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들은 “병원으로” 법원은 “교도소로”
“사위였던 살인피고인 황인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검사가 물었다.
“처음 경찰에 가서 진술을 할 때는 사위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저 놈을 죽여 달라고 호소합니다. 저 놈은 자신을 정신병자로 만들어 살아나려고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강 감독은 분노했다.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황인욱 저 놈이 쇼를 하고 있습니다. 경숙이가 죽기 일주일 전에도 저 놈이 나를 찾아왔어요. 영화타이틀을 어떻게 할 것인가 의논도 했어요. 그 자리에서 내가 다른 일거리를 하나 만들어 주기도 했죠. 계약도 됐고요. 미친놈이 그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저 놈은 평소에도 우리 부부 앞에서 지나치게 경숙이를 사랑하는 척하고 저한테도 과도한 친절을 보였죠.”
“그렇군요.”
검사가 수긍하는 얼굴로 강 감독을 위로했다. 강 감독이 고개를 돌려 황인욱을 응시했다. 황인욱은 눈이 마주치자 순간 움찔했다. 강 감독이 품속에서 편지 한 장을 꺼냈다.
“이게 뭔지 아십니까? 내가 증인으로 나온다니까 저 놈이 감옥에서 보낸 편지입니다. 반성할 생각은 하지 않고 오늘 증언 좀 잘해 달라는 사정입니다. 합의하자는 거죠. 이런데도 저 놈이 심한 정신병환자란 말입니까?”
강 감독이 황인욱을 향해 소리쳤다.
“야, 이 놈아.”
“예, 장인어른. 말씀 하시죠.”
황인욱이 기가 죽어 허리를 숙였다.
“경숙이가 죽었으니까 너도 따라 죽거라. 그렇게 사랑한다는 아내가 죽었으니 그렇게 해야 마땅하지 않겠니?”
“….”
황인욱은 아무 대답이 없었다. 죽기 싫은 얼굴이었다. 그 광경을 냉정하게 바라보면서 검사가 다음 질문을 해나갔다.
“처음 사윗감 황인욱을 봤을 때 어떤 인상이었습니까?”
“딸 경숙이와 나이 차이도 십년은 훨씬 넘는 놈이 머리에 노란 물을 들이고 귀고리를 한 걸 보고 탐탁지 않았습니다.”
나는 황인욱의 정신병을 확신했다. 실제로 정신분열증이라고 해도 정신병원에서는 그 진단에 신중을 기하고 있었다. 특히 살인범의 경우는 더했다. 병원장부터 시작해서 관련 의사들이 회의를 거듭하고 내놓은 결론이었다. 황인욱의 가난한 형제들은 그 병원이라는 백색의 거탑에 접근할 수도 없었다.
황인욱의 여자형제들이 마지막으로 재판장에게 이런 내용의 탄원서를 올렸다. 그중 먼저 여동생 황경미는 오빠의 어린 시절과 그 성품을 알리고 있었다.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나의 오빠, 우리 착한 오빠가 살인범이라뇨? 정말 뭔가 잘못됐을 겁니다. 제 기억 저편에 오빠와 함께했던 시간들을 꺼내보려고 합니다. 우리 가족은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딸 여섯과 그 사이에 낀 오빠 이렇게 아홉 식구가 단란하게 살았습니다. 우리 집은 혜화동에 있는 아담한 한옥집이었죠. 늘 우리 집은 많은 사람들이 오갔습니다. 어머니께서 사람들에게 베풀며 사셨기 때문이죠. 당시 동네에는 거지들, 나병환자들이 많이 있었는데 어머니는 그들에게 항상 따뜻한 밥을 한 그릇씩 대접했습니다. 형제들은 이런 어머니의 모습에서 나누며 살아가는 것을 배웠지요. 오빠는 여자들 틈에서 큰소리 한 번 내지 않고 살았습니다. 아버님께서 조그만 회사를 운영하신 덕으로 우리 형제들은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귀한 아들이었던 오빠, 밥을 먹을 때도 우리 밥상과 오빠 밥상은 뭐가 달라도 달랐습니다. 