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대희 대검 중수부장 | ||
안부장의 변신은 이미 LG와 롯데 같은 재벌총수들을 입건하지 않겠다고 밝힌 데서부터 점쳐 졌다. 총수가 대선자금 전달에 개입했다는 증거가 없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안 부장은 이미 총선 전 여러 차례 재벌 비리의 본류인 비자금 수사를 하겠다고 밝힌 바 있었다.
검찰은 총선 후인 지난 5월6일 부당 내부거래행위로 400억원 가량의 개인적 이익을 챙긴 동부그룹 김준기 회장을 불구속하겠다고 밝혔다. 부당이익을 원상회복했다는 이유였다. 안 부장은 총선 전 동부, 부영은 기업 본질의 혐의가 무거워 총선 후에도 계속 수사하겠다고 여러차례 밝혔다.
특히 검찰은 기업 비자금 조성 및 탈세혐의로 부영 이중근 회장을 구속기소했기 때문에 형평성 논란을 샀다. 게다가 검찰은 삼성 현대차의 비자금 수사를 마무리하고 있다. 삼성과 현대차는 한국기업의 간판스타로 수사시 경제에 타격이 크다는 논리다. 검찰은 특히 현대차와 삼성의 후계자 구도나 비자금 조성같은 부분을 크게 문제삼지 않겠다는 분위기다.
또 대검은 지난 대선 당시 한나라당에 입당한 이른바 입당파 의원 9명을 소환조사한 뒤 사법처리하겠다고 하면서도 정작 2억원을 받은 박근혜 대표에 대해서는 ‘문제없다’고 밝혀 형평성에서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검찰은 박 대표가 받은 돈은 유세지원본부장으로 받은 활동비로 입당파 의원이 받은 돈과는 성격이 다르다고 친절하게 설명했다. 하지만 검찰 내부에서는 박대표가 받은 돈이 2억원보다 더 많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검찰은 공식적으로 “2억원 이상 없다”라고 잘라 말했다.
또 충남 논산에서 법질서를 깔보는 듯한 인상을 주는 자민련 이인제 의원을 체포영장 집행을 하지 않아 그냥 방치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수사팀을 급파했으면 강제로라도 끌고 와야지 정치적 논쟁을 우려해 이를 미루고 있다는 비판을 사고 있다.
이렇다 보니 당연히 검찰이 과거로 회귀하는 것 아니냐는 질타가 나오고 있다. 대한변호사협회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이하 민변)같은 법률가 단체들은 검찰의 봐주기 수사를 지적하고 나섰다. 민변은 특히 재벌총수를 봐준다면서 검찰 수사를 규탄한다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대선자금 수사에 적극 지지해온 언론도 중수부를 비판하기 시작했다.
총선 전 ‘수사가 안 되면 옷을 벗고 변호사를 하겠다’며 수사의지를 다지던 안 부장이 이렇게 돌변한 것에 대해 여러가지 추측이 오가고 있다.
우선 검찰과 힘겨루기 한판 승부를 벌이던 한나라당이 총선에서 패배했기 때문에 ‘주적’이 없어졌기 때문이라는 해석. 지금까지 검찰이 수사에서 가장 신경을 썼던 것은 노무현 대통령이 아닌 한나라당이다. 검찰은 한나라당을 집권 야당이라고 부를 정도로 한나라당의 눈치를 살폈고 형평성 비난을 피하려고 노캠프 대선자금에 수사력을 집중하기도 했다. 따라서 한나라당의 총선 패배는 검찰 수사가 연착륙할 수 있는 든든한 배경이 됐다. 또 하나는 정치권 수사가 마무리되는 시점에서 수사본류인 대선자금 수사가 끝났으니 일종의 피해자인 기업은 관대하게 처리하자는 수뇌부 의견이 반영됐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안 부장이 변한 것은 곧 닥쳐올 검찰 인사 때문이라는 시각이 많다. 안 부장도 이번 5월 검찰간부인사 대상자다. 안부장은 말은 안하지만 검사장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서울중앙지검장을 원하고 있다.
하지만 대검 중수부에 가려 별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서울중앙지검은 대검 중수부처럼 막강한 자리. 오히려 특수부 공안부 형사부 등 진용이 잘 짜여져 수사범위와 파급력이 훨씬 크면 컸지 작은 자리가 아니다. 따라서 일 욕심 많은 안 부장이 이 자리를 노리는 것은 당연하다. 안 부장은 이미 대선자금 수사 브리핑을 하면서 서울중앙지검장을 가고 싶다는 뜻을 잠깐씩 비친 적이 있다.
하지만 집권층에서 보면 안 부장에게 이 자리를 주는 것은 대선자금과 같은 또한번의 홍역을 치르겠다는 말과 같다. 따라서 청와대 등 집권 수뇌부는 이 ‘골치 아픈 싸움꾼’을 관직만 높고 실권은 없는 고검장으로 보낼 것이라는 관측이 파다하다. 그것도 모양새를 갖추기 위해 안 부장의 고향인 부산 고검장으로 거론된다. 안 부장 대신 서울중앙지검장으로 부산 경남 출신 간부가 온다는 것이다. 거기다 인사권을 가지고 있는 강금실 법무장관도 검찰 장악을 놓고 다툼을 벌이고 있는 송광수 총장의 오른팔인 안 부장을 서울중앙지검에 보낼 확률은 낮아 보인다. 안 부장은 2003년 검사장급으로 승진될 때까지 번번이 좌절, 3수를 했던 악몽같은 징크스가 있기는 하다.
어쨌든 송광수 총장은 검찰 간부인사를 최대한 늦추자고 하고 있고 강금실 장관은 탄핵 결정 이후 검찰 인사를 빠르게 단행하겠다는 입장차를 보이고 있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
그러나 강 장관이 진정한 검찰 개혁을 원한다면 안 부장을 고검장으로 보내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만약 강 장관이 안 부장을 고검장으로 보낸다면 지난해 3월 검사와의 대화에서 검사들이 검찰독립을 위해 인사권을 총장에게 달라는 주장이 예언처럼 들어맞은 셈이다. 그때 노대통령은 “성역 없이 수사해라. 그러면 인사는 우리가 한다”라는 취지로 젊은 검사들을 점잖게 타이른 바 있다.
물론 인사로 검찰을 좌우하겠다는 집권층의 의도가 아직 외부의 안테나에 잡힌 적은 없다. 어쩌면 이런 이야기들이 인사권자가 아닌 인사 대상자인 검찰이 지레짐작으로 놀라서 한 말일 수도 있다. 하지만 대선자금 수사로 만신창이가 된 권력층의 은밀한 검찰 길들이가 시도될 위기도 감지된다. 그 리트머스가 안대희 부장의 인사라고 할 수 있다.
박태수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