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희상 열린우리당 의원이 12억여원의 채무를 신고하지 않아 궁지에 몰렸다. 문 의원측은 “채권자가 바뀌면서 일이 꼬였다”고 밝혔다. | ||
문 의원측은 이와 관련해 “답답하다”는 심정을 토로했다. “예전에는 (채무와 관련해)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지난해 채권자가 바뀌면서 일이 꼬였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빚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애매하게 해명했다. 그렇지만 채권 변제과정에서 말못할 우여곡절이 있었다 해도 채무 신고를 누락한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어서 앞으로의 법원 판결이 주목된다.
문 의원의 채무 관계는 지난 95년 3월 말로 거슬러올라간다. 당시 국민회의 소속 국회의원이었던 문 의원은 동생이 운영하던 도서출판 숭문당이 자금압박으로 부도위기에 처하자 평소 알고 지내던 의정부에 사는 이아무개씨(74)에게서 돈을 빌리게 됐다. 문 의원은 약속어음을 담보로 3월말부터 5월말까지 두 달 동안 모두 6차례에 걸쳐 10억6천5백만원을 빌렸던 것.
당시 문 의원은 동생 사업의 보증을 섰다가 부도가 나는 바람에 10억원대에 달하던 재산이 거의 전부 경매로 넘어가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문 의원이 이씨에게 빌린 돈을 제때에 갚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후 문 의원이 채무를 성실히 이행하지 않자, 채권자 이씨는 문 의원을 상대로 법원에 원리금 지급을 요구하는 ‘지급명령신청’을 했다. 그리고 같은 해 8월 중순, 법원으로부터 지급명령 판결을 받아냈다. 그런데도 1년이 지난 96년 9월초에야 비로소 처음 7천만원을 갚았다. 이후 2년 5개월이 경과한 99년 1월말에 1천만원을 추가로 갚았다. 당시는 문 의원이 국정원 기획조정실장을 맡고 있던 시절이다.
이런 방식으로 처음 빚을 갚기 시작한 96년 9월부터 2000년말까지 12차례에 걸쳐 문 의원은 3억2천5백만원을, 2001년엔 3회에 걸쳐 6천만원, 2002년엔 4회로 나눠서 9천만원을 각각 분할 상환했다. 2002년말까지 모두 4억7천5백만원을 갚은 셈이다.
그런데 채권자였던 이씨는 지난해 4월, 독일에서 살다가 귀국한 자신의 딸에게 문 의원에 대한 채권을 양도했다. 문 의원이 대통령 비서실장을 맡고 있을 때, 채권자가 이씨에게서 그의 딸로 바뀐 것이다. 그런데 아버지로부터 채권을 양수받은 이씨의 딸은 서울지법 의정부지원에 ‘채권압류 및 전부명령’을 신청했다. 그러자 문희상 당시 비서실장은 다급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6월3일엔 1억8천5백만원을, 11월9일엔 3억5천만원을 각각 추가로 변제했다. 이와 관련해서 문 의원측은 “(대통령) 비서실장일 때 채권압류가 들어오자 가족과 지인들에게서 모은 돈으로 변제했다”고 자금출처를 밝혔지만, 구체적인 출처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이로써 문 의원은 지난 95년에 빌린 원금 10억6천5백만원 가운데 10억1천만원만 변제한 셈이다. 원금 5천5백만원은 아직 갚지 않은 셈이다. 그런데 이는 이자 11억7천5백99만5천원을 뺀 금액에 불과하다. 여기에 이자까지 포함한다면 문 의원의 채무액은 무려 12억3천99만5천원에 달한다.
그런데 법원은 이씨 딸의 ‘채권압류 및 전부명령’ 신청을 받아들여 지난해 11월27일까지 원금과 이자를 포함한 22억4천99만5천원의 ‘채권압류 및 전부명령’을 했다. 그렇지만 법원의 채권압류 및 전부명령 이후에도 문 실장이 빚을 갚지 못하자 채권자는 법원에 ‘재산관계 명시명령’을 추가로 신청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법원에서는 ‘2004년 1월29일 14시까지 재산상태를 명시한 재산목록을 제출할 것’을 문 실장에게 명령했다. 빚을 갚지 못하자, 법원이 문 의원에게 재산상태를 공개하라고 명령한 셈이다.
