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0만원만…악마의 유혹에 빠진 범생이 가장
두 명의 초등학교 1학년 여자아이를 유괴한 범인의 협박내용이었다. 철없는 일곱 살짜리 꼬마 두 명을 유괴했다면 아마도 아이들은 살아나기 힘들 것 같았다. 그 며칠 전 여대생을 납치하고 몸값 1억 원을 요구한 범인들이 있었다. 범인들은 돈을 받고 나서 바로 그 대학생을 살해했다. 증거를 없애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인질들이 죽는 게 유괴사건의 운명이었다. 시사프로그램 진행자는 꼬마들이 갇혀 있던 음습한 폐가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흥분했다.
다음날 나와 친한 임석근 목사가 한 사람을 데리고 사무실을 찾아왔다. 임 목사는 감옥에서 출소한 사람을 보호하는 시설을 운영하고 있었다. 십여 년 전부터 임 목사는 나의 단골 의뢰인이기도 했다. 임 목사는 같이 온 사십대 남자를 소개시켰다. 개척교회 목사인데 처남이 유괴사건의 범인이라고 했다.
“유괴범을 변호해 보지 않을래요? 어제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방송했는데….”
나는 TV 화면에서 본 어둡고 칙칙한 장면이 떠올랐다.
“글쎄, 변호할 거리가 있을까요? 별 효과가 없을 텐데….”
내가 중형이 선고될 걸 예상하면서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가족들도 얼마나 나쁜 짓을 했는지 잘 압니다. 용서해달라고 하는 것도 아니고 형을 깎아달라는 얘기도 아니죠. 그래도 가족 입장에서는 변호사를 대 주고 싶은 거죠.”
옆에 있던 범인의 매형이 되는 사람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2003년 7월 9일 오후 3시. 오전부터 장맛비가 추적거리며 내리고 있었다. 성동구치소의 대지 여기저기에는 비에 후줄근하게 젖은 건물들이 낮게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교도소 오른쪽 제일 끝 망대 근처에 있는 낡은 건물이 변호사 접견실이었다. 넓은 방 안은 변호사와 재소자들로 웅성거렸다.
한 변호사가 앞에 있는 재소자에게 구해온 수사기록을 웅얼거리며 읽어주는 소리가 들렸다. 정말 수사관 앞에서 그런 말을 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그러는 것 같았다.
“아, 그거야 수사관님이 마음대로 쓴 거죠. 난 안 했어요.”
넓적한 얼굴에 들창코가 바짝 달라붙은 남자가 대답하고 있었다. 뒤에서 또 다른 재소자의 불평소리가 들렸다.
“오후부터 밤까지 여덟 시간이나 꼬박 조사를 받았다니까요.”
한 공간 안에서 수십 명의 떠드는 소리가 공중에서 막 엉겨붙어 소음을 만들었다. 그때 누런색 재소자복을 입은 남자가 나타났다. 내가 만나러 온 유괴범이었다. 삼십대쯤인 그는 갈색의 뿔테안경을 쓴 선이 고운 남자였다. 그늘진 하얀 얼굴이었다. 그가 조심스럽게 내 앞에 마주앉았다. 그가 주먹으로 입을 막으면서 몇 번 얕은 기침을 했다.
“어디 아파요?”
내가 물었다.
“예, 폐결핵 증세가 있습니다.”
그가 기침을 진정시키면서 말했다.
“매형 박 목사님이 변호를 부탁해서 왔는데 초등학교 1학년 여자 꼬마아이 둘을 유괴한 게 맞나요?”
내가 수첩을 꺼내들면서 말했다.
“다 맞습니다. 뭐 제가 할 말이 있나요? 아이들 부모님한테 사과 편지를 썼는데 주소를 몰라서 아직 부치지 못했어요. 그분들한테 죄송할 뿐이지 특별히 할 말이 없네요.”
그가 고개를 숙이면서 대답했다. 부드럽고 낮은 목소리였다.
그가 다시 쿨럭거리며 기침을 했다. 가슴이 아픈 것 같았다.
“왜 이런 일을 했는지 말해 줄 수 있어요?”
