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이라크 파병문제를 비롯, 국가보안법과 정기간행물법 개정 같은 미묘한 문제에 대해서는 일단 극한적인 보-혁 갈등과 이익집단간 충돌을 몰고 올 수 있기 때문에 일부 개혁 사안의 입법 실현에 차질을 빚을 수도 있다. 17대 국회에서 추진될 주요 개혁 법안들을 미리 살펴봤다.
◆국가보안법〓17대 국회에선 ‘유지냐 폐지냐’ 하는 존폐논쟁이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 민주당 등은 폐지를 주장한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 자민련 등은 최소한 현행을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양측간 논란은 있겠지만 국가보안법 위반사범이 발생하지 않을 정도로 이미 법률안이 사문화된 데다 거의 대부분의 위반사례는 형법 등을 통해 처벌할 수 있다는 점에서 폐지될 가능성이 좀 더 높아 보인다는 견해가 조심스럽게 나온다.
◆정기간행물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대기업 및 타 언론사에 의한 언론의 사적 독점 방지, 언론사와 사주의 회계결산보고서 문화관광부 정기 제출 등을 주 내용으로 한다. 언론의 공공재적 측면을 강조하는 열린우리당은 법 처리에 적극적이지만, 언론의 자율성을 강조하는 한나라당은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어 처리 전망은 극히 불투명하다.
특히 ‘메이저 신문’들이 언론탄압이라며 강력 반발하고 있어 16대에서도 4년간 논란만 거듭한 채 처리는 못한 사안이다. ‘여기서 밀리면 자칫 여론시장 독과점 구조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는 위기의식으로 인해 여-야, 여-메이저신문 간에 첨예한 대립이 예상된다.
◆공무원 노동조합법〓공무원의 노동 2권(단결권, 단체교섭권) 보장을 중핵으로 한다. 열린우리당의 총선 공약에 포함된 내용이며, 민주노동당도 적극 추진중인 법안이다. 하지만 한나라당이 반대할 게 불 보듯 뻔한 법안이기도 한다. 공무원을 노동자로 보지 않는 사회적 시각과 공무원의 집단행동시 예상되는 엄청난 혼란 등을 우려, 반대 여론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노무현 정부의 ‘친노동자 성향’ 등 색깔론을 불러올 가능성이 있어 처리 전망은 그리 밝지 않은 상황이다.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비정규직 차별 해소와 남용 규제를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이 주목적이다. 열린우리당이 사회적 안전망 확충 차원에서 내건 총선 공약인데, 이는 김영삼 정부 시절 근로자파견법 제정 등에서부터 지속돼온 ‘노동시장 유연화 기조’에 맞지 않는 데다, 기업들의 부담을 크게 늘릴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쉽게 처리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과 전경련, 경총, 중기협 등의 반발도 예상된다.
◆국회법 개정안〓국회의원에 대한 국민소환제 근거 규정 신설, 국회의원 면책특권과 불체포특권 제한을 위한 근거 규정 신설, 국회의원 체포동의안에 대한 기명투표 의무화 등을 골자로 한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모두 총선 공약으로 내걸어 다른 어느 쟁점 법안들보다 처리 전망이 밝아 보인다. 그러나 이들 모두 국회의원의 기득권을 상당부분 없애는 내용이기 때문에, ‘중이 제 머리 못 깎듯’ 실제 법 개정으로까지 나아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미 만료된 금융감독원의 금융거래정보요구권 시한 연장을 주 내용으로 한다. 16대에서 열린우리당은 불법자금 추적을 위해선 금감원의 계좌추적이 필수적이라며 법개정을 추진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자율적인 기업활동 위축과 경제난 등을 이유로 반대 입장을 고수했다. 17대에서도 똑 같은 이유로 한판 대결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특별법 개정안〓친일 반민족 행위자 범위를 재조정한다는 내용이다. 16대 국회 말 한나라당 최연희 김용균 등 보수 성향 법사위원들에 의해 복잡한 조정과정을 거쳐 이뤄진 법안인데, 열린우리당을 중심으로 법 개정 시도가 이뤄질 전망이다. 하지만 일단 논란의 대상으로 부각됐던 사안이라는 점에서 제정 1년도 안돼 개정이 이뤄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민법 개정안〓호주제 폐지를 통한 양성 평등 실현을 담고 있다. 열린우리당은 호주제 폐지를 주장하는 반면, 한나라당은 호주제는 유지하되 호주제로 인한 법적 폐해를 줄여나가자는 입장이다. 보수 성향의 유권자, 유림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의 한판 대결이 불가피한 상황. 의석비율이 여대야소로 바뀌고 민주노동당과 민주당 역시 호주제 폐지 입장임을 감안하면 호주제는 폐지될 가능성이 높다. 다만 사회적 여론이 뒷받침되지 않을 경우 의석수로 밀어붙이긴 힘든 상황이다.
허소향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