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울뿐인 남편이 쥔 3천만원짜리 아내 정조권
“남편 조대기의 고통에 대해 모두 2억 원을 청구하셨네요?”
조대기의 고통이란 아내와 오민수 사이의 불륜 때문에 받은 정신적 상처를 의미했다. 변호사인 나는 불륜관계를 인정하지 않았다. 본인들이 그걸 부인했다. 남편 조대기는 아직도 아내를 사랑한다면서 법원에 아내를 돌려달라고 호소했다. 조대기의 변호사는 추가로 1억 원을 더 청구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아내 김민희가 오민수란 남자에게 정신을 쏟는 바람에 남편은 엄청난 고통을 받았습니다. 도대체 아내가 남편과 말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는 겁니다. 이제는 눈 한 번 마주치지 않는답니다. 그 보상은 꼭 받아내야겠다는 겁니다.”
호적에 적힌 남편의 권리란 대단했다.
“불륜이 의심되는 남자에게 청구한 건 이해가 되는데 오민수의 아내에게는 왜 돈을 청구했습니까?”
“남편이 김민희와 관계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말리지 않았다는 거죠. 그건 남편의 불륜을 방조한 겁니다.”
상대방 변호사가 주장했다.
“어느 여자가 남편의 간통을 방조할까요?”
판사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소송을 제기하기 전에 남편인 조대기가 오민수의 처를 찾아가 남편을 잘 단속하라고 경고했습니다. 그런데도 남편을 붙잡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그에 대해서도 법적인 책임을 지라는 청구입니까?”
판사가 물었다.
“그렇습니다.”
“그러면 김민희의 잡지사 동료 기자인 박미자에 대해서는 왜 돈을 청구했죠?”
판사가 다시 물었다.
“항상 김민희의 옆에서 ‘왜 그런 자식과 같이 사느냐? 빨리 이혼하고 새 출발해라. 오민수 같은 사람은 얼마나 좋으냐? 그런 남자하고 단 하루만 살아봐도 좋겠다’는 말을 했습니다. 김민희가 남편을 떠나가게 한 원인제공자입니다.”
“그게 위자료를 청구한 원인이군요.”
판사가 연필로 요약지에 정리하면서 확인했다. 조대기는 자신이 남에게 상처를 준 건 망각하고 주관적인 피해만 부각시켰다. 자기의 불행을 모두 남의 탓으로 돌리는 사람이 많았다. 그런 일들에 익숙해진 판사는 완전히 전자계산기였다. 잠시 뭔가 생각하던 판사가 입을 열었다.
“사람이 죽었을 경우는 최대 5000만 원입니다. 사회적 지위가 있는 사람이 명예훼손을 당했을 경우가 3000만 원이고 이 경우는 아내의 정조권인데 얼마로 정하면 적당할까?”
판사는 2억은 말도 안 된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생명에 비하면 별거 아니라는 의미가 표정에 나타났다.
“3000만 원 정도면 어떨까요?”
남의 아내를 탐했다는 데 대해 법에서 부르는 가격이었다.
“피고 오민수 쪽 대리인은 이 금액이 어떻습니까?”
판사가 나를 보고 물었다. 이쪽은 하지 않았다는데 판사는 값부터 정하고 강요하는 상황이었다.
“그 돈을 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아무 일도 없었는데.”
내가 대답했다. 판사가 이것 봐라 하는 표정이 됐다.
“일단 증거로 제출된 이메일을 보면 불륜이 강하게 추정됩니다. 법원에서는 꼭 섹스가 아니라도 부정한 상황을 인정할 경우 배상을 명령할 수도 있습니다. 안했다고 하면 굳이 김민희를 불러 간통을 공개적으로 추궁해 봐야 할까요?”
판사가 압박을 가하면서 들어왔다. 법원이 참 여러 가지 일을 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
“오민수가 모든 걸 걸고 한강다리에서 떨어진 김민희를 구해낸 건 금액산정에 참작하지 않습니까?”
내가 판사에게 물었다.
“그러니까 2억 부르는 게 3000만 원으로 내려간 거 아닙니까?”
판사의 대답이었다. 조대기의 변호사가 끼어들었다.
“그러면 앞으로 오민수가 몰래 아내를 만날 때 한 번에 얼마씩 돈을 정해주세요.”
