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받은 법원 ‘국과수 부를까’
▲ 김홍수 씨에게 억대 금품을 받고 재판에 개입한 혐의로 구속된 조관행 전 부장판사는 “김 씨의 다이어리 내용만 갖고 이럴 수 있느냐”며 반발하고 있다. 연합뉴스 | ||
2라운드의 핵심은 ‘법조브로커’ 김홍수 씨가 작성했다는 다이어리, 이른바 ‘살생부’의 실체에 쏠리고 있다. 이 살생부는 검찰이 이번 수사에서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 중인 수사 단서다. 김 씨의 살생부를 근거로 조 전 부장판사도 잡아넣었다. 그런데 최근 법조계 주변에선 이 살생부의 진위가 의심스럽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김 씨가 증거물 조작을 했다는 의혹 제기가 그것. 일각에선 검찰 인사들은 별로 언급되지 않은 채 현직 판사들만 줄줄이 거론되는 것에 대해서도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검찰 내에서는 8월 안으로 법조비리 수사는 마무리될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사실상 수사 대상자는 10명 선에서 종결되는 셈이다. 추가 혐의자 7~8명에는 K 대법원 재판연구관 등 현직 판사 3명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변호사 2~3명과 경찰 및 금감원 간부가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역시 법원에 또 한 번 회오리가 일 전망이다.
이들 10여 명을 수사 대상자로 삼은 것은 모두 김 씨가 작성했다는 다이어리를 근거로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소위 말하는 살생부란 바로 이 다이어리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러자 법원 등 법조계 일각에서는 김 씨 진술의 신빙성 문제와 함께 다이어리 조작설이 제기되고 있다. 검찰 인사들은 별로 언급되지 않은 채 현직 판사들만 자꾸 거론되고 있는 점에 석연찮은 시선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검찰 내부에서도 “김 씨의 다이어리가 급조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가 나와 관심을 끈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김 씨의 다이어리를 보면 여러 날에 걸쳐 그때그때 작성됐다기보다는 어느 한순간에 죽 적은 듯한 흔적이 짙다. 어차피 한 사람이 쓴 거라 하더라도 필기구가 모두 동일하고 글체도 똑같다”고 밝혔다.
검찰이 문제의 다이어리를 확보한 것은 지난 5월이다. 검찰이 압수한 것이 아니라 김 씨가 수사 과정에서 자발적으로 다이어리를 검찰에 건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다이어리는 2005년 것으로 그해 1월부터 김 씨가 수감되기 직전인 7월까지의 내용이 적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이어리는 말 그대로 일기식으로 김 씨가 그날그날의 주요 행사와 일정을 꼼꼼히 적은 것. 여기에 금품제공 내역이 일부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이 다이어리에 언급된 구체적인 내용은 김 씨의 진술을 통해서 지난 5월부터 수사에 착수했고, 대부분의 인사들은 조사를 마친 상태”라고 밝혔다. 그 명단은 10여 명이 조금 넘는 수준이라는 것.
김 씨의 다이어리에 이름이 오른 인물들이 얼마 전에 구속된 조 전 판사 등 3명을 포함해서 모두 14명이라는 얘기도 있고, 그 이상이라는 얘기도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정확한 숫자와 내용에 대해서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검찰 수사에 대해서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사람들은 다이어리 내용의 구체적 공개와 함께 거기에 적힌 80명의 명단에 대해서도 조사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여기에 검사와 수사관 등 검찰 쪽 인사들의 이름이 절반 가까이 올라와 있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특히 검사 가운데 현직 검사장과 부장검사 등 고위 인사들의 이름이 상당수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법원 주변에선 검찰이 ‘자기 식구 보호’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평소 자신의 금품제공 내역을 다이어리에 꼼꼼히 기록할 정도로 세심한 성격의 김 씨가 유독 2005년 다이어리만 검찰에 제공한 것도 이상한 대목이다. 2004년 이전의 일기도 있을 것이라는 추정은 충분히 가능한 셈이다. 이에 대해 김 씨는 “2004년 이전 일기는 모두 폐기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목되는 점은 현재 이 다이어리의 진위 법정 공방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당초 이번 법조비리의 단초를 제공했던 여당 모 국회의원 보좌관 K 씨(구속)의 ‘하이닉스 주식 불법거래 관련 청탁 사건’에 대한 재판이 현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고 있다. 돈을 건넸다는 김 씨와 이를 부인하는 K 씨의 공방이 한창이다.
K 씨 측은 “김 씨가 동일한 필기구로 수정도 없이 금품거래 내용을 기록해놓은 점, 다른 금품 제공은 별다른 내용이 없으면서도 유독 K 씨에 대한 내용만 상세하게 기록된 점 등을 볼 때 특정한 목적으로 증거물이 조작됐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며 국과수 감정 의뢰를 요구하고 나섰다.
재판부 역시 김 씨에게 다이어리의 신빙성에 대해서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고 있는 모습이다. 구속 수감된 조 전 판사 역시 “김 씨가 쓴 다이어리 내용만 갖고 이럴 수가 있느냐”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이 재판 과정이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검찰이 전가의 보도처럼 내세우는 다이어리의 실체에 대해 법원이 그 진위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감명국 기자 km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