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의 부적절한 ‘백스윙’ 총리 닮았네
▲ 이명박 서울시장. | ||
이 시장이 2003년부터 지난해 상반기까지 서울시 소유의 남산테니스장에서 주말마다 무료로 테니스를 친 사실이 밝혀져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이 시장은 문제가 불거지자 지난해 말 자신의 테니스장 이용료조로 600만 원을 뒤늦게 냈다. 이 테니스장은 선 전 회장이 미리 예약을 해놓고 이 시장으로 하여금 자유롭게 이용토록 한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이 파문은 불과 며칠 전 이 전 총리의 사퇴를 몰고 온 골프 파문과 상당히 흡사하게 전개되고 있어 지방선거를 앞둔 정치권을 또 한 차례 요동치게 만들 것으로 보인다.
사건의 파장도 닮은꼴로 진행되고 있다. <일요신문>의 확인 결과, 이 시장의 ‘황제테니스’를 주선한 선 전 회장의 부적절한 과거 행적이 상당수 드러나고 있다. 선 전 회장이 이 시장과의 친분을 최대한 활용하려 했던 정황도 많은 테니스인들의 증언을 통해 확인되고 있다. 이에 대해 선 전 회장은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나에 대해 사실과 다른 소문으로 인해 피해를 보고 있다”며 관련 내용을 부인했다.
이 시장은 파문이 확산되자 방미 일정을 단축하고 지난 18일 급거 귀국해 “사려 깊지 못한 행동이었다”며 유감을 표명했다. 하지만 파문은 여전히 가라앉지 않고 있다.
선 아무개 씨는 지난 1997년 서울시테니스협회장에 취임했다. 테니스를 좋아하는 사업가로 알려진 그는 지난해까지 약 7년간 회장을 역임했다. 일반인들에게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었다.
<일요신문>은 선 전 회장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테니스계 인사들을 다각도로 접촉하는 과정에서 뜻밖의 새로운 사실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테니스계 주요 인사들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선 전 회장과 이 시장의 밀착 관계가 최근 2~3년간 계속되다가 지난해부터 관계가 멀어지기 시작했다”며 “선 전 회장 주변에서 자꾸 안 좋은 소리가 들리니까 이 시장이 의도적으로 멀리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 시장과 선씨의 관계
지난 2002년 서울시장 선거 때 서울시테니스협회장이었던 선 씨는 당시 이명박 후보의 선거운동을 돕기 위해서 테니스인 동원에 나섰던 것으로 확인됐다.
선 전 회장과 가까운 사이라고 밝힌 A 씨는 “2002년 초였다. 선 회장이 하도 보자고 불러서 강남의 한 일식집에서 만난 적이 있는데, 내게 ‘이 후보를 도와야 하니 테니스 동호인들을 좀 동원해 달라’고 부탁해서 나는 않겠다고 거절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A 씨는 대한테니스협회 산하 연맹의 고위간부로 테니스 동호인들 사이에 발이 넓은 테니스계의 주요 인사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당시 선 전 회장은 서울시 협회장의 신분을 한껏 활용해서 이 시장의 선거를 도운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한 테니스인은 “당시 이 시장 입장에서야 한 표가 절박한 심정인데 선 회장이 테니스인들을 동원해 돕고 나서니 얼마나 고마웠겠는가”라고 반문했다.
테니스인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 시장의 당선 이후 두 사람의 관계는 상당히 가까워진 것으로 알려졌다. 선 전 회장은 도로교통 관련 사업을 해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테니스인들에 따르면 서울시 협회장을 오래 역임한 그는 테니스장 운영에 관심이 많았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서울시장이면서 차기 유력 대권주자인 이 시장과의 친분 관계를 선 전 회장은 한껏 부각시킨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서울시 테니스 동호회의 B 씨는 “선 회장은 수시로 우리들에게 ‘이 시장과 매주 테니스를 치고 있고, 같이 식사를 했고, 같이 어딜 갔다’는 식의 친분관계를 과시하고 다녔다”며 “우리 주변에서는 서울시에서 건립 중인 잠원동과 창동의 테니스장도 선 회장이 운영하게 될 것이란 소문이 파다했다”고 밝혔다.