그럴 때면 오빠는 딴 형제들에게 미안해서 특별히 앞에 있는 맛있는 반찬을 슬쩍 옮겨놓아 주었습니다. 오빠의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오빠가 대학 다닐 무렵 집이 기울고 불행이 닥쳤습니다. 오빠는 어느 날부터 아프다고 했습니다. 그후 오빠는 계속되는 병과의 싸움을 시작했습니다. 오빠가 워낙 착하고 영화계에서 이름이 있어서 그런지 예쁜 언니를 맞이하게 됐습니다. 어느 날 오빠는 짧은 커트머리를 한 경숙언니를 데리고 와서 소개했습니다. 경숙언니의 심성이 착해 보이고 오빠에게 잘할 것 같았습니다. 둘은 결혼을 했고 열심히 살았습니다. 우리 가족들은 모두 감사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오빠의 몸은 더욱 쇠약해졌습니다. 경숙언니는 일에 몰두하는 승부욕이 큰 여자였습니다. 언니는 밖에 나가 일하고 아픈 오빠는 집에 있었습니다. 집안일은 거의 오빠 몫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빨래에 설거지, 청소 등 오빠는 어느 여자보다도 깔끔하게 집안일들을 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때로 속도 상했지만 항상 경숙언니를 감싸고 도는 오빠였습니다. 경숙언니는 워낙 바쁜 사람이라 오빠랑 대화할 시간도 넉넉지 못한 것 같았습니다. 저는 오빠 집에 자주 가고 싶었지만 경숙언니가 좋아하는 것 같지 않아 피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오빠가 얼마나 외롭고 힘든 시간을 보냈을까 가슴이 메어 옵니다. 그런 중에도 경숙언니는 오빠의 능력에 늘 감탄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오빠의 아이디어로 경숙언니가 대박을 터뜨렸으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오빠에게 거는 기대가 큰 것도 알게 됐습니다. 그런 아내의 기대 속에서 아픈 오빠는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 다음은 큰누나 황경숙이 써 보낸 내용이었다.
‘집안이 기울고 우리 집은 교문리 빨래골이라는 곳으로 옮겼습니다. 마을버스에서 내려 한참 걸어 올라가야 하는 그곳은 판잣집들이 닥지닥지 붙어있는 곳이었습니다. 두 칸 방 중에 중풍인 아버지가 하나를 쓰고 인욱이는 나머지 작은 방에서 살았습니다. 어떻게 좁은지 누우면 발이 방 밖으로 나오는 형편이라 인욱이는 언제나 새우같이 등을 구부리고 자곤 했습니다. 어느 겨울밤입니다. 밤늦게 귀가하던 인욱이가 빵집에서 주인아줌마한테 빵을 여섯 개 얻어 왔습니다. 그 아줌마가 착해 보인다면서 덤으로 주더라는 것이었습니다. 마을버스도 타지 않고 온통 땀에 젖어 온 인욱이의 얼굴이 지금도 눈에 훤합니다.
누나인 저는 그 무렵 도피하듯 결혼했습니다. 그런 환경 속에서도 인욱이의 집념은 점점 꽃을 피웠습니다. 여기저기 영화사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습니다. 신문에 난 인욱이의 얼굴을 보고 감격해서 주위사람들에게 신문을 사다 나누어주기도 했습니다. 인욱이는 첫 번째 결혼했을 때도 부인에게 과민하게 집착하는 것 같았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이미 병이 시작됐던 게 아닌가 합니다. 자신이 점차 무너져간다는 걸 느꼈는지 인욱이는 필사적으로 아내를 붙들려고 했습니다. 같이 사는 장모가 원하는 건 뭐든지 인욱이가 해줬습니다. 장모는 명품을 원했고 인욱이는 무리를 해서라도 그것을 선물했습니다. 결국 인욱이는 많은 빚을 졌고 이혼을 하게 됐습니다.