내가 물었다. 그가 담담하게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대학 3학년 때 등록금이 없어 휴학하고 홈페이지 제작을 하면서 먹고 살았어요. 일이 없어지면서 카드대출로 연명했죠. 그러다가….”
그렇게 그의 얘기는 시작됐다.
2003년 6월 26일 12시. 오양욱은 의정부 아파트 주차장에 세워뒀던 아내의 아반떼 승용차를 몰고 나와 거리를 방황하고 있었다. 카드회사에서는 끊임없이 돈을 갚으라고 닦달을 했다. 피가 마를 지경이었다. 아내가 보증인이었다. 카드회사에서는 아내에게 곧 법집행을 하겠다고 위협했다.
‘3000만 원만 있으면 모든 게 해결 될 텐데.’
그는 간절히 기원했다. 이제 삶의 막다른 골목이었다. 더 이상 어떻게 해볼 방법이 없었다. 지난밤 그는 신문에서 본 유괴사건이 자꾸만 떠올랐다. 한탕만 성공하면 모든 게 해결될 것 같았다. 유괴범이 되기로 결심했다. 그는 문방구에 가서 청색 테이프와 포장용 끈을 샀다. 유괴한 아이를 묶으려면 필요할 것 같았다. 순간 그는 유괴한 아이가 울면 달래야 할 것 같았다. 그는 이벤트 상점을 찾아 들어갔다. 거기서 반짝이는 헬륨풍선, 고깔모자, 만지면 ‘삑’ 하고 소리가 나는 딸기코, 빨갛고 노란 염색가발도 샀다.
그때였다. 아파트 놀이터에 꼬마 여자아이 두 명이 보였다. 한 아이는 흰색 반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통통했다. 다른 아이는 눈이 반짝이는 게 똘똘해 보였다. 더 이상 범행을 망설일 수가 없었다. 이런 기회도 다시 오기 힘들 것 같았다. 그가 창문을 내리고 아이들에게 말했다.
“꼬마야! 상원초등학교가 어디니?”
그 말에 흰 반바지를 입은 아이가 대답했다.
“그런 학교 없어, 아저씨. 상원이 아니고 상월초등학교야.”
“똑똑하구나. 꼬마야, 너 학교 다니니?”
그가 웃으면서 물었다.
“우리 둘 다 상월초등학교 1학년이야.”
반바지를 입은 꼬마가 말했다.
“아저씨가 처음이라 그러는데 다시 데려다주게 학교 가는 길 좀 알려줄래?”
“우리 엄마가 모르는 아저씨 차 타지 말라고 그랬는데.”
흰 반바지를 입은 꼬마가 망설였다.
“맞아, 우리 엄마도 그랬다.”
똘똘한 꼬마도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니야, 너희들 엄마가 아시면 착한 일 했다고 칭찬하실 거야. 아저씨가 엄마한테 나중에 얘기해 줄게.”
“정말?”
반바지 입은 꼬마가 말했다.
“그럼.”
“알았어.”
아이들 둘은 아무 의심 없이 아반떼 승용차에 올라탔다. 그는 아파트 단지 안을 돌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자기네끼리 뒷좌석에서 놀면서 왜 차에 탔는지도 금세 잊어버렸다. 잠시 후 아이들은 잠이 들어버렸다. 순한 꼬마들이었다.
그는 운천의 가수면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어려서 살던 고향집이 아직도 폐가가 되어 남아 있었다. 한 시간 후 그는 고향집 앞마당에 도착했다. 허리까지 올라오는 잡풀들이 무성했다. 시계가 어느새 5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꼬마들이 잠에서 깼다. 아이들은 차창을 통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보다가 갑자기 시무룩해졌다. 겁먹은 눈망울들이었다.
“엄마가 다섯 시까지 들어오랬는데.”
흰 반바지를 입은 꼬마가 칭얼거렸다. 옆에 있던 꼬마도 겁을 먹고 울먹거렸다. 그가 아이들을 달래기 시작했다.