실제 테니스계 인사들은 선 전 회장이 테니스를 사랑하는 이 시장을 통해서 테니스장을 추가로 더 건립하려는 노력을 많이 한 것으로 전하고 있다. 창동과 잠원동 테니스장 건립 역시 선 전 회장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시장은 서울시장으로서 서울시체육회장도 겸하고 있다. 선 전 회장은 테니스협회장으로 서울시체육회의 대의원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새롭게 건립되는 테니스장의 운영권을 욕심내는 인사들이 많았고 그 인사들 속에 선 전 회장도 함께 거론됐다는 점이다. 한 테니스인은 “선 회장은 그렇게 재력가도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 사람이 뭣 때문에 남산테니스장의 주말 황금시간대를 장기 예약하면서 이 시장을 불렀겠는가”라며 “선 회장은 로비를 잘 하는 사람으로 소문나 있다”며 로비 가능성을 내비쳤다.
두 사람의 밀착 관계는 지난해부터 급격히 틈이 생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 시장 주변에서 “선 회장과 관련, 좋지 않은 소문이 나도니 조심하라”는 조언이 작용했다는 전언이다. 당초 두 사람의 관계를 이어준 것으로 알려진 테니스 국가대표 감독 출신 C 씨는 “나도 작년 말께 이 시장 측근에게 ‘선 회장이 이 시장을 팔고 다니는 등 좋지 않은 소문이 많으니 조심하라’고 주의를 시켰다”고 밝혔다.
선씨는 어떤 인물인가
선 전 회장에 대한 테니스인들의 평가는 비난 일색이었다. A 씨는 “한 마디로 회장감이 아니었다. 로비를 잘하고 언행이 가벼웠다”고 고개를 저었다. 테니스계의 대부 격인 C 씨 역시 “전에는 같이 잘 지냈는데 갈수록 그 사람 처신하고 다니는 것이 못마땅해 요즘은 멀리하고 있다”며 “그가 팔고 다니는 유명인사는 이 시장뿐만이 아니었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와 정몽준 의원과도 친하다고 주변에 말하고 다닌다더라. 솔직히 나를 통해 모두 알게 된 인사들이어서 더 착잡하다”고 인상을 찌푸렸다.
서울시테니스협회의 고위간부 D 씨는 “한때 내가 모시던 분에 대해서 나쁘게 말하고 싶진 않지만 여러 가지 문제를 많이 일으켰다. 이번 파문만 해도 선 회장이 매끄럽게 마무리했더라면 이 시장이나 우리 협회가 이렇게 곤란을 겪진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가 당시 했던 (의혹성이 있는) 일들은 모두 개인 자격으로 한 것이지 우리 협회장의 자격으로 한 것이 아니다”라며 분명한 선을 그었다.
확인 결과, 그는 한때 사기 등의 법적 분쟁도 상당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A 씨는 “예전에 누군가를 통해서 확인한 것인데 그의 좋지 않은 전력이 상당한 것을 확인하고 놀랐다”고 전했다. B 씨는 “늘 유명 정치인들 주변에서 맴돌았다. 이 시장과 관계가 다소 소원해진 최근에는 노태우 씨의 부인 김옥숙 씨가 포함되어 있는 테니스 모임 D회에 열심이라고 한다. 이 모임의 회장도 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전했다.
그가 전하는 에피소드는 또 있다. 서울 강남의 한 테니스장에는 매년 유명 인사들을 초청하는 대회가 열리는데, 지난해에도 박근혜 대표 등 유명 인사들이 참석했다는 것. 물론 이 자리에는 선 전 회장도 어김없이 자리를 함께했다. 그런데 여기에 난데없이 초청가수가 와서 공연도 했는데 그것이 선 전 회장의 작품이었다고 밝혔다.