그러자 문 의원측은 나머지 채무도 조만간 상환하겠다며 재산명시신청을 취하하도록 설득했고, 이에 이씨의 딸은 지난해 12월에 취하했다.
이렇게 재산명시신청을 취하했다고 해서 채무관계가 해소된 것은 아니다. 채권자인 이씨의 변호인인 이민호 변호사는 “문 의원에게 채무를 변제할 해달라는 내용증명을 3~4차례 보내기도 했지만, 아무런 답변이 없었다”며 “문 의원은 (채권자) 이씨에게 총선이 끝난 다음에 돈을 갚아주겠다고 했지만, 총선 이후에도 아무런 연락이 없다. 그래서 6월초에 이씨가 (변호사) 사무실로 찾아와 이 문제를 상의했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특히 “조만간 (문 의원) 채권에 대한 강제집행에 나설 계획이며, 문 의원에 대한 파산 신청까지 검토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어떻게 해서든지 빚을 받아내겠다는 게 채권자의 의지인 것이다.
하지만 문 의원측은 “원래 채권자였던 이씨의 아버지와 문 의원은 오래 전부터 돈독한 신뢰관계를 갖고 있다. 그런데 지난해 이씨가 채권을 딸에게 양도하면서 문제가 복잡해졌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처음 채권자였던 이씨는 문 의원에게 돈을 받을 의향이 없는데, 채권을 양수받은 이씨의 딸이 채무를 변제하라고 요구한다는 게 문 의원측 설명이다.
여기까지는 ‘순수한’ 채무·채권 문제와 얽힌 소송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문 의원이 공직자윤리법과 선거법에 따라 ‘성실하게’ 재산신고를 해야 할 대상자라는 점이다. 공직자윤리법 제4조에 따르면, 1천만원 이상의 채권과 채무 관계도 재산등록 대상에 포함된다. 그런데 무려 12억원이 넘는 거액의 채무를 누락한 셈이 됐다.
또한 문 의원은 지난 2000년 16대 총선에 출마할 때도 선관위에 이 같은 채무 사항을 신고하지 않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지난해 대통령 비서실장을 역임할 당시에도 이씨와의 채무 관계에 관해서는 신고하지 않은 것으로 지난 2월27일자 관보를 통해 확인됐다. 그리고 이번 총선 때도 선관위에 신고 누락됐던 것이다.
이에 대해서도 문 의원측은 “(처음 채권자였던) 이씨는 정치인인 문 의원이 채무문제로 피해를 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지금도 (채무관계가) 공개되길 바라지 않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동안 재산신고를 하지 않았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또한 지난해 6월3일(1억8천5백만원)과 11월9일(3억5천만원)에 채권자에게 갚은 돈이 문 의원측 주장대로 “가족과 지인들에게서 모은 돈”이라면, 이 돈 역시 선관위에 ‘채무’ 항목으로 신고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렇지만 이렇게 새로 발생한 ‘채무’에 대해서도 신고 누락된 셈이다.
한편 한나라당은 지난 5월 문 의원에 대한 당선무효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한나라당은 소장을 통해 “피고(문 의원)는 이번 국회의원 선거에 입후보함에 있어 자신의 재산에 대해서는 신고서를 제출했으나, 그 일부인 채무액에 대해서는 이를 은폐·누락시켜 허위신고 했다”며 “당선무효 사유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법원에서 만일 문 의원측이 ‘채무’ 사실을 ‘고의’로 누락했다고 판단한다면 선거법 250조 허위사실공표죄에 해당, 당선무효가 된다. 하지만 ‘실수’로 누락됐다는 판결을 받으면 ‘정정신고’하는 선에서 매듭지어진다. 따라서 앞으로 법원에서 어떤 판결을 내릴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