“아저씨가 미안해. 도중에 길을 잃어 버렸어. 엄마 만나서 대신 야단맞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 착하지. 엄마 아빠한테 전화 걸어서 이리 오시라고 아저씨가 전화할게. 이름하고 엄마 전화번호를 아저씨한테 알려줄래?”
그 말을 듣고 흰 반바지를 입은 꼬마가 대답했다.
“내 이름은 김연지구 엄마 전화번호는 011△△△1906이야.”
옆에 있던 똘똘이도 이어서 말했다.
“내 이름은 황수민, 엄마 전화번호는 011△△△9253이야.”
“알았어, 아저씨가 연락해서 엄마 오라고 할게.”
그는 공중전화로 부모들에게 전화를 걸려고 마음먹었다. 위치추적을 피하기 위해서는 몇 초 이상 사용하면 안 될 것 같았다. 영화를 보면 이런 범죄는 경찰들과 범인의 숨바꼭질이었다.
우선 아이들을 묶어 두어야 했다. 그는 운전석 옆 박스에서 청색 테이프를 꺼내들고 먼저 연지에게 말했다.
“손깍지를 끼고 팔을 앞으로 내밀어봐.”
연지가 시키는 대로 했다. 그가 청색 테이프로 양손을 묶으려는 순간 옆에 있던 수민이가 소리쳤다.
“아저씨, 지금 뭐 하는 거야? 싫어.”
그 말을 듣자 연지도 팔을 도로 빼면서 말했다.
“나도 안 해!”
아이들의 얼굴에 불안이 번졌다. 순간 수민이가 뭔가 느꼈는지 차의 뒷문을 열고 밖으로 도망쳤다. 지연이도 그 뒤를 따랐다. 그가 황급히 도망치는 아이들을 따라가 붙잡았다.
“아저씨, 나 집에 가고 싶어요.”
수민이가 손을 비비면서 사정했다. 그는 순간 마음이 흔들렸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아이들을 아파트 놀이터에 데려다 놓으면 모든 게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정말 범죄를 저지르고 싶지 않았다.
“그래 돌아가자. 아저씨가 데려다 줄게.”
그는 아이들을 태우고 운천을 빠져나왔다. 그가 동네 슈퍼 앞에서 차를 멈췄다. 아이들을 데리고 들어갔다.
“너희들 먹고 싶은 걸 골라.”
그가 말했다. 아이들은 진열대 안에서 초콜릿 과자와 콜라를 집어 들었다. 다시 차에 탄 아이들은 기분이 풀렸는지 장난을 하면서 놀기 시작했다. 서울의 경계선으로 그가 모는 차가 들어섰다. 그는 다시 마음이 흔들렸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시는 돈을 구할 수 없을지 몰라.’
악마의 속삭임이 귀에 들려왔다. 벌써 밤 10시가 가까웠다. 그는 노원역 근처의 공중전화 옆에 차를 세웠다. 아이들이 다시 잠에 골아 떨어졌다. 그는 아이들을 깨우면서 말했다.
“엄마가 걱정하실 테니까 왜 늦었는지 말씀드리자.”
아이들이 눈을 부비면서 그를 따라 차에서 나왔다.
그가 연지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이들은 아직 안전합니다. 1만 원짜리 지폐 3000장을 내일 아침까지 마련하시죠.”
그는 바로 연지의 입에 송수화기를 대 주었다.
“엄마, 어떤 아저씨가 길을 잃었다고 해서 내가 길을 알려주느라고 늦었거든.”
그는 아이의 입에서 송수화기를 뗐다. 전화기 저편에서 연지 엄마의 절규가 실 같은 소리가 되어 흘러나왔다.
“우리 엄마 되게 화났어요, 아저씨.”
연지가 그를 보고 말했다. 그는 다시 차를 돌려 운천을 향했다. 이왕 빼든 칼이었다. 여기서 흔들릴 수는 없었다. 아이들이 칭얼거리면 아예 꽁꽁 묶어서 포대자루에 넣어 트렁크에 처넣어야 할 것 같았다. 공범이 되어 함께 일을 할 사람도 없는 상황이었다.
(계속)
엄상익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