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통 향한 ‘무언의 메시지’ 보내는 중?
▲ 주수도 회장 | ||
검찰은 주 회장의 핵심 로비스트로 지목 받아온 측근 인사를 전격 구속하고, 정치권 로비를 중재한 강남의 한 고급 음식점 주인에 대해서까지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또 검찰 수사관이 제이유그룹과 관련한 각종 정보를 주 회장에게 제공해주고 금품을 받은 사실도 확인해냈다. 검찰의 계좌추적도 유효했겠지만 주 회장이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들이다.
이처럼 주 회장의 심경 변화로 수면 밑으로 가라앉았던 제이유 수사가 급물살을 타고 있는 가운데 주 회장이 검찰 조사에서 염동연 통합신당 의원, 신상우 한국야구위원회 총재(전 국회 부의장), 이부영 전 열린우리당 의원 등 정치인을 비롯한 각계 인사들에게 대가성 금품을 제공했다고 진술했다는 보도까지 나오면서 파란이 예고되고 있다.
물론 이들 전·현 의원들은 주 회장 측으로부터 금품을 받은 사실이 전혀 없다고 반박하고 있고, 염 의원의 경우 법적 대응까지 나선 상황이다. 그러나 제이유 그룹 로비에 대한 검찰 수사가 정치권으로까지 비화될 가능성은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상황이다.
그동안 로비 의혹을 강하게 부인해 왔던 주 회장, 그가 항소심 판결을 앞두고 마음을 백팔십도 바꾼 까닭은 과연 무엇일까.
주 회장은 최근까지도 비자금과 정·관계 로비 의혹이 언급되는 자체를 상당히 불쾌해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지난해 5월 공개된 제이유 로비 의혹 관련 국정원 보고서에 적힌 100억 원 로비 자금 사용 내용에 관해서는 “누군가 나를 음해하려는 목적”이라는 생각을 굽히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유사 수신 행위 수사가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니까 되레 말도 안 되는 비자금 로비 쪽으로 무리하게 수사를 몰아간다”며 검찰을 향해 날을 세웠던 것도 얼마 전까지의 일이다.
이렇던 주 회장이 사실상 마음을 비우고 로비 실체를 스스로 벗긴 것은 일단 항소심 형량에 대한 부담감이 상당히 작용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실제 제이유 관계자들에 따르면, 주 회장이 1심 막판과 항소심 재판 과정에서 다단계에 대한 법원의 인식이 예사롭지 않다는 분위기를 읽고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특별한 케이스가 아니면 항소심의 형량이 대법원에서도 유지되는 관례도 주 회장이 함께 떠올렸을 법하다.
한 관계자는 “주 회장이 재판시 판사들에게 날카로운 지적을 받으면서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낀 것 같다. 1심에서 받은 형량이 항소심에서 줄어들 가망이 없다고 보고 차라리 모든 걸 털어버리고 선처를 바라는 것이 낫다는 쪽으로 결심이 선 듯하다”고 전했다.
제이유 피해액에 못 미치는 다단계업체 위베스트의 대표가 지난 1월 대법원에서 징역 10년이 확정된 점 역시 주 회장의 심경 변화에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동부지검으로부터 사건을 넘겨받은 서울지검 특수부가 자신의 측근 인사들을 강도 높게 조사하며 압박해온 부분도 주 회장으로선 고민스러웠을 대목이다.
측근들이 구속되는 것을 지켜봐야 하는 인간적인 괴로움을 차치하더라도 자신이 아닌 측근들의 입에서 로비 혐의가 입증될 경우 덧씌워질 ‘괘씸죄’를 더 이상은 감당하기 어려웠으리라는 분석이다.
주 회장의 비자금을 관리한 것으로 알려지는 제이유그룹 김 아무개 비서실장이 구속된 것도 마음을 움직이게 만든 한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김 씨의 노트북과 다이어리 등 핵심 증거품이 검찰을 통해 압수되면서 더 이상 검찰과 공방을 벌이는 자체가 무의미 하다는 판단을 내렸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한편 주 회장은 제이유 사건이 서울지검 특수부로 넘어오면서 검찰이 제이유 그룹 전체를 다시 수사하는 부분에도 상당한 부담을 갖고 있던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 주 회장은 지난 4월 27일 제이유 관계자에게 보낸 서신에서 “제이유 그룹 전체를 특수부에서 다시 수사하는 상황이 안타깝다”는 심정을 나타냈다.
이를 최근 주 회장이 정·관계 로비 부분에 대해 입을 열고 있는 정황과 연관시켜 보면 제이유 그룹 내부 문제에 대한 수사보다는 로비 쪽으로 검찰 수사의 주 포인트를 바꿔 놓기 위한 일종의 전략적 차원에서 로비 의혹을 스스로 풀었을 수도 있는 셈.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없지만 제이유 관계자 및 피해자들을 설득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야 하는 주 회장, 더 큰 가시적인 성과를 얻어야 하는 검찰 사이에 ‘플리바겐’(plea bargain: 피고가 유죄를 인정하거나, 다른 사람에 대해 증언을 하는 대가로 검찰이 형을 낮추거나 가벼운 죄목으로 조정하는 제도) 성격의 합의가 이뤄졌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일각에서는 주 회장이 슬며시 입을 연 것을 두고 ‘선별적 폭로’일 가능성도 내비치고 있다. 즉 주 회장이 스스로 로비의 ‘가지’를 건드림으로써 로비 ‘몸통’에 자신을 도와달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보내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다.
과연 주 회장은 모든 것을 포기한 것일까. 아니면 살기 위한 마지막 몸부림을 보이는 것일까. 이전과 달라진 그의 입이 예사롭지가 않다.
유재영 기자 elegan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