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들의 ‘실탄 창고’ 역할 톡톡
특히 경품용 상품권 발행 1위 업체가 재계순위 38위 태광그룹의 계열사며 2위 업체가 삼성·중앙일보 총수일가의 친인척이 최대주주인 보광그룹 계열사란 점이 논란이 되고 있다. 이 업체들은 상품권 발행업체로 선정된 시점 이후 막대한 수입을 올린 것은 물론 최대주주와 핵심계열사를 위한 실탄 창고 역할까지 해준 것으로 드러나 파문이 예상된다. 검찰도 이들 업체의 로비 여부 등에 대한 전면 수사에 착수한 상태다.
한국도서보급은 지난해 8월 1일 경품용 상품권 발행업체 지정 이후 4조 5450억 원 상당의 도서문화상품권을 발행해 상품권 판매규모 1위에 올라선 기업이다. 상품권 업계 최강자로 선 한국도서보급은 태광그룹의 계열사다. 태광의 이호진 회장이 지분 50%, 이 회장의 외아들이 45%를 보유해 태광 총수부자가 95%의 지분을 독식하고 있는 가족기업이다.
한국도서보급은 지난해 순이익 71억 3300만 원 흑자를 기록했다. 그러나 상품권 사업 시작 직전인 2004년엔 3억 4400만 원 적자를 냈다. 1년 만에 무려 20배 이상 이익을 늘린 셈이다.
태광은 최근 들어 방송사업자 영역을 크게 확대하고 있다. 원래 몇 개의 지역 유선방송사를 갖고 있던 태광은 지난 2004년부터 본격적으로 방송사업자로서의 몸집불리기에 들어갔다. 2004년 1월 한 달에만 안성유선방송사와 이천유선방송사를 비롯한 12개 지역 방송사를 계열사로 편입시켰다. 이는 한국도서보급을 인수한 시점과도 동일하다. 그 이후로도 현재까지 9개 지역 유선방송사를 흡수했다. 2004년 이전에 갖고 있던 8개 회사까지 합하면 총 29개의 지역 유선방송사를 거느린 방송재벌로 거듭난 셈이다.
이는 태광의 재벌로서의 외형적 입지를 굳혀주는 계기도 됐다. 29개 방송사의 주인이 된 태광산업은 올 4월 자산관리공사가 발표한 기업순위 38위에 오르기도 했다(공기업과 민영화된 공기업 제외).
그렇다면 태광의 유선방송업계 문어발식 확장 경영을 가능케 한 원동력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그 해답 중 하나를 상품권 발행 업체인 한국도서보급에서 찾을 수 있다.
한국도서보급은 상품권 사업자 지정 이후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은 지난해 8월 26일 태광 계열인 수원네트워크에 연 이자율 7%로 129억 원을 대여한다. 수원네트워크는 같은 해 12월 16일 한국도서보급으로부터 335억 원을 재차 대출받는다. 6개월 사이 총 464억 원을 긴급수혈 받은 셈이다. 그리고 올 3월 28일 전주반도유선방송이 120억 원, 태광시스템즈가 18억 원을 각각 한국도서보급으로부터 연 이자율 7%로 대출받았다.
상품권 사업자 지정 이후 효자계열사로 거듭난 한국도서보급의 그룹에 대한 애정공세는 계열사 지원을 위한 실탄 창고 역할에 그치지 않았다. 올 1월 6일엔 이호진 회장이 한국도서보급으로부터 자금운용 목적으로 연 이자율 9%로 11억 원을 대출받았다. 올 1월은 태광이 금융업을 통한 몸집불리기에도 적극 나선 시점이기도 하다. 태광은 1월 10일 쌍용화재의 유상증자에 참여해 900만 주를 사들이는 데 657억 원을 쏟았다. 1월 20일엔 피데스증권중개(현 흥국증권중개) 지분 전량을 30억 원에 사들여 계열사로 편입시켰다. 이호진 회장이 한국도서보급에서 돈을 끌어온 이후 발생한 일들이란 점에서 연관성이 엿보인다.
▲ (왼쪽부터) 태광 이호진 회장, 보광 홍석규 회장, 다음 이재웅 대표 | ||
한국도서보급이 ‘도서 보급’에만 매달린 게 아니라 도박사업에 참여해 현금을 벌어들여 태광의 계열사 ‘보급’ 지원에 나선 셈이다.
지난해 8월 1일 경품용 상품권 사업자 지정 이후 4조 4220억 원 상당의 상품권을 발행해 상품권 판매 순위 2위에 올라선 한국문화진흥도 재계인사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한국문화진흥의 최대주주는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 부인 홍라희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과 홍석현 전 주미대사의 형제들이다. 홍씨 일가 4남인 홍석규 보광그룹 회장이 한국문화진흥 지분 26%을 보유한 최대주주이며 차남인 홍석조 전 광주지검장과 차녀인 홍라영 삼성문화재단 상무가 각각 10.5%를 보유하고 있고 3남인 홍석준 삼성 SDI 부사장도 5%를 갖고 있다.
한국문화진흥은 삼성이나 보광의 계열사는 아니다. 그러나 홍석규 보광 회장과 이상진 전 삼성생명·삼성캐피탈 상무가 한국문화진흥의 공동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한국문화진흥은 지난 2004년 당기순이익 28억 8500만 원 적자를 기록했으나 지난해 33억 6700만원의 당기순이익 흑자를 올렸다. 1년 만에 45억 원가량의 이익 개선에 성공한 셈이다.
한국문화진흥 또한 태광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계열사에 대한 ‘돈 꿔주기’를 해왔다. 신문 인쇄 전문업체인 한국신문제작이 그 대상이었다. 한국문회진흥은 한국신문제작 지분 38.92%을 보유한 최대주주다.
한국문화진흥은 지난 5월에 21억 원, 6월에 10억 7500만 원을 연 이율 9%로 한국신문제작에 대여했다. 두 달 사이 이뤄진 31억 7500만 원 대여에 대한 대출목적은 ‘운영자금 대여’라고 공시돼 있다.
한국문화진흥의 상품권 사업자 지정 이전 시점에 이뤄진 대출까지 합하면 한국신문제작이 운영자금 충당 목적으로 한국문화진흥으로부터 ‘꿔 온’ 돈은 총 78억 2000만 원에 이른다. 한국문화진흥은 한국신문제작의 정상적 운영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실탄 보유고 역할을 맡아온 셈이다.
지난해 8월 29일 상품권 사업자 지정 이후 1조 8230억 원 상당의 상품권을 발행한 다음커머스는 이재웅 다음커뮤니케이션 대표에게 효자노릇을 해온 듯하다.
다음커머스는 상품권 사업자로 선정되고 나서 9개월 후인 지난 5월 다음커뮤니케이션에서 분사됐다. 그러나 최대주주는 여전히 이재웅 대표다. 다음커머스가 올 상반기에 올린 순이익은 16억 원에 이른다. 다음커뮤니케이션의 올 상반기 순이익이 40억 원임을 감안하면 다음커머스를 이재웅 대표의 주 수입원 중 하나로 봐도 무리가 없다.
다음커머스는 올 6월 재상장됐는데 당시 이 대표 지분은 17.38%였다. 이 대표는 이후로도 다음커머스 지분을 꾸준히 늘려 현재 지분율 18.09%에 이르고 있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