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폭 뺨치는 ‘재폭 회장님’
▲ 보복폭행 의혹을 받고 있는 김승연 한화 그룹회장이 지난 29일 오후 경찰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남대문 경찰서로 들어서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이런 가운데서도 김승연 회장이 이러한 폭행 사건에 얼마나 직접 관여했는지와 폭행이 벌어진 청계산과 북창동 유흥주점에서 과연 구체적으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가 수많은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또한 진술이 엇갈리고 있는 흉기 사용 여부도 여전한 논란거리다. 현장 목격자들의 증언과 한화 측의 해명도 서로 엇갈리고 있는 상황이다. 사건을 처음부터 재정리하며 이러한 궁금증들을 해명해 본다.
#사건의 발단
사건의 발단은 지난 3월 8일 새벽 서울 청담동의 G 가라오케에서 술김에 벌어진 사소한 몸싸움에서 시작됐다. 김승연 회장의 둘째 아들 김 아무개 씨와 이 술집을 찾은 서울 북창동 S 유흥주점의 종업원들 사이에서 시비가 붙어 주먹다짐이 벌어졌고 이 과정에서 김 회장 아들이 계단에서 굴러 눈 주위가 찢어지는 상처를 입었다. 당시 김 회장의 아들은 “내가 누구인지 알고 때리느냐”고 따졌지만 이들 김씨는 “네가 누군데?”라며 무시했다고 한다. 그리고 종업원들 중 한 사람이 김 씨에게 “술을 곱게 먹으라”고 충고한 뒤 술집을 나와 돌아갔다.
#산에서 무슨 일이
사건이 벌어진 당일인 8일 초저녁 김 회장은 아들이 폭행당한 사실을 보고받았다. 김 회장은 아들과 경호원 17명을 차에 나눠 태우고 직접 G 가라오케로 향했다. 이곳에서 S 유흥주점 종업원들을 불러들인 김 회장은 이들을 끌고 서울 서초구 인근 청계산에 있는 한 공사터 창고로 끌고 갔다. 김 회장의 보복폭행사건이 벌어진 현장이었다. 이를 목격했던 종업원들은 당시 기억을 마치 공포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이들에 따르면 검은 장갑을 낀 김 회장은 아들을 때린 사람이 누구냐고 추궁한 뒤 “내 아들이 눈을 맞았으니 너도 눈을 맞으라”며 눈을 집중적으로 때렸다고 한다. 곁에 있던 경호원들은 쇠파이프와 전기 충격기를 가지고 있었다고 목격자들은 진술하고 있다.
그런데 이 현장에서 쉽게 믿기 힘든 장면도 펼쳐졌다는 증언도 나와 경찰의 수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경호원들이 ‘손목을 자르겠다’고 위협했으며 ‘파묻어 버리겠다’며 삽으로 땅을 파기도 했다고 한다. 또한 산에서 돌아온 이들의 온몸은 흙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는 목격도 있다. 이들은 “정신없이 맞는데 너무 무서워 아프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였다”고 털어놨다. 더구나 이들 중에는 폭력배들도 포함돼 있는 것 같았다는 주장도 나온 바 있다.
그러나 이 날 청계산에서의 폭행사건에 대해 한화그룹 측은 “김 회장이 폭행에 가담하지도 청계산에 있지도 않았다”고 반박하고 있다. 또 폭행 시 무기나 흉기 소지 여부에 대해 경찰은 “수사결과 한화 측에서 나온 사람들이 전기충격기와 비슷한 물건을 소지하고 있었으나 회칼이나 권총은 소지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목격자들의 진술과 엇갈리고 있어 이 점에 관해서는 추가 조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김 회장 가담 정도
청계산에서 맞은 이가 아들을 때린 인물이 아닌 것을 알게 된 김 회장 일행은 아들을 폭행한 이를 찾으러 북창동으로 향했다. 이곳 북창동 S 유흥주점이 2차 보복폭행이 벌어진 장소다. 이 장소에서의 상황도 김 회장 측과 피해자들의 증언이 엇갈리고 있다.
이곳 종업원들에 따르면 술집에 들어선 김 회장은 “아들을 때린 사람을 찾아오라”며 룸 안으로 주점 사장을 불러 뺨을 때렸다고 한다. 이때 김 회장이 권총처럼 생긴 것으로 머리를 겨누었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김 회장이 손에 들고 있던 것은 금장식이 달린 권총이었다는 진술도 있다.
또 아들을 때린 사람을 찾은 김 회장은 아들에게 직접 “맞은 만큼 때리라”고 했고 룸 밖에까지 ‘퍽’ 소리가 여러 차례 들렸다는 진술도 있다.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경찰청은 28일 S 주점 종업원 5명과 이곳의 조 아무개 사장을 조사한 결과 김 회장이 직접 폭력을 휘둘렀다는 진술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또한 한화의 경호담당 임 아무개 부장과 진 아무개 과장의 조사 결과 김 회장이 폭행현장에 있었다는 진술을 일부 확보했다는 것. 그러나 한화 측은 공식적으로 김 회장의 폭행가담 여부에 대해 인정하지 않고 있다.
한화그룹은 “사과를 받기 위해 아들과 경호원들을 먼저 보냈고 회장은 아들이 걱정된 마음에 나중에 찾아가 화해의 술잔을 돌렸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폭력배들이 가담했다는 일부 소문에 대해서는 아닌 것으로 잠정 결론이 난 상황이다.
만약 김승연 회장이 직접 폭행에 가담했다면 최소한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상 공동상해 혐의 등을 적용할 수 있으며 단순 폭행이 아닌 목격자들의 진술처럼 감금한 채 폭행했거나 흉기 등으로 협박했을 경우 형은 3년 이상으로 늘어나게 될 수도 있어 이 문제가 쟁점이 될 전망이다.
#도피성 출국 논란
김 회장의 둘째 아들이 25일 중국으로 출국한 사실이 뒤늦게 전해지면서 도피성 출국 논란으로 한화는 또 한 번 이미지에 먹칠을 하고 있다.
경찰은 사건 다음날인 26일 김 회장의 둘째 아들에 대한 출국금지 신청을 냈으나 검찰에서는 범죄사실이 추상적이라는 이유로 반려시켰다. 그리고 25일 출국사실이 출입국 전산망에 뜬 것은 26일 오후 6시 32분이었다. 경찰이 한화 측으로부터 김 씨의 출국사실을 통보받은 것은 27일 자정이 넘은 시각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하루가 넘는 시간 동안 김 씨의 출국 사실을 확인하지 못한 채 28일 김 씨를 소환해 조사하겠다고 발표해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한화와 김 회장 아들의 출석시간을 협의하는 과정에서 28일 출석시키겠다고 해 국내에 있는 것으로 믿었으나 확인해보니 이미 25일 중국으로 출국한 것으로 파악됐다”며 “사실상 도피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한화는 경찰과 아들 김 씨의 출석시간을 협의하는 과정에서 출국사실을 숨겼다가 출국 3일이 지나서야 불출석 사유서를 낸 것으로 밝혀져 이 문제도 새로운 법적 문제로 번질 가능성도 있다.
미국 예일대에 유학 중인 김 씨는 지난달부터 서울대 동양사학과에서 방문학생으로 공부를 하고 있으며 학과 교수 및 학생들과 함께 현지답사 명목으로 중국으로 출국했다. 김 씨가 과연 예정대로 귀국해서 조사에 응할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