“불륜을 인정하지 않으니까 다음번 법정에 김민희를 일단 증인으로 소환합니다.”
판사가 선언했다.
며칠 후 나의 사무실로 오민수의 처가 찾아왔다. 둥그런 얼굴에 부드러운 눈빛을 가진 사십대 초반의 여자였다. 법에서까지 남편의 불륜을 확신할 정도면 본처는 분노하는 게 보통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의외로 침착했다.
“원래 우리 남편 마음이 약해요. 오지랖이 넓죠. 그 여자가 맞고 산다고 하면서 악랄한 남편의 의처증을 호소하니까 거기 빠져서 도와주려는 마음이 지나쳤을 거예요. 그런 경우가 종종 있었어요. 난 그걸 알아요. 아무리 판사가 많이 안다고 해도 함께 산 처보다 더 남편 속을 알겠어요? 이메일상 오해를 받는 단어를 썼다고 해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거예요. 겁쟁이 우리 남편을 너무 잘 아니까요.”
“승진을 앞두고 있는데 내가 간통으로 소송을 당했다는 말이 주위에 퍼지고 있어요. 방송사가 워낙 말이 많은 곳인데 아무래도 난 틀린 것 같네요.”
그의 얼굴에 순간 후회의 빛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정글의 법칙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상대방에게 조금의 흠이라도 있으면 그건 급소가 됐다.
“김민희와 정말 아무 관계도 없었어요? 판사가 다그치던데.”
다시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정말 없었어요. 한번 생각해 보십쇼. 제가 얼마나 몸조심을 하겠습니까? 피디 생활을 하다보면 여자들이 접근하는 일도 있어요. 물론 제가 바람기가 있으면 여자들을 건드릴 수도 있겠죠. 그렇지만 뒷감당 못하고 급하게 행동했으면 이만큼이라도 방송사에서 버티겠습니까? 김민희가 찾아와서 호소한 날도 방송국에서 외신 들어오는 거 때문에 비상이 걸려 있을 때였죠. 그래서 김민희가 찾아왔을 때 회사 앞 카페에서 만났어요. 언제 회사에서 찾을지 모르니까요. 그런 상황에서 내가 그 여자와 뭘 할 수 있겠어요. 저 정말 아무 관계도 없었어요. 이걸 뭐로 증명해야죠? 판사는 내가 발기불능이란 진단서를 가져다 보이기 전엔 못 믿겠다는 겁니까? 증거가 그렇게 중요한 겁니까?”
그의 어조가 격해지면서 울컥하고 목에서 주먹 같은 것이 치솟는 표정이었다. 그의 눈에 얼핏 물기도 비쳤다. 난 모르는 척 얼른 그를 외면했다. 한참 있다가 그가 덧붙였다.
“우리 방송인들은요, 흐뭇한 감동을 더 추구해요. 또 눈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게 존재한다는 사실을 압니다. 판사는 내가 김민희를 위로하기 위해 조금 오버해서 쓴 사랑이라는 단어를 섹스로 바로 추정하나요? 성 불능의 진단서 외에는 제가 고려될 여지가 조금도 없는 건가요? 나도 진단서를 제출하고 김민희 남편 조대기가 불법 해킹한 걸 맞고소해서 괴롭혀야겠어요. 판사는 왜 인간적인 측면에는 눈이나 귀가 돌아가지 않죠?”
어떤 아름다운 사랑의 드라마도 판사에게는 간통죄 그 하나일 수 있었다.
“김민희를 증인으로 법정에 세워도 자신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오민수가 당당히 대답했다.
3주일이 흘렀다. 김민희가 긴장한 표정으로 증인석에 올랐다. 마치 소설 <주홍글씨>처럼 그녀는 자신의 간통을 탄핵받기 위해 법정에 선 것이다.
“이메일 내용이 어떻습니까?”
재판장이 물었다. 오민수와 간통했느냐는 물음이었다.
“그건 별게 아닙니다.”
김민희가 짧게 대답했다.
“아닌 것 같은데요. 결국 그 이메일이 가정불화와 부부관계가 악화된 원인 아닙니까?”
판사가 다그쳤다. 순간 김민희의 눈에서 광기가 번쩍였다.
