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적다툼에 눈먼 검·경 중독자 키우는 교도소
“정말 더러워서 못 살겠어요. 변호사님 사무실 주변을 지금 7명의 형사들이 포위하고 있어요. 나를 잡아가려고요.”
나는 사무실 밖으로 나가서 살폈다. 30m쯤 떨어진 지점에 낡은 승용차가 정차해 있었고 그 안에 형사 타입의 남자들이 앉아 있었다. 체포영장을 가지고 정식으로 잡는 건 아닌 것 같았다.
“왜 형사들이 저렇게 하고 있죠?”
내가 물었다.
“제가 마약도매상이거든요. 한 번 잡히면서 형사들 사냥개가 됐는데 이번에는 검찰에서 나를 낚아챈 거예요. 그러니 천생 검찰 마약반 정보원이 될 수밖에 없죠. 그러니까 나를 정보원으로 쓰던 형사들이 괘씸하다고 괴롭히는 겁니다.”
그건 일종의 수사기관끼리의 경쟁이었다. 그는 다른 마약 소매상의 밀고로 체포된 후 마약 담당 수사관의 사냥개가 됐다고 고백했다. 인간사냥개가 하는 일은 마약냄새를 맡고 그들을 잡아내는 일이라고 했다. 소매상보다는 도매상을, 그리고 마약공장을 터는 게 공을 세우는 일이라는 것이다. 수사관들의 공명심은 끝이 없다고 했다.
“하도 실적이 없으니까 수사관이 나보고 다른 마약쟁이들하고 같이 주사를 맞으라고 했어요. 함정수사죠.”
갑자기 그가 분노가 치민 표정으로 소리쳤다.
“그런데 담당수사관이 나까지 소변과 모발검사를 하고 잡아넣으려고 하는 거예요. 얼마나 치사한 새끼입니까? 난 검사 결과 한 장만으로 징역2년은 틀림없어요. 그렇다고 판사가 인정이 있겠습니까? 서류 보고 기계적으로 형을 때리죠.”
토사구팽이라는 고사성어가 그대로 적용되는 경우였다. 사냥개로 활용하고 나서 나중에는 쫓거나 잡아먹는 것이다.
“마약수사관이 지금 어떻게 하려고 하죠?”
내가 물었다.
“수사공작 하나를 크게 하라는 거예요. 그게 성공하면 잡아넣지 않겠다고 말이에요. 그래서 제가 검찰의 공작금으로 중국으로 마약을 주문했죠. 중국에서 마약 2㎏이 들어오는 걸 기다리는 중입니다.”
그가 대답했다. 그러면 그는 더 중죄인이 되는 셈이었다.
“누가 운반을 하죠?”
법률사무소를 찾는 의뢰인 중에는 종종 자신도 모르게 이용당했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친척에게 전해달라는 선물 속에 마약덩어리가 섞인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3000만 원만 주면 마약 운반을 하겠다는 조선족이 줄서 있어요. 잡히면 징역 3년을 사는데 받는 돈은 감옥 사는 값이에요. 걸리지만 않으면 수지맞는 거지요.”
“세관에서는 안 걸려요?”
내가 물었다.
“공무원하고 결탁하지 않으면 어떻게 일이 되겠어요. 얼마 전에도 물건 들어오는 날 매수해 놓은 공무원이 파견 나가는 바람에 마약이 못 들어왔어요. 그날을 기다려야 하는 거죠.”
공항이나 항만에는 여러 정부기관의 직원들이 모여 근무를 하고 있다. 청렴한 공무원조차도 로또복권 당첨되듯 거액이면 생각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절대청렴’이란 없다는 얘기였다.
그러나 미끼를 무는 순간 공무원의 운명은 끝이 난다고 했다. 일단 잡은 고기에게 먹을 걸 주는 법은 없었다. 그 이후는 철저한 마약꾼들의 노예가 되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이 마약밀매의 최고 보스죠?”
내가 궁금해서 물었다. 영화나 추리소설 속 마약조직의 보스는 특이한 인물이었다. 재력과 화려함을 갖춘 마피아 두목 같은 타입으로 묘사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대답은 달랐다.
