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명적인 불길 현정부로 옮겨붙는다
▲ 김진표 교육부총리가 지난 2003년 경제부총리 재직 당시 외환은행 헐값매각과 관련해 모종의 역할을 했을 것이라는 의혹이 점점 불거지고 있다. | ||
금융 관련 공사에 몸담고 있는 한 고위 임원은 지난 12일 기자에게 이런 탄식을 쏟아냈다. “론스타든, 김재록이든 가장 큰 문제는 재경부 전·현직 관료들을 중심으로 금융권에 형성된 뿌리 깊은 마피아 조직이다. 자기들끼리 서로 거미줄 같은 끈끈한 인맥을 형성해 놓고 서로 끌어주고 밀어주고 한다. 정권이 바뀌어도 이 인맥은 끄떡없다. 대통령도 어쩌지를 못한다. 요즘 나오는 이헌재 사단의 위력은 정말 엄청나다.”
그는 자신이 모시는 사장 역시 이헌재 사단이라고 밝혔다. 김재록 씨와 론스타가 접목되는 지점에는 어김없이 이헌재 사단의 이름들이 줄줄이 거론된다. 그리고 그 주요 인사들의 인맥을 쫓아가다 보면 김진표 부총리 등 현 정부의 실세들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물론 이 전 부총리를 옹호하는 목소리도 상당하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DJ 정권과 현 정부 들어 경제부총리 등 요직을 두루 거쳤으니 그 분과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사람이 얼마나 많겠는가. 또 대한민국에서 학맥이 가장 폭넓다는 경기고 서울대 출신인데 누구 하나 안 걸리겠는가. 한 다리 건너 식으로 따지면 금융계 인사들은 죄다 이헌재 사단이 아니겠는가”라고 항변한다. 일견 이런 항변이 일리 있다는 의견도 많지만, 그렇다고 해도 론스타 게이트 주요 요소요소마다 그의 최측근들이 등장하는 것은 쉽게 넘길 사안은 결코 아니라는 평이 지배적이다.
지금과 같은 파장을 미처 예상치 못했던 지난해 9월 이미 ‘투기자본감시센터’라는 한 시민단체에서는 당시 김진표 부총리, 변양호 전 재경부 금융정책국장, 김석동 전 금감위 경제정책국장, 이강원 전 외환은행장, 이달용 전 부행장, 이정재 전 금감위원장, 스티븐 리 론스타코리아 회장 등 관련인사 20명을 검찰에 고발했다.
‘한미FTA저지범국민운동본부’는 이 전 부총리와 김 부총리, 이 전 행장, 변 전 국장, 김 전 국장, 정문수 청와대 경제보좌관 등을 ‘론스타 게이트 6적’으로 선정해 발표하기도 했다. 정태인 전 청와대 경제비서관은 얼마 전 한 인터뷰에서 “외환은행 불법 매각 건은 이헌재 사단 작품”이라고 일갈했다.
검찰 수사와 감사원 조사 결과는 공교롭게도 시민단체들이 주장했던 내용과 거의 흡사하게 돌아가고 있다. 론스타 매각과 관련, 외환은행의 핵심 실무 3인방으로 이 전 행장과 이 전 부행장, 그리고 전용준 전 상무가 집중 수사를 받고 있다.
이 전 행장은 매각협상이 완료된 2003년 9월 기자들에게 “론스타가 금융 투자자라곤 하지만 기업 가치가 오르지 않고는 이익을 낼 수 없으므로 전략적 투자자나 마찬가지”라며 론스타의 편을 들었다. 당시 그는 “론스타는 장기적 관점에서 외환은행에 투자하는 것”이라고 밝혔지만 결과적으로 그의 말은 틀린 셈이 됐다.
▲ 역삼동 스타타워 30층에 론스타 자회사 두 곳이 있다. | ||
이 전 행장은 학맥으로 이헌재 전 부총리와 연결된다. 이 전 부총리의 광주서중 후배다. 그는 이헌재 사단으로 꼽힌다. 그는 외환은행 매각 태스크포스팀장을 맡았던 핵심 인물인 전용준 전 상무의 서울고 선배로 그를 중용했다. 이달용 전 부행장 또한 2002년 하나은행 상무로 있던 것을 외환은행 부행장으로 그가 발탁했다. 이들은 당시 외환은행을 좌지우지한 ‘3인방’이었다.
