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침묵도 직무유기입니다’
▲ 김영삼 전 대통령(왼쪽)과 최규하 전 대통령의 답신. 납북자문제에 대해 나름대로의 노력을 기울였음을 적고 있다. | ||
일본 정부가 자국민 납북자 신원 확인을 위해 한국인 납북자 가족의 DNA를 검사하는 등 수년간 열의를 보였던 것으로 드러나면서 그간 납북자 송환 문제에 소극적으로 대응해온 정부에 대한 여론의 비판도 거세게 일고 있다.
공식적으로 집계된 납북자 수는 현재 483명. 그러나 아직도 정부는 납북자송환문제에 대해 구체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전직 대통령들은 납북자송환문제에 대해 어떠한 생각을 갖고 있었고, 어떠한 조치를 취했을까?
납북자가족모임의 최성용 대표는 지난 2월 역대 대통령 3명(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 제외)과 박정희 정권 시절 국무총리 등을 지낸 김종필 씨에게 납북자송환문제에 대한 직무 유기를 항의하는 내용의 증명서를 보내고 답변을 요구했다. <일요신문>이 단독 입수한 두 명의 대통령의 답변 서신을 공개한다.
최 대표가 답변을 요구한 역대 대통령들 중 가장 먼저 답신이 온 것은 외부와의 접촉을 가급적 삼가고 지내는 최규하 전 대통령으로부터였다.
최 대표는 최 전 대통령에게 보낸 내용 증명서에서 재임 시절 납북자 송환을 위해 어떠한 노력과 협상을 했고, 북한과의 비밀 협상을 가졌는지 등을 구체적으로 질의했다.
최 전 대통령은 최흥순 비서관을 통해 보낸 답변서에서 “너무 돌출적이고, 무례한 항의성 질문인 데다 기억에도 희미한 20여 년 전 일을 되살리면서까지 꼭 답변을 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인가 주저했다”면서도 최 대표의 질문에 답했다. 최 전 대통령은 답변서 말미에 본인의 직인을 찍어 보내는 등 최대한의 성의를 표시했다.
▲ 최규하 전 대통령(왼쪽), 김영삼 전 대통령 | ||
최 전 대통령은 “남북총리회담 절차 문제를 토의하기 위해 남북 실무 대표 3차 접촉이 판문점에서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 납북 어부의 조기 송환을 요구했으나 북한 측이 ‘관계기관서 조사 중’이라고만 대답했다”고 전했다.
북한과 비밀협상을 통해 확보된 납북자 정보는 없다고 못 박은 최 전 대통령은 납북자를 위해 특별한 지원책을 강구했느냐는 물음에 “납북자 가족이라고 적시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이 80년 1월 18일 연두기자회견에서 내놓은 영세민 생계 안정 대책에는 납북자 가족이 포함됐다”고 밝혔다. 최 전 대통령은 귀환납북자지원법과 납북가족특별법 제정에 대해서는 “반대할 이유가 없다”며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김영삼 전 대통령도 답장을 보냈다. 최 대표는 김 전 대통령에게 보낸 내용 증명서에서 비전향 장기수 이인모 씨를 북송시킨 반면, 납북자송환 문제에 대해서는 소홀히 대응한 책임을 강하게 따져 물었다.
이에 김 전 대통령은 “문민정부 초기 비전향장기수 이인모 씨가 죽음에 임박하였다고 하여 인도적 차원에서 송환했던 것”라며 “이는 이산, 납북 가족 문제의 인도적 해결 등 남북 관계를 전반적으로 새롭게 변화시키기 위한 계기를 마련하고자 하는 고도의 정치적 판단에 의해 이뤄졌던 것”이라고 답했다. 김 전 대통령은 “그러나 북한의 무모한 핵 도발과 ‘서울 불바다’ 협박 등으로 전혀 대화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김 전 대통령은 “지난 2000년 이후 매년 두 차례 일본의 와세다대학과 게이오 대학, 도지샤 대학, 규슈 대학, 그리고 대만과 중국의 여러 대학 등에서 납북자 문제를 집중적으로 제기해왔으며 2003년 6월에는 일본인 납북자와 일본인 국회의원, 황장엽 씨를 상도동 집으로 초청하여 정부에 대한 대책 수립을 강력히 촉구했다”고 전했다.
김 전 대통령은 “이것이 계기가 되어 납북 가족의 실제적 통계와 근황이 언론에 보도되기 시작했다”고 답했다.
최 대표는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지난 2000년 9월 비전향장기수 63명을 북한으로 돌려보낸 다음날 정부가 납북자 가족 명단을 발표하며 재임 기간 중 납북자 문제를 반드시 해결하겠다고 약속한 부분과 평양 방문 목적에 대한 질의서를 보냈으나 아직 답장을 받지 못했다. 최 대표는 박정희 전 대통령 재임 시절 국무총리를 지낸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에게도 내용 증명서를 보냈으나 묵묵부답이라고 전했다.
유재영 기자 elegan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