“내가 아는 보스는 겉으로는 무역회사의 중국 출장이 잦은 평범한 직원 정도로 위장하고 있어요. 중국에 가는 명분과 그곳에서의 알리바이를 정교하게 만들어 놓고 있어요. 그래야 의심을 받지 않죠. 마약이 국내에 들어와도 직접 거기 손을 대거나 보관하지 않고 바로 도매상들에게 확 풀어버려요. 또 돈 욕심 때문에 시간을 끌면 안 된다는 것도 알고 신용도 철저해요. 주문받은 도매상들에게 약을 제때에 주지 못하면 선금으로 받은 돈을 정확히 돌려주죠. 저보고도 크려면 그렇게 신용을 지키라고 충고하더라고요. 보스는 마약을 즐기지 않아요. 심지어 아무리 술을 마셔도 자세 하나 흩뜨리지 말고 깨어있으라고 우리 후배들을 교육하죠. 중국산 마약이 많이 들어와서 이제는 빈곤층도 한다니까요.”
▲ 영화 <사생결단>의 한 장면. 마약중간판매상 상도(왼쪽)는 도경장(오른쪽)에게 약점을 잡혀 함정수사에 협조하지만 수사가 실패하면서 감옥에 들어간다. | ||
“보스 말고 판매책들은 어때요?”
내가 물었다.
“우리 판매책들은 약에 중독된 사람이 많아요. 그래야 약이 진짜인지 가짠지 구별할 수 있죠. 판매책들은 서로 얼굴을 보지 않고 인터넷 판매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기꾼들도 적지 않아요. 어떤 놈들은 약에다 다른 물질을 섞어 무게를 속인다니까요.”
판매책 그들은 피해자도 되는 것 같았다. 얼마 전 구치소의 한 마약범으로부터 이런 편지를 받았었다.
‘저는 마약전과 5범의 부산 청년입니다. 서른두 살. 인생의 반을 마약중독과 수인(囚人) 사이를 오가며 살아왔습니다. 지금은 필로폰 판매혐의로 구속되어 수감 중입니다. 저는 우리나라 마약사범들이 처한 현실을 세상에 알리고자 합니다. 마약사범들은 치료받고 마약을 끊도록 돌봐주어야 할 환자들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징역형으로만 다스리고 있습니다. 교도소 내에서도 마약범들이 격리 수용되지 않고 다른 사람들과 접촉이 빈번합니다. 이런 맹점들은 마약이 확산되는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누바인, 대마초 등 가벼운 마약 상용자들과 필로폰 사범을 한 방에 수용하고 있는 현재의 수용방법은 해마다 필로폰 사범이 늘어나는 원인입니다.
저는 지금 14명의 다른 마약류 사범들과 함께 지냅니다. 저는 판매자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제가 취급했던 필로폰에 관심을 갖고 물어보고 있습니다. 제가 다른 사람들에게 나쁜 영향을 주는 셈이죠. 저 또한 새로운 수요자인 그들을 보면서 마음속으로는 판매의 유혹을 느끼고 있습니다. 서로에게 악영향을 주는 것입니다. 저희들 같은 마약사범은 국립정신병원 같은 치료시설에 모아 치료해 주었으면 합니다. 교도소에서 마약범들은 일을 할 수도 공부할 수도 없습니다. 직업훈련도 받을 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흉기가 될 수 있는 망치, 톱, 칼 등의 공구가 이유인 듯싶습니다. 교도소 내에서도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정신질환자로 취급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약사범이 범죄자입니까? 환자입니까? 우리나라에서는 범죄자로만 취급을 받고 있습니다. 저는 10여 건의 판매혐의와 부산 통영 등지에서 수배된 건수만 4건인 중범죄자가 됐습니다. 마약은 순간의 쾌락의 대가로 저의 모든 것을 앗아가 버렸습니다. 제가 다섯 차례 대마흡연과 단순투약으로 구속되었을 동안 단 한 차례도 치료받지 못했고 재활 프로그램에 참여할 기회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저보다 더 심한 마약사범들과 함께 있으면서 중증의 각성제중독과 판매수법을 배웠습니다. 이렇게 마약사범을 키우는 국가에 대해 소송을 제기할 수단은 없는지요? 그 도움을 청하기 위해 이렇게 편지를 썼습니다. 8월 20일 구치소에서 박강석 올림.’