이 전 행장과 함께 2003년 7월 ‘10인 비밀회의’에 참여해 론스타 매각을 사실상 주도했던 변 전 국장과 김 전 국장도 금융계에서는 확실한 ‘이헌재 사단’으로 통한다.
변 전 국장은 외환은행을 론스타에 매각할 당시 재경부에서 금융정책을 총괄하는 금융정책국장으로 있으면서 금감위에 론스타에 대한 대주주 자격을 승인해 달라는 협조공문을 보낸 장본인이다. 변 전 국장과 ‘호형호제’할 정도로 아주 절친한 사이로 알려진 김 전 국장은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자격을 승인한 금감위의 실무국장이었다. 그는 이 전 부총리의 경기고-서울대 후배로 99년 5월 재경부에서 금감위로 옮겨오면서 당시 금감원장이었던 이 전 부총리의 눈에 들어 사단의 멤버가 됐다.
당시 이영회 전 수출입은행장의 역할설도 모락모락 피어나고 있다. 수출입은행은 당시 외환은행의 대주주였기 때문에 론스타 매각과 무관할 수만은 없는 입장이다. 이 전 행장 역시 이헌재 사단으로 통한다. 재경부 기획관리실장 출신으로 재경부 시절 이 전 부총리의 측근으로 활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진념 전 부총리와도 상당히 친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금융계에서는 2001년 그가 재경부 실장에서 수출입은행장으로 발탁된 데에도 당시 경제부총리였던 진 전 부총리의 역할이 컸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처럼 론스타 관련 핵심 인사들을 살펴보면 이 전 부총리 못지않게 진 전 부총리와도 자주 교차된다. 이 전 부총리가 론스타 법률 자문 김앤장의 고문이었던 것처럼 진 전 부총리는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할 당시 론스타 회계법인인 삼정회계법인의 고문이었다. 진 전 부총리는 이 전 부총리의 서울대 3년 선배로 DJ정권의 경제 정책을 담당한 양대 축이었다.
이들 두 전직 부총리보다 앞서 DJ정권에서 재경부 장관을 지낸 강봉균 열린우리당 의원은 당초 브로커 김재록 씨와의 인연으로 구설수에 오른 케이스였다. 김 씨의 주선으로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 참관했고 자녀가 김 씨의 회사에 근무한 전력이 그것. 그런데 그에게도 론스타 관련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민주노동당의 심상정 의원은 “지난해 외환은행 문서 검증 작업 당시 아무런 이해관계도 없는 강 의원이 유독 론스타를 감싸고 도는 것이 이상했다”며 “강 의원 등 여당에서는 당시 끝까지 론스타의 검찰 조사를 반대했다”고 밝혔다.
김 씨와 론스타 관련 인맥이 점차 현 정부 실세로 접근해오면서 급기야 김진표 부총리가 언급되기 시작했다. 감사원은 지난 14일 “당시 재경부 당국자들이 론스타 매각에 깊숙이 관여한 정황이 포착됐다”고 밝혔다. 변 전 국장 선에서 끝날 것이 아니라 그의 직속 지휘체계에 있었던 김 부총리에 대한 조사가 불가피하다는 얘기도 처음 나왔다.
김 부총리 측은 “당시 외환은행 관련 일은 실무자인 변 전 국장이 주도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지만 최근 그가 2003년 당시 론스타와 관련해서 언급한 내용이 알려지면서 궁색한 입장이 되고 있다. 그는 외환은행의 론스타 매각 성사가 확정되지 않은 2003년 7월 22일 한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외환은행 정부 지분을 론스타에 매각할 용의가 있다”고 론스타를 언급했고 그로부터 사흘 후 실제로 외환은행에 의해 론스타가 외자유치 협상자로 발표됐다. 김 부총리는 스스로 “김 씨와 자주 만난 적이 있다”고도 밝혔다.
정치권에서는 수사의 초점이 김 부총리에 옮겨지는 그 순간부터 현 정부와 검찰의 또 한 번의 숨 막히는 긴장 관계가 조성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검찰이 상당히 부담을 느낄 것이란 얘기도 나오고 있다. 이런 분위기를 감지했음인지 이번 사태를 시종일관 예의주시해온 범국민운동본부 등 시민단체에서는 “검찰 수사가 이 전 행장 등 3명의 사법처리로 흐지부지 마무리되려는 움직임을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감명국 기자 km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