야말로 ‘떡상’했지만, 그 자리에 오기까지 착실하게 연기 경력을 쌓았기에 기회를 잡았다.
모델로 활동하던 그는 2016년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로 연기를 시작했다. 당시 출연 분량은 크지 않았지만 고현정과 조인성은 물론 김혜자, 나문희, 윤여정, 고두심까지 쟁쟁한 대배우들이 출연한 작품에서 연기를 시작한 상황은 분명한 ‘행운’이었다. 작품에서 변우석의 역할은 카페를 운영하면서 모든 가족을 먹여 살리는 윤여정의 조카. 고모를 유일하게 걱정하고 챙기는 인물로, 짧은 출연에도 남다른 비주얼로 시청자에 눈도장을 찍었다.
이후 변우석은 드라마 ‘청춘기록’ ‘꽃피면 달 생각나고’ 등을 통해 주연급으로 도약했다. 매 출연작마다 모델 출신으로서의 강점을 적극 활용하기도 했다. 배우 박보검과 호흡을 맞춰 연예계의 이야기를 다룬 ‘청춘기록’에서는 부모의 든든한 지원 아래 승승장구하는 라이징 스타 역으로, 사극 ‘꽃 피면 달 생각나고’에서는 ‘꽃 미모’를 자랑하는 세자 역으로 활약했다.
첫사랑 로맨스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건 드라마가 아닌 영화에서다. 출발은 2022년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로 공개한 ‘20세기 소녀’. 배우 김유정과 호흡을 맞춘 영화는 1999년을 배경으로 단짝인 두 친구와 그들 사이에 놓인 소년이 겪는 풋풋한 첫사랑과 끝내 이뤄질 수 없는 가슴 아픈 이별을 그린 수작이다. 영화에서는 타이틀롤 김유정의 활약도 돋보였지만, 더 빛난 주인공은 변우석이었다.
‘20세기 소녀’를 연출한 방우리 감독은 변우석이 맡은 극 중 인물인 풍운호 역을 캐스팅하면서 “순정만화에서 막 튀어 나온 듯한 남자 배우가 맡기를 바랐다”고 밝혔다. 방 감독은 “아무 말을 하지 않아도, 서 있는 모습만으로도 ‘그림 같은 느낌’을 주는 배우를 찾은 끝에 변우석을 만났다”고도 말했다.
영화에서 더 돋보인 변우석의 활약은 ‘20세기 소녀’에 이어 김다미, 전소니와 호흡을 맞춘 영화 ‘소울메이트’로 이어졌다. 20여 년의 시간을 함께하는 두 소녀의 우정을 그린 작품이지만, 변우석은 이들 사이에서 우정과 첫사랑을 함께하는 또 다른 주인공으로 활약했다. 그렇게 쌓은 첫사랑의 표현이 ‘선재 업고 튀어’를 통해 그야말로 ‘포텐’이 터진 셈이다.
변우석은 ‘선재 업고 튀어’ 공개를 앞두고 작은 바람을 밝혔다. 평소에도 “로맨틱 코미디를 정말 좋아해서 하나의 모습이 아닌 다양한 매력을 대중에 보이고 싶었다”는 그는 “‘로코 천재 변우석’이라는 수식어를 꼭 얻고 싶다”고 말했다. 꿈은 이뤄졌다. 로맨스와 로맨틱 코미디 장르에서 활약하는 ‘천재’를 넘어, 그는 30대 남자 배우 누구도 가진 적 없는 ‘첫사랑의 아이콘’ 자리까지 차지했다. 바야흐로 변우석의 시대가 열렸다.
이호연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