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배-위장-분산’ 감쪽같다 교관 파견 AS까지…
지난해 7월 미사일 부품과 미그기 등을 싣고 가다가 파나마에서 적발된 북 청천강호. 위장용 설탕포대들이 쌓여 있다. 연합뉴스
북한 정권이 국제 무기 암거래를 통해 벌어들이는 돈은 연간 3억 달러(약 3129억 원)다. 이는 국내외 정보기관들이 파악하는 추정치로 실제로는 훨씬 많을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한 국가의 예산을 놓고 볼 때, 많은 건 아니지만 김정은의 통치 자금으로서 요긴하게 쓰일 수 있는 금액이다.
북한 정권이 행하고 있는 불법 상거래는 이밖에도 마약, 슈퍼노트(위조지폐), 가짜담배 등이 있다. 앞서의 것들은 일반 소비재로서 북한 내부에서도 유통되는 성격 탓에 그 유출 루트는 비교적 상세하게 알려져 있다. 하지만 살상이 본목적인 무기 암거래는 앞서의 것들과 성격이 전혀 다르다. 국제적 규제와 감시가 훨씬 엄격하다. 이 때문에 북한 군부와 당 내부에서도 그 유통 루트는 철저하게 비밀로 부쳐지고 있는 형국이다.
NK지식인연대 박건하 사무국장은 “밀수를 위한 무기 연구 개발을 주목적으로 하는 인민군 소속 ‘101호 연구소’는 군 내부에서도 보안 사항이다. 다른 군부 기관들이 일과를 끝낸 늦은 밤에서야 비밀리에 연구가 진행되는 터라 다른 군부 인사들도 그 안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 좀처럼 알지 못할 정도”라며 “수출을 위해 많은 무기를 북-중 접경지역과 혹은 인근 항구 등으로 운송할 때도 주로 늦은 밤 시간을 이용한다. 그만큼 무기 거래는 북한 내부에서도 조심스럽고 비밀스럽다”고 설명했다.
물론 무기도 엄연한 상품이기에 이를 실제 내다파는 세일즈맨이 존재한다. 북한 전문가들은 그 임무를 수행하는 조직으로 ‘창광회사’를 지목한다. 창광회사는 북한 제2경제위원회 소속의 무기 암거래 전문 조직으로 추정된다. 제2경제위원회는 일반경제를 담당하는 제1경제위원회와 구분해 북한의 군수경제를 담당하는 기관이다.
이윤걸 북한전략정보서비스센터 대표는 “창광회사는 전 세계 곳곳에 주재원을 두고 무기 거래를 꾀한다”며 “겉으로는 ○○무역, ××개발회사 등의 이름을 내걸고 있다. 이 때문에 외부에선 이를 의식하기 무척 어렵다”고 밝혔다.
창광회사 소속 요원들은 무기거래를 원하는 국가 혹은 단체와 직접 접촉하기도 하지만, 업계 특성상 세계 무기시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전문 브로커’들과 접촉해 거래를 타진하는 경우가 많다.
양욱 국방안보포럼 연구위원(군사전문기업 인텔엣지 대표)은 “몇 해 전, 북한의 무기 밀매를 주선하다 적발돼 언론에 공개된 적이 있는 영국인 브로커 마이클 레인저의 사례처럼 북한 당국은 국제 무기시장에서 활동하는 전문 브로커와 접촉해 거래를 꾀한다”며 “업계에선 큰손으로 통하는 브로커들이 존재하는데, 이들 중 일부는 고객의 요구에 따라 북한과 같은 불법적인 대상과 손을 잡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양 위원이 언급한 브로커 마이클 레인저는 지난 2012년 북한 혜성무역회사(창광회사의 위장회사로 추정) 소속의 오학철이라는 요원과 접촉했다. 그는 아제르바이잔과 지대공 미사일 거래를 연결하려다 적발돼 영국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은 바 있다. 브로커들 중에서는 레인저처럼 영국인이 많다고 한다. 이는 과거 영국이 많은 후발 국가들을 식민지로 두고 있어 해당 국가의 군벌과 친분이 두텁기 때문이란다.
현재까지 북한과의 거래가 밝혀지거나 추정되는 곳은 이란, 시리아, 리비아, 아제르바이잔 등 중동과 우간다, 에티오피아, 탄자니아, 수단 등 내전을 겪고 있는 아프리카 국가들이다. 이들의 공통점이라면, 과거 구 소련제 무기 체계를 두고 있으면서 국제사회에서 이른바 ‘불량국가’로 낙인찍힌 무기거래 제재 국가라는 것이다. 현재 UN 안전보장이사회는 제1718호와 제1874호 결의안에 따라 북한과의 무기밀수를 금지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최근 거래 정황이 포착된 바 있는 헤즈볼라, 하마스 등 테러단체 역시 북한의 주요 고객이라는 점이다. 과거와 달리 요즘 테러단체들은 주변국가와 군벌, 재력가의 지원과 다이아몬드, 석유, 마약 등 각종 사업권을 통해 상당한 재력을 갖고 있다.
