쓱 만지고 줄행랑… 맛들린 어른 많다
아이들의 짓궂은 장난의 하나였던 ‘만튀’가 학교 울타리를 넘고 성인들까지 가해자로 나서는 등 사회 문제화 되고 있다. ‘만튀’를 하다 경찰에 붙잡힌 할아버지. 경기경찰청 제공
남녀공학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박 아무개 군(18)은 ‘만튀’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박 군은 “소심한 애들 말고는 전부 만튀를 해봤다. 장난인 걸 아니까 친한 여자애들은 만튀를 해도 화를 내진 않는다. 오히려 복수한다며 남자애들 쫓아가 자기가 만지기도 한다. 선생님한테 이르거나 크게 문제된 적은 없다”며 “가끔 학교에서 말고 밖에서도 만튀를 해보고 싶긴 하다. 애들도 충동을 느낄 때가 있다고 했다”고 태연하게 말했다.
실제 학교 밖에서도 청소년들의 ‘만튀’는 성행 중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강도도 세지고 있는데 단순히 만지고 달아나는 것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여성에게 치욕적인 말을 내뱉거나 도구를 사용하기까지 한다. 물을 가득 채운 풍선을 가슴이나 엉덩이에 터뜨려 옷을 젖게 만드는 사례도 있으며 몸을 숨긴 채 물총으로 특정부위를 노리는 ‘노터치 만튀’까지 등장했다. 앞서의 박 군은 “학원에서 친구들이 하는 얘길 들어보면 누가 더 용기 있게 만튀를 하느냐를 두고 내기를 하기도 한다. 만튀 하면서 뽀뽀까지 한 애도 있었다. 학원에 다니는 여자애 중 하나도 만튀를 당했다고 하는데 교복 단추까지 뜯겼다고 했다. 단추를 증거삼아 자랑하기 위해 가져간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만튀가 청소년뿐 아니라 성인남성으로까지 퍼지며 범행수위도 점차 심각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대낮 길거리에서 ‘만튀’를 당한 경험이 있는 배 아무개 씨(여·30)는 “옆집 아저씨 같은 인상을 풍기는 남자가 달려오더니 갑자기 음부를 만졌다. 당황해서 소리도 못 지르고 가만히 있었더니 몇 번이나 ‘한 번 할래’라며 성희롱을 했다. 처음엔 무슨 뜻인지도 몰랐다. 나중에야 정신을 차리고 큰길가로 나와 도움을 요청했지만 그 남자는 이미 도망을 간 뒤였다. 시간이 지나도 절대 지워지지 않는 상처가 됐다”고 말했다.
또 다른 만튀 피해자 김 아무개 씨(여·28)도 “자정이 가까운 시간이라 주변에 사람이 별로 없었다. 횡단보도를 건너려 서 있다가 신호가 바뀌어 아무 생각 없이 걸었는데 앞에서 자전거 한 대가 오고 있었다. 그냥 지나가겠지 생각했는데 팔을 뻗어 가슴을 꽉 움켜쥐고는 그대로 달아났다. 어두워 얼굴을 정확히 볼 수 없었지만 20대 중반으로 보였다. 그 뒤로 자전거만 지나면 깜짝 몸을 피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처럼 자전거나 오토바이를 이용하는 사람들까지 생겨나면서 자칫 교통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성도 높아지고 있다.
‘만튀’는 단순히 행동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2차 피해까지 생산하고 있다. 인터넷 검색사이트에서 ‘만튀’ ‘엉만튀’ ‘슴만튀’ ‘X만튀’를 검색하면 수백여 개의 결과물을 볼 수 있는데 이 중에는 사진을 포함한 후기도 포함돼 있다. 엄연한 범죄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태도는 시종일관 뻔뻔함을 유지하고 있어 보는 이들을 분노하게 만든다. 후기에 달린 댓글들도 “나도 하고 싶다” “부럽다” “강도가 약함” “스킬 업그레이드 요망” 등 찬양일색이거나 동조하는 이해할 수 없는 분위기가 조성돼 있다.
평범한 성관계에 만족을 느끼지 못해 ‘만튀’를 즐긴다는 한 20대 남성은 “다른 부위는 관심 없고 내 취향은 엉덩이다. 고등학생 때 몇 개월 장난삼아 만튀를 하다가 그만뒀었는데 1년 전 다시 만튀를 시작했다. 여자와의 성관계보다 만튀가 훨씬 자극적이고 짜릿하다. 한 달에 3~4번씩 만튀를 하는데 아직 걸린 적은 없다”며 “반응이 좋으면 자신의 노하우를 전수하겠다”는 한 마디도 잊지 않았다.
한국성과학연구소 이사장 이윤수 박사는 “과거에도 여성들의 신체를 만지고 도망가는 장난이 있었다. 어린 학생들의 호기심에서 시작된 짓궂은 놀이였지만 요즘엔 스마트폰, 인터넷, 소셜네트워크서비스, 언론 등을 통해 자극적인 것에 노출되다 보니 점차 변질됐다.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어 올리며 2차 피해를 생산하고 오히려 안 하는 애들을 바보 취급하니 갈수록 심각해지는 것”이라며 “만튀와 같은 행동이 장난이 아닌 범죄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상기시켜야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