“그러면 남편이라는 조대기는 제 친구까지 건드리고 퇴폐업소에 드나들다 저에게 걸리고 직장 동료들 앞에서 저를 길바닥에 내동댕이쳐도 책임이 없다는 건가요? 제가 이혼소송을 제기하면서 그걸 주장해도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오민수 씨가 보낸 그 이메일 때문에 내 책임이 크다는 거죠. 오민수 그 사람이 일방적으로 보낸 이메일 때문에 제가 끝없이 멍에를 써야 하는 건가요?”
“왜 남편을 두고 오민수를 찾아가 호소를 했죠? 남편의 냉대를 핑계로 결국 오민수와 여러 번 사적인 만남을 가진 거 아닙니까? 만나지 말아야 했던 거 아닌가요?”
재판장이 법의 잣대를 깊숙이 들이댔다.
“이미 우리 부부 사이는 이혼 합의가 있었고 가정은 없었습니다. 이미 결혼생활은 끝난 겁니다. 이번에 조대기가 이 소송을 걸면서 말했습니다. 너같이 이용하기 좋은 여자를 왜 버리느냐고요. 저는 놓여나고 싶습니다. 이미 전에도 목숨까지 내놨었어요. 보세요, 내가 뭘 잘못했냐고요?”
그녀가 재판장 앞에 팔목을 들어보였다. 동맥을 끊었던 자리가 벌레같이 흉측해 보였다. 좌배석 판사는 어느새 고개를 옆으로 기울여 졸고 있었다. 자기 담당사건이 아니었다.
“이 자리는 증인과 토론하자는 자리는 아닙니다. 이미 부부관계가 파탄이 났다면 김민희 씨를 비난할 수만은 없겠죠. 그러나 좀 더 시간을 두고 남편 조대기의 동의를 얻어내야 하지 않았나요? 부부 사이의 얻어맞고 사는 얘기를 오민수에게 호소한 건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습니다.”
재판은 얼추 끝이 났다. 판사가 앞의 피고석에 선 오민수에게 선언하듯 강조했다.
“우리 재판부의 시각은 분명하고 뚜렷합니다. 혼인생활을 법에서 보호해 줘야 합니다. 남의 가정에 난 균열을 이용해서 그렇게 파고들면 안 됩니다. 변호사를 통해 법정에 낸 서류들을 보면 방송사 간부라는 영향력 있는 위치에 있으면서도 잘못했다는 아무런 의식이 없는 것 같아요. 법원에서는 남편 조대기에게 적정한 금액을 주라고 권합니다. 만약 권고에 응하지 않으시면 불륜관계가 판결문에 적나라하게 적히고 손해배상금이 거액이 될 수도 있습니다. 선택은 지금 즉시 하십시오.”
무서운 경고였다.
“잠깐 생각할 시간을 주십시오. 10분만이라도요.”
오민수가 순간 당황하면서 재판장에게 사정했다.
“알겠습니다. 10분간 휴정합니다. 그 사이 결론을 내주시기 바랍니다.”
재판장이 배석판사와 함께 잠시 나갔다. 오민수와 그의 변호사인 나는 복도로 나와 서로 얼굴을 마주했다.
“판사는 전혀 다른 걸 보고 있네요. 법은 혼인생활을 보호해야 한다고 하는데 김민희에게는 실질적인 혼인생활이 없었어요. 판사가 저보고 비난을 하는데 내가 뭘 잘못했나요? 재판장이 뭐라고 하건 그건 그의 생각입니다.”
오민수는 단호했다. 어느새 10분이 흘렀다. 재판장과 배석판사들이 다시 들어왔다.
“어떻게 하기로 했습니까?”
판사가 오민수를 달래는 표정으로 상냥하게 물었다.
“전 재판장님을 따르지 않겠습니다.”
순간 재판장의 얼굴에 불쾌한 검은 그림자가 스쳤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3주 후에 판결을 선고하겠습니다.”
재판장이 무뚝뚝한 어조로 말하고 법정을 나갔다. 법원에서 판결문이 날아왔다. 거액의 배상금과 함께 오민수가 보낸 이메일 내용이 적나라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그 무렵 국회에 특이한 법률안이 제출됐다. 여자가 성적인 자기결정권을 가지게 하자는 법률이었다. 판사가 여성의 아랫도리를 더 이상 관리하지 말라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끝)
엄상익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