접대성 논란의 핵심
이 시장의 접대성 테니스 논란의 핵심은 그가 그동안 남산 테니스장을 황금시간대인 주말에 수시로 이용해 왔다는 점이다. 그것도 모두 무료로 이용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이 시장이 600만 원을 요금조로 지불한 것은 지난해 말이었다. 남산테니스장 관리자인 한국체육진흥회 측과 서울시테니스협회 간의 요금 미납 분쟁으로 문제가 불거지자 서둘러 낸 것으로 확인됐다.
이 시장이 주말마다 테니스를 즐길 수 있었던 것은 선 전 회장의 배려 때문이었다. 선 전 회장은 체육진흥회와 2003년 계약을 했다. 체육진흥회 측이 밝힌 계약 내용은 이랬다. ‘서울시테니스협회에서 “시장님이 토, 일요일 언제라도 오셔서 운동을 할 수 있게 하기 위해 기 계약된 일요일 오전(09:00~13:00)을 제외한 전 영업시간을 일반회원의 사용을 전적으로 배제한 채 독점으로 사용하겠다” 하여…’라는 것.
체육진흥회의 한 관계자는 “당시 우리 전무님과 선 회장 간에 구두로 체결된 계약이어서 문서는 없다”며 “하지만 이 내용이 명확하기 때문에 당시 서울시협회에 내용증명으로 보낸 것”이라고 밝혔다.
‘중요한 계약을 어떻게 계약서도 없이 구두계약으로 할 수 있는가’란 질문에 이 관계자는 “솔직히 시장님이 치시겠다고 하고 서울시 협회장이 그렇게 나오는데 굳이 계약서까지 요구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양측의 사정을 어느 정도 잘 아는 한 테니스인은 “선 전 회장은 서울시협회장이고 또 자신이 이 시장의 최측근인 양 실제 테니스를 함께 쳤다. 서울시로부터 입찰을 통해 시설을 위탁관리 운영하는 체육진흥회로서는 구두계약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확인 결과, 체육진흥회가 서울시협회에 요금 공문을 처음 보낸 것은 지난해 3월경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때는 선 전 회장이 회장을 물러난 직후였다. 당시 서울시협회는 ‘선 전 회장이 개인 자격으로 사용한 것이므로 협회에서 요금을 낼 책임이 없다’는 답변을 보냈다.
이후부터는 선 전 회장과 체육진흥회 간에 요금 문제를 놓고 옥신각신 분쟁이 1년 가까이 계속됐다. 체육진흥회는 “당초 계약된 시간의 요금을 모두 내라”고 요구했고 선 전 회장은 “우리가 이용한 시간만 계산해서 내겠다”고 맞섰다는 것.
지난해 12월 테니스장 사용료 문제가 불거지자 이 시장 측이 뒤늦게 부랴부랴 600만 원을 낸 것도 비난을 피하기 힘들다는 것이 중론이다. 한 테니스인은 “이 시장 스스로가 요금 문제에 대해 별로 의식을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냥 당연히 쳐도 되는 것으로 알았는데 나중에 요금 문제로 시끄러워지면서 말썽의 소지가 있을 것을 우려해 뒤늦게 낸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아무튼 체육진흥회 측의 주장대로라면 그동안 남산테니스장이 이 시장에게 대단한 특혜를 베푼 것만은 틀림없다. 무엇보다 이 시장이 2003~ 2004년 2년간 주말에 테니스장을 자주 이용하면서 한 차례도 그 자리에서 요금을 지불하지 않은 것은 사실로 밝혀진 것이다. 이 시장 자신도 돈을 다른 사람이 내는 것으로 알고 테니스를 친 셈이다.
감명국 기자 km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