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 걸린 ‘대권 향방’
사형수 교화를 꾸준히 해오고 있는 한 스님의 말이다. 이처럼 사형수들은 매년 연말이면 극도의 불안감과 공포에 시달린다고 한다. 특히 5년마다 찾아오는 정권 교체기가 되면 죽음에 대한 공포는 더욱 극에 달한다는 것.
실제 지난 1997년 12월 대선에서 사형수 출신인 김대중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사형수들은 ‘사형제도 폐지’ 가능성에 기대를 걸었지만 약 열흘 뒤 김영삼 전 대통령의 문민정부는 23명의 사형수에 대한 사형 집행을 감행한 바 있다. 그리고 남은 38명의 사형수를 차기 정권에 넘겼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는 5년간 단 한 차례도 사형을 집행하지 않았다. 그러나 사법부의 사형 선고는 계속됐고, 대법원은 27명의 흉악범에 대해 최종 사형 확정 선고를 내렸다.
국민의 정부는 현 참여정부에 모두 52명의 사형수를 넘겼다. 13명이 특별사면에 의해 사형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된 탓이었다. 현 정부 들어서는 대법원의 사형 선고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아직 1년이 남아 있지만 현재까지 사형 확정 선고를 받은 이는 12명에 그치고 있다. 법원은 살해 피해자가 2명 이상이고 다른 악성 범죄가 포함되는 경우에 한해서 신중하게 사형선고를 내리고 있다. 하지만 그런 만큼 현 정권 들어 ‘빨간 번호표’를 단 사형수들의 범죄는 끔찍하다. 정부수립 이후 최대의 연쇄살인극을 저지른 유영철이 대표적이다.
사형수들을 활발히 접촉하고 있는 교화 관계자들은 “예년에 비하면 눈에 띄게 사형수들의 심리 상태가 안정되어 보이지만 역시 정권 말기가 서서히 다가오면서 차츰 불안해하는 기색이 엿보인다”고 전했다.
기자는 <문화일보>의 사형 집행 가능성 보도 직후인 지난 5일 서울구치소를 방문해 6~7명의 사형수를 접견하고 나온 이영우 신부와 전화 인터뷰를 통해 담장 안의 분위기를 전해 들었다. 이 신부는 “구치소 안에서 원래 석간을 넣어주는데 문제의 기사가 보도된 그날 신문은 내부에서 ‘최고수’(이 신부는 사형수 대신 최고수라는 표현을 썼다)들이 동요를 일으킬까봐 안 넣어주기도 하고 문제의 기사 부분을 오려낸 채 넣어주기도 했다고 한다”고 전했다.
이 신부는 “오늘 ‘친구’들을 여럿 만나보니 아직 밖의 논란을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지 아니면 알면서도 애써 자제하는 것인지 그에 대한 질문도 없었고 특별히 동요하는 기색도 없었다”고 전했다. 그는 “친구들은 현 정권에서는 사형 집행을 하지 않을 것이란 믿음을 갖고 있는 것 같다”면서 “하지만 한 친구가 ‘연말에 악몽에 시달리며 가위에 눌렸는데 새해 아침을 맞으면서 새 한 해를 선물받은 느낌이었다’고 감격스러워 하는 등 정권 교체기를 맞는 두려운 분위기를 감추지는 못하더라”라고 전했다.
최근의 노무현 정부가 역대 어느 정권보다 국민의 지지도가 떨어져 있고 유영철·정남규 사건 등 초대형 강력 범죄가 잇따라 불거지면서 사형수들이 다시 불안감에 떨고 있다는 것.
문장식 목사는 “그들도 사람인지라 살고 싶은 욕망이 당연히 있을 테고, 사형제 폐지 논의 등에 대해 관심을 왜 안 갖겠는가. 하지만 그들은 우리를 만날 때 그런 질문을 전혀 하지 않고 애써 자제한다. 염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탓”이라고 전했다.
또한 그는 “지난 연말과 연초에도 사형수들을 만났지만 다행히 예년처럼 그렇게 많이 불안해하거나 크게 동요하는 기색은 없는 듯했다”며 “다만 현 정부의 인기가 자꾸 떨어지고 보수 세력의 목소리가 자꾸 커지니까 앞으로가 더 걱정”이라고 말했다.
감명국 기자 km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