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캠프 사람들’ 억대 연봉자로 우뚝
▲ 공기업 임원들 가운데 가장 높은 연봉을 받고 있는 한이헌 기술보증기금 이사장(왼쪽). 그는 지난 2002년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부산시장 후보에 나선 바 있다. 오른쪽은 참여정부에서 환경부 장관을 역임했던 이재용 건강보험공단 이사장. | ||
모든 경우가 다 해당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간 대통령 측근이라는 이유로 자신의 본래 직무와는 관련 없는 공기업 임원에 임명되는 사례가 적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또한 부적절한 처신 등으로 징계를 받고 임기를 채우지 못한 정부 관료 혹은 이미 공직이나 정치 무대를 떠난 인사들까지 슬그머니 공기업 임원 자리를 꿰차는 경우도 일종의 인사 관행처럼 굳어진 부분이다.
이런 점에서 현 정부도 비슷한 논란에서 벗어날 수 없는 입장이다. 지난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의 선거 활동을 측근에서 지원한 인사 및 청와대 비서관 출신 인사 등이 대거 공기업 임원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낙하산 인사 논란이 또 다시 재연되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이들 공기업 임원들의 고액 연봉 수치가 공개되면서 ‘보은 인사’ ‘제 식구 챙기기’라는 비판 여론이 더욱 고조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간 각 정부 부처의 국무위원이나 국회의원들의 소득과 재산 형성 과정이 각종 검증 과정을 통해 빈번하게 노출된 것과는 달리 공기업 등 정부 유관기관 임원들의 경우 언론과 국민 관심의 사각 지대에 놓여 있던 게 사실이다.
과연 ‘여권’ 출신 정부 유관기관 임원들은 얼마나 연봉을 받고 또 재산은 얼마나 늘었을까. 노 대통령 측근 인사들을 중심으로 ‘낙하산’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공기업 임원들의 연봉과 재산 변동 내역을 들여다봤다.
최근 국회 농림해양수산위원회 소속 한나라당 홍문표 의원(충남 예산·홍성)은 기획예산처가 국회에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를 바탕으로 ‘현 정부에서 낙하산 논란이 일었던 공기업 임원 55명에게 지급된 1년 연봉이 총 77억7815만 원’이라고 밝혀 화제가 됐다.
이들 낙하산 논란 인사의 명단은 지난해 4월 한나라당 공공부문 개혁특위가 발표한 명단을 기초로 작성했다고 홍 의원 측은 전했다. 당시 개혁특위는 임용 당시 논란이 있었던 정·관계 출신 공기업 임원 55명(기관장 19명·상임이사 15명·감사 21명)의 명단을 발표한 바 있다. 홍 의원이 이번에 밝힌 자료에 따르면 이들 인사들 가운데 기관장의 평균 연봉은 1억 8800만 원, 상임이사는 1억 1000만 원, 감사는 1억 3200만 원으로 나타났다.
기획예산처 국감 자료에 기재된 임원 개개인의 연봉과 매년 관보를 통해 게재된 공직자 재산 내역을 분석한 결과, 단순 수치상으로 보자면 이들 인사들이 공기업에서 받는 연봉이 전체 개인 재산에서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즉 1년 연봉 액수가 개인 재산 총액의 절반에 가까운 경우도 많았으며 공기업 임원으로 재직하는 동안 재산이 크게 늘어난 사례도 적지 않았다. 그만큼 이들의 재산이 적다는 이야기도 되지만 반면에 이들의 연봉이 엄청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현 공기업 임원들을 통틀어 가장 높은 연봉(3억 9650만 원)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 한이헌 기술보증기금 이사장의 총 재산은 지난 3월 재산 공개 내역 기준으로 5억 7600여만 원. 1년 연봉 액수가 전체 재산액의 70%를 넘는 셈이다. 지난 2002년 새천년민주당의 부산시장 후보로 나선 바 있는 한 이사장의 재산은 봉급 저축으로 인해 지난해보다 7400여만 원 정도 늘어났다.
노무현 대통령의 부산상고 후배로 2004년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 서울 강남 갑 후보로 출마해 낙선한 뒤 지난해 12월 신용보증기금 감사로 임명된 박철용 전 동남회계법인 대표도 2억 5800만 원의 연봉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04년 총선에 출마할 당시 박 감사가 신고한 재산 총액은 8억 5000만 원. 당시 박 감사는 특이하게도 자기 재산이 3900만 원에 불과하고 나머지를 배우자 재산이라고 신고한 바 있다. 앞으로 박 감사는 급여를 배우자 관리 계좌로 넘기지 않는 이상 본인 명의 통장의 잔고는 꾸준히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교직원 노동조합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다 2005년 11월 본인의 전공과는 관련 없는 한국토지공사 감사 자리에 임명된 최교진 전 열린우리당 대전시창당준비위 상임위원은 지난 3월 재산 공개 내역 기준으로 재산 총액이 1억 7000여만 원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는 순수 연봉으로만 2억 5800만 원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년간 연봉만으로 5억 원가량을 벌어들인 셈이다.
참여정부에서 교육인적자원부 차관을 지낸 뒤 지난해 5월 열린우리당 전남지사 후보로 나섰다가 쓴 잔을 마신 서범석 전 차관도 선거 4개월 후 사립학교교직원 연금관리공단 이사장으로 전격 임명돼 2억 5700만 원의 고연봉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3월 재산신고 내역에 따르면 서 이사장의 재산 총액은 9억 8000여만 원. 서 이사장 역시 지난해보다 본인 예금이 늘어나고 채무는 감소하면서 전체 재산이 증가했다.