교도소는 마약조직의 발생지라는 것이다. 그곳에서 전국적인 정보가 교환되고 판매방법이 교육된다고 했다. 평범한 시민은 마약에 손을 대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마약범들을 보면 나름대로 사정도 있었다.
피아노 회사에서 일을 하던 박 아무개 씨는 피아노를 들고 계단을 올라가다 허리가 삐끗했다. 치료를 허술하게 했는지 흐린 날이면 허리가 욱신거리면서 끊어질 것 같았다. 그렇다고 그때마다 병원에 갈 형편도 안 됐다. 가도 의사는 호소를 듣지 않고 진통제도 놓아주지 않았다. 우연히 동네에서 얼굴을 알고 지내는 사람이 그 사정을 듣고는 “좋은 걸 줄까” 하고 말했다. 그걸 하면 아프지도 않고 기분도 좋아진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공짜로 히로뽕 주사를 처음 맞았다. 사실 히로뽕인지조차도 몰랐다. 통증이 금세 멎었다. 기분도 날아가는 것 같았다. 그러나 몇 차례 공짜로 놔주던 주사가 중독이 된 순간부터는 0.5g에 50만 원씩을 내야만 했다.
히로뽕으로 구속된 가수가 있었다. 하루 열 시간씩 라이브 공연을 하면 목에서 피가 나오고 녹초가 되곤 했다. 그럴 때 히로뽕을 하니까 컨디션이 좋아지고 감정도 촉촉해지더라는 것이다.
저변에 소리 없이 스며드는 백색공포인 마약을 막기 위해서는 함정수사가 불가피하다. 마약쟁이로 위장을 해야 하기도 하고 미끼와 덫을 놓고 범인을 기다릴 필요도 있다. 그러나 국가공무원인 수사관들은 수사상의 의리에는 철저해야 할 것 같았다. 마약도매상 황달식 씨의 경우는 경찰과 검찰에서 경쟁적으로 스카우트를 하려고 유혹을 하던 인물이었다. 그는 수사관들의 요구에 따라 열심히 일을 해 줬다. 그러나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이다. 다른 마약꾼들이 정보원으로 나선 그를 경계하게 되었다. 이미 인간 사냥견으로 용도폐기될 때가 된 것이다. 마약 수사관들은 그래도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마지막에는 실적을 위해 그를 기소하려고 했다.
그는 마약 수사관 앞잡이로 받은 소형녹음기와 공작금을 내게 보여 주며 인간사냥개에서 풀려나오게 해달라고 의뢰했었다. 그를 관리하는 마약수사관은 다른 마약범들에게 그가 끄나풀이라는 사실을 은근히 퍼뜨리기도 했다. 마약범들의 배신과 반목을 이용해 처리하려는 것이었다.
“수사관들은 ‘거물 마약범을 검거했다’라며 신문에 자기 이름이 나는 걸 너무 좋아해요. 그런데 더 이상 그런 일에 이용당하기 싫어요. 사냥개 노릇을 하기 위해 투약했는데 나까지 재판에 넘겨 실적을 올리려는 치사한 짓은 범죄인들조차도 하지 않는 짓이죠. 그런데 공무원이 그 짓을 하는 겁니다.”
그가 분노하며 말했다. 그는 이 모든 사실을 그대로 폭로해 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검사장과 마약담당 부장검사에게 사실을 알렸다. 얼마 후 그는 기소유예로 종결처분을 받고 자유인이 되었다. 몇 년 후 찬바람이 몰아치는 겨울 어느 날 나는 그가 일하는 변두리 공장에 찾아간 적이 있다. 그는 컴컴한 굴 속 같은 카트리지 재생공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 사이 결혼도 하고 셋방도 얻어 살고 있었다. 그는 마약세계에서 손을 뗀 새로운 삶을 힘들게 성공시켰다. 잠시 후 그와 나는 김치찌개가 보글보글 끓는 냄비를 가운데 두고 앉았다.
“이제 어떻습니까?”
내가 물었다.
“지금도 유혹받습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마약을 하는 것도 수사관의 사냥개 노릇도 다 싫어요. 내 땀 흘려 돈 벌어서 가족 먹여 살리는 게 최고죠. 저 행복합니다.”
그가 목장갑을 든 채 공장으로 가면서 했던 마지막 말이었다.
엄상익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