얘기를 건너뛰어서 경숙이와 살던 인욱이를 생각해 봅니다. 인욱이는 아픈 날이 안 아픈 날보다 많았습니다. 처인 경숙이 외국에 출장 갔을 때 어린아이처럼 혼자 남겨져 몇날며칠을 먹지도 자지도 않은 채 혼자서 두려움과 외로움 속에 지냈습니다. 우리 형제들은 멀리서 그 둥우리를 보고 안타까워했습니다. 구부러진 허리를 펴지도 못한 채 엉거주춤 앉아서 두 눈을 감고 힘에 부쳐하는 인욱이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게 떠오릅니다.’
마지막으로 글을 써 보낸 사람은 둘째누나 황경자였다.
‘푸른 수의를 걸치고 척추근육이 상해 등이 굽은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인욱이의 지금 모습은 누나인 저의 가슴을 찢어지게 합니다. 저는 인욱이와는 여섯 살 차이였습니다. 어린 시절 제가 인욱이를 데리고 시내에 있는 서점에 가 동화책을 사주곤 하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인욱이가 대학 3학년 때 집안이 갑자기 기울었습니다. 당장 하숙비가 걱정이던 인욱이는 학교를 휴학했습니다. 고생스러웠던 삶의 많은 부분은 생략하고 인욱이와 그 처인 경숙의 결혼생활 말기의 일을 말씀드리겠습니다. 한번은 인욱이가 집으로 왔습니다. 얼굴이 많이 야위었고 식사도 변변히 하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인욱이는 자기는 경숙이를 사랑하지만 최근 경숙이가 이혼을 요구한다고 했습니다. 인욱이는 경숙이가 자기를 사랑하지만 경숙이에게 기회를 주어야 할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 뒤에 저는 경숙에게 내 동생과 이혼할 의사가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형제들은 인욱이를 데리고 올 마음이 있었습니다. 경숙이는 인욱 씨가 없으면 자신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면서 펄쩍 뛰는 거였습니다.
인욱이의 증세는 부부 모두가 잘 알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인욱이 스스로가 기도원에 가 있고 싶다고 한 적이 있습니다. 그 말에 경숙은 명상원이면 몰라도 기도원은 안 된다고 하기도 했습니다. 인욱이의 증세가 나빠졌습니다. 저는 경숙에게 며칠이라도 부부가 떨어져 있어 보는 게 어떠냐고 권유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경숙은 부부문제니까 자기들이 알아서 한다고 일축했습니다. 이 사건은 그 얼마 후 일어난 것입니다. 요즈음 면회를 가면 수갑에 묶여 있는 인욱이의 철저히 깨어진 모습을 봅니다. 제 동생이 다시 살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건지요.’
나는 황인욱에게 죽은 아내가 꿈속에 찾아왔었느냐고 물었다. 그는 경숙이가 예쁜 원피스를 입고 미소를 지으면서 잘 있으라고 손짓하며 저 멀리 가는 모습을 보았다고 했다. 법원은 황인욱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법원 복도에서였다.
“엄 변호사님이시죠?”
회색양복을 입은 점잖은 얼굴의 남자가 물었다.
“누구시죠?”
내가 물었다.
“제가 황인욱의 재판장이었잖습니까.”
검은 법복을 입었을 때와는 전혀 달랐다.
“그때 참 안타까웠습니다. 항소심에서는 어떻게 됐죠?”
당시 재판장이 물었다. 그 표정에는 연민과 뭔가 말 못할 고심의 흔적이 엿보였다.
“항소심에서 징역 7년이 선고됐습니다. 그 사건은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다 착했죠. 그걸 보면 살인도 한 가지 색깔이 아니라 수많은 빛깔과 다양한 모습을 보이는 것 같아요.”
“병을 고치고 잘 살았으면 합니다.”
당시 재판장의 마지막 말이었다.
(끝)
엄상익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