이러한 국가와 단체들이 북한의 무기거래를 원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이들 모두 정상적인 무기거래가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 질과 가격 면에서 좋은 무기를 공급해 줄 수 있는 국가는 북한이 거의 유일하기 때문이다. 그 품목도 실로 다양하다. 총기와 수류탄 등 기본적인 재래식 무기는 물론 스커드 계열의 단거리 미사일과 장사정포 등 중장비도 거래 대상이다.
앞서 언급한 창광회사 요원들의 고객 확보 과정을 거쳐 계약이 성사된다면, 그 운송 과정에선 “그야말로 온갖 수단의 위장과 불법적 행위들이 총동원된다(이윤걸 대표).” 기본적으로 보안의 이점 탓에 항공기보다는 선박 운송이 우선시된다. 이따금 전세기를 이용할 때도 있지만, 해상경로가 영순위다.
정전 60년을 맞아 펼친 퍼레이드에서 북한이 미사일을 선보이고 있다. KBS1-TV화면 캡쳐
양욱 위원은 “북한이 무기 밀매를 위해 이용하는 선박의 국적은 실로 다양하다”며 “협조 하에 타 국가 국적의 선박이나 아예 위장회사를 내세워 파나마와 같은 타 국가의 선박을 사들여 사용하기도 한다. 또한 처음에는 북한 선박을 이용하다 해상 혹은 경유하는 항구에서 감쪽같이 다른 국가의 선박으로 컨테이너를 옮겨 싣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지난 2009년 부산항에는 중국 국적의 선박 한 척이 들어왔다. 최종 목적지는 금수국가 시리아였다. 이상한 낌새를 느낀 세관은 컨테이너를 열었고, 그 안엔 북한산 군수물자가 가득 들어있었다.
북한의 무기 밀매 첫 번째 과정은 분해다. 이는 국제사회 감시를 피하기 위해 필수다. 북한은 무기에 있어선 상당 수준의 ‘리버스 엔지니어링(Reverse Engineering, 역분해하여 해당 기술 구조를 완벽하게 파악해 자유롭게 분해와 조립을 할 수 있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이 때문에 규모가 큰 스커드 계열의 미사일일지라도 나사와 실린더, 엔진 하나하나 분해가 가능하다. 적발 가능성이 높은 탄두는 호환이 가능하기 때문에 굳이 밀수를 할 필요도 없다. 나머지 분해된 무기의 부품들은 일반 산업 물자와 분간이 어렵다.
북한은 이러한 리버스 엔지니어링 기술을 바탕으로 군사기술인력을 고객 국가에 파견해 최종 재조립 및 설치 서비스까지 제공한다. 물론 여기에는 해당 무기의 실제 사용 기술을 전수하는 교관들의 파견 서비스까지 포함된다. 이른바 ‘애프터서비스’다.
두 번째 과정은 위장이다. 이렇게 분해된 무기들은 각종 물자들로 덮어진다. 지난해 파나마에서 적발된 북한 청천강호 컨테이너 안에는 미그기를 비롯한 군수물자 위에 설탕포대가 듬뿍 덮여있었다. 세관 신고 명목은 구호물자. 목적지는 북한의 형제국가 쿠바였다. 청천강호의 경우 완전 분해가 어려운 미그기를 실었다는 점에서 적발될 수 있었지, 다른 물자라면 어림도 없었다는 후문이다.
양 위원은 “선박 운송 전에 분해와 위장의 과정을 거친 무기들은 적발하기 매우 어렵다”라며 “적발된 몇몇 사례들은 북한 입장에서 운이 없었을 뿐이다. 대부분 선박 검사는 전수 조사를 생략하고 샘플 조사만 이뤄진다. 이를 잡아내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세 번째는 분산이다. 무기 거래 주체는 북한 당국이 세운 페이퍼컴퍼니(유령회사)다. 하나의 거래 프로젝트에 하나의 페이퍼컴퍼니가 아닌 복수의 페이퍼컴퍼니가 이용된다. 이 역시 위장술이다. 북한은 국제사회의 눈을 피하기 위해 잘게 쪼개진 부품을 하나의 선박에 싣지 않고 복수의 선박으로 나누어 복수의 루트로 운송한다. 이 때문에 운송과 거래 주체 역시 복수가 필요하다. 하나의 거래에 복수의 페이퍼컴퍼니가 가동되는 이유다. 물론 이는 국제 금융거래의 눈을 피하기 위한 술수기도 하다.
무기 밀매의 최대 장점은 기술종속이다. 한 국가에 무기가 들어가면, 오랜 기간 기술 전수와 부품 공급이 이뤄져야 한다. 당장 성사된 계약을 시작으로 지속적으로 돈이 들어온다. ‘한 번 고객은 영원한 고객’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게다가 무기거래 대부분은 고가이면서도 대량구매가 기본이다. 북한 당국이 위험한 무기 밀매를 놓지 않는 이유다.
UN 등 국제기구의 감시와 별개로 현재 국제 상황은 좀 더 북한에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분석이다. 무기밀매 최대 경쟁국이었던 중국은 최근 시진핑 정부가 들어선 후 이 분야에서 슬슬 손을 떼고 있다. 상대적으로 북한이 무기 암거래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