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의 법칙’ 뒤집는 ‘그들만의 리그’
노 의원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2000∼2005년 지방법원 부장판사급 이상 ‘전관 변호사’가 구속 사건을 맡았을 경우 석방률은 54.4%에 달했다. 이는 수도권 법원 평균(46.5%)보다 7.9%포인트 높은 수치다.
또 전관 변호사가 최종근무지 법원의 구속사건을 수임할 경우 석방률은 56.8%였다. 이에 반해 같은 부장판사급 전관이라 하더라도 최종 근무지 사건이 아니면 석방률은 9%포인트 하락한 47.8%에 그쳤다.
노 의원이 조사한 내용을 살펴보면 일반 변호사의 경우 ‘심리불속행’(형사사건을 제외한 상고사건 가운데 법이 규정한 특정한 사유를 포함하지 않으면 심리를 하지 않고 기각하는 것) 기각률이 40%대인 반면 대법관 출신 변호사는 평균 6.6%에 불과했다. 대법관 출신에 대한 ‘예우’가 존재한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는 통계 수치인 셈이다.
서울 서초동 법조타운에서 10여 년간 법률 사무소를 운영해온 김 아무개 변호사는 전관예우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사실 전관예우 관행이 존재하긴 하지만 이를 딱 끄집어내기는 힘들다. 승소한 쪽과 패소한 쪽이 전관예우라고 인정하는 기준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한 논란이 일 수밖에 없다. 어찌 보면 법조계는 승자와 패자 사이에서 교묘하게 줄타기를 하며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악습’인 전관예우를 사수해 왔다고도 볼 수 있다.”
그는 이어 “전관예우 때문에 재판에서 패소해 보지 않는 사람은 그 억울함을 이해하기 힘들다”며 “전관예우 관행의 가장 큰 문제점은 법률소비자들에게 법이 불공정하게 적용된다는 인식을 심어준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물론 상당수 전관 출신 변호사들은 전관예우가 대부분 사라졌고 언론에서 거론하는 것만큼 심하지 않다고 부인한다. 하지만 국민들의 ‘체감지수’는 이와 사뭇 다른 것 같다.
이런 글들은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전관예우’라고만 치면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고위 법관이나 검사 출신 전관 변호사를 선임해 그 ‘약효’를 본 송사 당사자들이 많기 때문에 ‘전관 변호사’를 찾는 것이다. 무엇보다 심각한 점은 이로 인해 상대적으로 피해를 입는 사람들이 속출하고 있다는 사실.
최근 취재과정에서 만난 A 씨(여·59) 역시 전관예우의 폐해를 주장하고 있었다. A 씨는 “어처구니없는 재판 결과 때문에 엄청난 재산의 손실을 입었고 이로 인해 한 가정이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졌다”며 자신의 경험담을 털어놓았다.
A 씨는 지난 2000년 지방도시 소재의 한 건물을 매입한 뒤 이 건물 전체를 다시 B 씨(54)에게 임대했다. 임대계약 기간은 2년이었다. 문제는 임대계약기간이 끝나면서부터 발생했다. A 씨는 B 씨로부터 계약을 갱신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확인하고 새 계약자와 계약을 맺고 B 씨에게 구 계약서를 돌려달라고 했다.
그러나 B 씨는 바쁘다는 핑계로 구 계약서를 돌려주지 않다가 나중에 이를 교묘하게 이용해 A 씨를 상대로 이중계약과 보증금 횡령 등 여섯 가지 명목으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뒤늦게 이를 안 A 씨는 사건의 진실성이나 계약서에 명시된 기간 등으로 볼 때 절대 패소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고 여유 있게 이에 대처했다. 하지만 이것이 A 씨에겐 불행의 시작이었다. 어처구니없게도 A 씨는 패소했고 B 씨가 청구한 천문학적인 금액을 고스란히 물어내야 할 처지에 몰렸던 것이다.
이에 대해 A 씨는 “재판 과정에서 알게 된 사실인데 당시 B 씨의 변호를 맡았던 변호사가 재판을 진행했던 ○○법원의 부장판사 출신인 데다 담당 재판관이 과거 상대 측 변호사와 함께 근무했던 후배 판사였다”며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나. 재판도 사람이 하는 일인데 이래 가지고 공정한 법의 심판이 나오겠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A 씨에 따르면 B 씨의 변호인은 법복을 벗고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한 지 몇 달도 채 되지 않은 ‘약발’이 확실한 전관이었다고 한다.
S 씨는 자신을 보증인으로 내세운 뒤 돈을 대출받아 잠적한 선배 Y 씨(54)를 2년여에 걸친 추적 끝에 겨우 붙잡아 지난해 민·형사상 소송을 함께 제기했다. S 씨가 검찰이나 재판부에 제출한 소장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Y 씨는 꼼짝없이 피해액을 변상하고 사기와 횡령 등으로 형사처벌을 받아야 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Y 씨가 재판 중 해외로 도주해 버렸기 때문이다.
S 씨는 “천신만고 끝에 찾아낸 가해자를 사법부가 놓아준 셈”이라며 “도주의 우려가 있으면 구속을 시키든지 아니면 최소한 출국금지 정도는 해야 하는 것 아니냐. 재판 중에 사기꾼이 도망치도록 만들어 놓고도 어쩔 수 없었다는 무책임한 말만 하는 게 납득이 안 된다”며 분을 삭이지 못했다.
이어 그는 “당시 내가 선임한 변호사가 ‘Y 씨 측 변호인은 관할 지방법원에서 법복을 벗은 지 넉 달이 조금 지난 사람’이라고 귀띔했다”며 “이를 확인해 보니 사실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Y 씨가 자유의 몸으로 재판받은 걸 전관예우와 연관 짓지 않을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작은 당구장을 운영하던 S 씨는 결국 거액의 빚을 떠안고 신용불량자로 전락했고 가정마저 풍비박산 났다. 아들은 친구 자취집으로, 아내는 친정으로 보내고, 자신은 고시원에서 생활하며 하루하루를 연명하고 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대다수 ‘전관’ 변호사들은 법원이나 검찰의 ‘예우’를 부인하지만 법조계 주변을 둘러보면 제2의 A 씨나 S 씨는 수없이 많다. 사법부에 대한 신뢰를 뒤흔드는 전관예우 관행을 이대로 둘 것인지 아니면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할 것인지 논의가 절실한 시점이다.
윤지환 프리랜서 tangohunt@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