지난해 5월 열린우리당 대구시장 후보로 선거에 낙선한 뒤 곧바로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으로 임명된 이재용 전 환경부 장관도 연봉 2억 원의 고액연봉자. 올해 재산신고 내역에 따르면 이 이사장 본인 및 배우자 통장 잔고가 2000여만 원가량 불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 진영 조직특보와 부산 선대위 부본부장을 맡아 당선에 기여한 뒤 청와대 정무2비서관으로 근무했던 박재호 전 비서관. 그는 지난 2004년 총선 때 부산 남구 을에서 출마해 낙선한 뒤 국민체육진흥공단 감사로 임명됐고 2005년 8월 다시 이사장으로 영전했다. 지난 2004년 총선 출마 당시 재산이 3억 8000만 원이었던 박 이사장은 수치상으로 총 재산의 절반인 1억 9400만 원의 연봉을 2년째 받고 있다.
역시 노무현 후보의 언론특보와 대통령인수위원회 대변인 등을 지낸 뒤 지난해 5월 한국방송광고공사 사장으로 취임한 정순균 전 국정홍보처장도 1억 7900만 원의 연봉으로 주머니가 더욱 두둑해졌다. 정 사장의 경우 전체 재산이 40억 원에 이를 정도로 재산이 많은 편이지만 배우자 명의의 서초동 땅과 삼성동 건물 가액이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사장에 임명된 후 지난 3월 기준으로 본인과 배우자의 예금이 1억 원 가까이 불어났다.
참여 정부 출범 후 3년 간 대통령비서실 여론조사비서관을 지낸 이근형 전 비서관도 지난해 한국방송광고 감사에 임명돼 1억 4100만 원의 연봉을 받고 있다.
지난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노무현 후보 조직특보를 맡은 바 있는 강영추 전 열린우리당 중앙위원은 공기업 임원이 되면서 눈에 띄게 재산이 불어난 케이스. 지난해 재산 신고 때만 해도 부천의 18평형 아파트(가액 1억 2000만 원)와 채무 8900만 원 등 총 재산액이 5060만 원에 불과했으나 지난 3월 재산공개 당시 1억 6900만 원을 재산 총액으로 신고했다. 아파트 가액은 불과 2400만 원밖에 오르지 않은 것으로 신고했고 채무도 500만 원 늘어났으나 본인과 배우자의 예금액 상승폭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강 감사의 연봉은 1억 6835만 원으로 재산 총액과 맞먹는다.
노 대통령과는 오랜 민주화운동 동지로서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도 특별수행원 자격으로 북한을 방문한 이철 한국철도공사 사장은 지난 3월 5억 원의 재산이 증가한 것으로 신고, 이례적으로 총 재산 100억 원을 돌파했다. 1억 5900만 원을 연봉으로 받는 이 사장의 예금은 지난해보다 1500만 원 정도밖에 증가하지 않았으나 사업가인 배우자 명의 예금은 3억 6000만 원이나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밖에도 노 대통령 당선에 기여한 여타 당직 인사들도 여러 공기업 임원으로 임명돼 억대 연봉 대열에 합류한 것으로 나타났다.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 선거대책본부 조직기획실장과 대선기획단 행정팀장을 맡았던 손주석 환경관리공단 이사장은 3년간 감사를 지낸 뒤 지난해 이사장에 취임했다. 연봉은 1억 5362만 원. 올해 3월 공개된 재산신고 내역에 따르면 지난해 재산 총액(4억 7400만 원)보다 2억 1500만 원가량 재산이 증가했다. 총 재산의 절반 가까운 재산이 1년 사이에 불어난 셈. 특히 본인 예금이 연봉 수치와 같은 1억 5700여만 원이나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노무현 후보 조직특보와 중앙선대위 조직본부 부본부장으로 맹활약한 강동원 전 전북정치개혁포럼 이사장도 지난 2004년 12월 농수산물유통공사 감사에 임명돼 3년째 노른자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연봉은 1억 4803만 원.
노무현 후보 선거대책본부 조직국장으로 활약한 권형우 전 달서사랑시민모임 대표도 지난 2005년 한국공항공사 감사로 선임돼 1억 3226만 원의 연봉을 받고 있다. 권 감사의 경우 17대 총선에 출마할 당시 총 재산은 1억 684만 원으로 현재 연봉보다 적은 액수였다.
노무현 법률사무소 간사를 시작으로 지난 대선 당시 부산 선거대책 본부장을 맡아 현장을 누볐던 노재철 전 열린우리당 중앙위원도 사립학교 교직원 연금관리공단 감사로 1억 2114만 원의 연봉을 받고 있다. 노 감사는 2004년 부산 동래에서 총선에 출마했을 당시 본인 재산으로 1850만 원을 신고한 바 있다.
연세대 출신으로 지난 대선 당시 고려대 출신인 안희정 전 노무현 후보 비서실 정무팀장과 쌍두마차를 이뤄 노 대통령 당선에 큰 역할을 한 정두환 전 열린우리당 민생·경제특별본부 부본부장도 지난 2005년 한국가스안전공사 상임이사로 취임, 매년 1억 700만 원의 연봉 수입을 올리고 있다.
이밖에도 박상엽 전 청와대 법무비서관(대한주택공사 감사·1억 1609만 원), 권재철 전 청와대 노동행정관(한국고용정보원 원장·1억 1100만 원), 양민호 전 청와대 사회조정2비서관(대한광업진흥사 감사·1억 954만 원) 등 청와대 비서실 출신 인사들도 억대 연봉 공기업 임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유재영 기자 elegant@ilyo.co.kr